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라’ 강요하는 교육…청소년 4명의 생각, 날것을 묻다

▲ ‘1618선거권을 위한 시민연대’는 5월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이순신 동상 앞에서 20여 명의 회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마이뉴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는 총 17개 지역 가운데 13군데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됐다. 17개 시 · 도 광역단체장과 226개 기초단체장 선거가 박빙이거나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난 것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는 결과였다.

이 선거 결과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한 정치평론가는 진보 진영의 단일화에 힘입은 결과로 풀이했다. 또 다른 평론가는 교육감 후보가 정당 추천을 받지 않은 탓이라면서 무능한 야권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사고의 여파라고도 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교육에 대한 반발심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한 문화평론가는 시민들이 도지사나 시장은 여당을 찍고 교육감은 야당을 찍는 것은 “부동산 값은 올리고 싶고 자식은 생각도 없고 도덕적인 것 같지도 않은 자들에게 맡길 수 없다는 이중의 욕망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선거가 실시된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고등학생 세 명이 “청소년에게 교육감 선출을 위한 투표권을 달라”며 일인시위를 했다. 그들은 “교육의 대상인 청소년이 정작 투표권이 없어 어른들이 만든 방식대로 따라가야만 한다”며 “학생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대한민국의 선거권은 만 19세 이상에게 주어진다. 따라서 교육의 당사자인 청소년은 그 누구도 교육감을 뽑을 권리가 없다. 당연히 선거의 대상자도 되지 못한다. 혹여 정세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려 학교 안에 대자보라도 붙인다면, 많은 청소년은 ‘징계 위협’에 처할 것이다. 학교 안은 물론, 학교 밖의 사회에서도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세상의 중심은 어른이고 청소년들은 ‘미성숙한 존재’라는 틀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대상으로서가 아닌, 주체로서의 청소년들이 궁금했다. 어른의 해석을 거치지 않은 그들의 ‘날것의 말’이 듣고 싶었다. 자신들의 살아가는 공간인 학교와 학교 밖 사회, 그리고 그들이 바라본 어른들의 세상이 어떤지 듣고 싶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17세에서 19세까지 4명의 청소년을 만났다. 이 가운데 2명은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2명은 각각 비인가 대안학교와 인가형 대안학교에 재학 중이다. 이들은 각자의 환경에 따라 차이는 있었음에도 획일적인 교육에 대한 반감과 우려만은 분명하게 표현했다.

“교육이기보다는 사육”…획일적 교육 풍토 여전

“공부만 하라는 게 답답하죠. 사실 사람마다 하고 싶은 게 다르잖아요. 자신이 납득한 길로 가고 싶은데 어른들은 ‘그런 걸 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하고.” (엄준엽 군)

“모든 문제의 근본이 다 하나의 기준으로만 보려고 하는 데에서 오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예체능을 하는 사람도 있고, 상업이나 공업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건 특성화시켜서 분리시키는 듯해요. 누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있는데 모든 고3을 성적표 하나의 기준으로만 나누잖아요. 다양한 게 섞여 있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되면 좋겠어요.” (권예림 양)

“아이들이 정말 마음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면 공부를 하게 하고, 다른 걸 하길 원하면 그걸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맞잖아요? 그럼 그 아이가 직접 학습하는 거죠. 지금은 전체적으로 교육이라기보다 사육 같아요. 학생이 뭘 원하는지, 뭘 배워야 하는지 알아주는 교육이 되면 좋겠어요.” (김지혜 양)

▲ (왼쪽부터) 박범규 군, 김지혜 양, 엄준엽 군 ⓒ문양효숙 기자

대한민국의 획일적인 교육 풍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의 청소년들이 이런 교육 풍토를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혹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청소년들은 이런 획일성에 스스로 문제를 제기한다.

지혜 양과 준엽 군이 다니는 학교는 두발과 복장 규제가 엄격하다. 준엽 군은 앞머리가 눈썹 밑으로 내려가면 벌점을 받는다. 지혜 양의 학교에서는 치마 길이를 제한하고 파마와 염색을 금지한다. 지혜 양은 “머리 색깔을 바꾼다고 제 성격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성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닌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형화된 아이들을 만드는 게 너무 웃겨요. 공장에서 만들어낸 아이들 같아요. 교복을 입은 것만으로는 모자라서 머리나 치마 길이 같은 것까지 똑같이 만들죠.”

준엽 군은 “머리도 마음대로 못 기르게 하는 건 부당한 것 같다”며 “외모에 신경 써도 대학을 갈 수 있는데, 요지는 학교의 규칙을 따르라는 것인 듯하다”고 말했다.

“학교는 선생님이 (학생들을) 관리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배우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획일화시키고 관리의 대상이 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면, 사회도 그런 식이어야 한다는 의미죠.”

