국민권익위, 국회 입장도 무시…“현명관 마사회장, 약속 지켜라” 목소리 높아

▲ 용산 화상경마장을 이용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경마장 안으로 들어가고자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과 충돌이 빚어졌다. ⓒ정현진 기자

한국마사회가 28일 서울 용산 마권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 개장을 기습적으로 진행했다.

용산화상경마장입점저지주민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마사회는 28일 오전 9시 30분쯤 화상경마장 18개 층 중 13∼15층 3개 층을 시범 개장했다. 그러나 개장을 위한 홍보는 서울 내 인근 화상경마장 고객들을 대상으로만 이뤄졌다. 마사회 측은 이번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을 홍보하면서 이용객들에게는 1만 2천원여의 입장료 무료, 2만원 상당의 마권과 점심 제공을 약속했다.

주민대책위가 이 소식을 우연히 접한 후, 주민과 성심여중고 학부모 등 70여 명은 화상경마장 입구 2곳을 막고 이용자들의 출입을 막았다. 주민과 학부모들이 입구를 막고 개장 반대 시위를 하자 마사회 측은 직원들을 내세워 주민들과 대치하도록 했으나, 이후 화상경마장 이용자들이 도착하자 주민과 이용자들 간의 대치, 갈등 상황이 됐다.

다음날인 29일까지 이어진 대치로 주민과 이용자들 간의 충돌이 빚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성심여고 교장과 교감, 교사 1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 후송됐고, 학부모들은 항의와 저지를 반복하다 일부 실신하기도 했다. 또 이용객들은 주민들이 입구를 막아서자 강력히 항의하고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용산 화상경마장은 애초 2013년 9월 개장할 예정이었으나, 용산구 주민들과 성심여중고 학부모들의 반대로 개장이 미뤄졌다. 주민대책위는 용산 화상경마장이 주민들도 모르는 상태에서 합의를 거치지 않고 진행되어온 점, 인근에 여중 · 고등학교와 초등학교가 있어 교육과 주거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반대해왔다. 주민대책위와 성심여중고 측은 개장 반대를 위해 매주 목요일 집회를 이어왔으며, 화상경마장 앞에서 157일째 천막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시장, 교육감, 국민권익위도 용산 도박경마장 반대”

마사회의 경마장 기습 개장을 두고 정방 주민대책위 공동대표는 “마사회가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사기업도 아닌 공기업에서 서울시장, 교육감, 국민권익위원회까지 반대하고 나선 상황에서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특히 주민과 경마장 이용객들의 충돌을 야기한 것은 어떤 사고가 나도 상관없다는 ‘미필적 고의’에 따른 행위”라고 비판했다.

28일부터 개장을 막기 위해 경마장 입구를 지켰던 성심여고 교사 권기하 씨는 화상경마장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음에도, 이틀간 마사회가 주민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현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권 교사는 “공기업임에도 마사회가 이런 식으로 주민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 공기업, 나아가 정부의 속내다. 더 확실하게 막아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면서 “농담처럼 말하지만 이익 창출을 위해서 정부가 마약 사업까지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식이라면 이 사회는 끝이다”라고 비판했다.

또 공기업이라면 떳떳하게 합법적으로 일을 추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으며, “정부의 일이 왜 이토록 옹졸하고 편협한지 모르겠다. 이 일을 어떻게 막아야 할 것인지, 막지 못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자괴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주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6일 “용산 화상도박경마장 이전을 철회할 것을 의견 표명한다”는 내용으로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학교보건법, 청소년보건법과 지자체장인 서울시장과 용산구청장이 시설 이전 반대 의견을 제출한다는 점 등을 들어 “신청인의 주장에 상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시설 이전 철회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인 역시 인수위원회 차원에서 29일 성명을 내고 한국마사회에 용산 화상경마장 이전 및 입주 강행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인수위는 성명서에서 한국마사회에게 폭력적인 화상경마장 입주 강행 시도를 중단하고, 지역 주민과 학부모, 교사들과 대화로 문제를 풀 것을 요구했다. 이어 인수위는 “화상 경마도박장 개장이 우리 자녀들의 교육 환경보다도 중요하냐”고 물으면서,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어른들이 돈벌이만을 위해 다른 가치를 돌아보지 않았을 때 아이들은 끔찍한 일을 당할 수 있다. 아이들의 교육 환경을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용산 화상경마장 기습 개장에 대해 참여연대, 교육단체 등 시민사회와 정치권도 나섰다.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은 국회 농림수산위원들이 마사회 현명관 회장에게 기습 입점에 항의하고 있지만 현 회장은 “마사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일축했다고 전하면서, 시민사회단체도 국가인권위 제소 등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성심여고 교장 김율옥 수녀(가운데)는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을 막다 부상을 입기도 했다. 김 수녀는 기자회견에서 “제발 이 모든 것을 멈춰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성심여고 교장 수녀, “공기업인 마사회가 돈 때문에 교육 환경 해쳐”

29일 오후 2시쯤에는 용산 화상경마장 앞에서 기습 개장에 대한 각계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성심여고 교장 김율옥 수녀는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여름부터 지금까지 화상경마장 입점을 막기 위해 하지 않은 일이 없었고 천막농성 157일째를 맞고 있다며 “국민권익위원회가 3일 전, 건물 입점 철회 통지를 했음에도 이렇게 기습 개장을 할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 수녀는 “어제, 오늘 이 자리에서 경마 도박을 하러 온 이들을 보면서 서울의 10개, 전국 29개 도박경마장을 가보지 않고도 우리의 염려가 맞다는 것을 눈과 귀로 확인했다”면서, “마사회가 이 건물을 지키려는 까닭은 돈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국가 공기업인 마사회가 단지 돈 때문에 아이들의 교육 환경과 주민의 주거 환경을 해치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물으며, 입점 철회를 호소했다.

또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은 “이제 국회가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우 의원은 “현명관 회장은 취임 전 도심 장외발매소를 없애겠다고 했음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미 마사회가 지켜야 할 장외발매소 판매 비율 기준도 넘어섰다”며 “어제 국회의원들이 입점 중단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오늘 다시 기습 개장한 것에 대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법사위에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공회 김남석 신부는 “마사회는 문화, 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앞세워 경마장 입점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현명관 회장과 정부는 이 사태를 해결하고 주민들에게 경마장이 들어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교육희망네트워크 조연희 운영위원장은 “용산 화상도박경마장 건물이 용산구 주민들을 위한 문화, 체육시설로 사용되기를 바란다”며 “교육 시민단체들은 전국적 연대를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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