복장과 두발 규제가 전혀 없는 대안학교에 다니는 범규 군도 “교칙이라는 게,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거잖아요. 일반 학교에서 학생들이 의견을 표현하거나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으니까요”라고 지적했다.

학교에 ‘안녕들…’ 대자보 붙였더니 귀신같이 찾아내 징계 위협
세월호 참사 후 체육대회 열 것인지 전교생 토론한 대안학교

한 공동체의 룰이 다수 구성원이 아닌 소수의 운영 당국에 의해 제정된다는 불만 안에는 학교가 민주주의를 연습하거나 구현하는 공간이 되기 어렵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청소년이 간혹 자신의 의견을 공공의 장에 내놓으려 한다면, 그는 많은 위협을 감수해야 한다. 지혜 양의 학교에서는 지난 겨울 ‘대자보 사건’으로 한 학생이 징계를 받을 뻔했다.

“한참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붙던 때였어요. 1학년 아이가 ‘저는 두발과 복장 규정이 싫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학교에 다니는 게 안녕하십니까’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대자보를 붙였어요. 학교에서는 귀신같이 걔를 찾았죠. 들키자마자 학생부로 불려가서 2시간 넘게 훈계를 듣고 ‘너를 징계위원회로 넘기겠다. 어떻게 하겠냐’고 해서 반성문을 썼대요. 조용히 살라는 거죠.”

청소년 인권운동단체 ‘아수나로’ 회원인 지혜 양은 친구 한 명과 함께 그 1학년 후배가 쓴 내용을 지지하고 화답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CCTV에 찍히지 않기 위해 해가 뜨기도 전인 깜깜한 새벽에 학교에 가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붙였다”고 했다. 대자보는 붙인지 얼마 안 돼 교사들에 의해 철거됐고, 같이 대자보를 붙인 친구는 ‘예상대로’ 학생부에 불려가 2시간여 동안 “너는 선동죄다. 반성문 쓴 1학년생까지 한꺼번에 징계에 넘길 거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혜 양과 친구는 아수나로에 연락했고, ‘다행히’ 징계에 넘어가지 않았다.

대안학교는 달랐다. 예림 양과 범규 군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모든 학생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는 ‘식구 총회’가 열린다. (우연인지 두 학교 모두 회의 이름이 ‘식구 총회’다.)

예림 양의 학교에서는 세월호 참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식구 총회에서 ‘체육대회의 대형 응원전’이 안건으로 나왔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체육대회를 하는 게 맞는지 전교생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회의 결과, 학교의 전통이었던 큰 응원전을 없애는 대신 합창단을 꾸려 추모의 노래를 부르고 묵념을 했다.

“체육대회를 취소하지는 않았어요. 우리한테 남아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애도의 마음을 담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예림 양은 “학교에서 발언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말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고 실제로도 없지만, 일반 중학교를 다녔을 때는 그런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학교 당국의 ‘일방적인 애도 방침’이 반발감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지혜 양의 학교에서는 세월호 사건으로 체육대회, 스승의 날 행사 등이 취소됐다. ‘세월호 애도 분위기 조성을 위해 행사를 일절 금지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교실마다 붙었다. 공문에는 학교 행사를 할 때 신나는 노래를 틀지 말라는 구체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혜 양은 “묘한 반발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친구의 친구가 세월호 희생자예요. 엄청 많이 울었죠. 그런데 저의 애도와 별개로 ‘너희는 웃고 떠들지 마’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반 아이들 분위기가 밝아지자, 선생님들이 ‘저쪽 동네 아이들은 다 죽었는데, 너희는 웃고 떠들 기운이 있냐’며 야단 치셨어요. 감정을 비난하거나 통제하려고 하는 듯해서 싫었죠.”

▲ 5월 24일 주안역 앞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 인천청소년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이 기타 연주 공연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몇 살부터 ‘성숙한 인간’일까요
어른들의 정치적 선택은 늘 옳았나요

4명의 청소년은 선거권 연령을 낮춰 청소년이 투표권을 갖는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 찬성에서 유보까지 각기 다른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그간 지켜본 ‘어른들의 선택’에 실망과 회의를 드러냈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어른들도 힘들게 입시 공부도 해보고 저희랑 같은 시기를 보냈으니까, 저희를 위한 무언가를 해주시겠지 하고요. 그런데 요즘 들어서 실망이 돼요. 물론 청소년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수 있겠지만, 점점 청소년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엄준엽 군)

범규 군은 “공교육 밖에 있는 대안학교라 현실적으로 교육 정책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교육감만큼은 청소년에게 투표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혜 양은 ‘성숙한 인간의 기준’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2014년 12월 31일까지 나라에서 규정하는 청소년이었다가 1월 1일 어른이 되는 거죠. 1초 만에 내가 성인이란 걸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의 성숙도에는 차이가 크잖아요. 나이가 많아도 아이 같은 사람이 있고, 청소년이지만 어른보다 훨씬 차원 높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투표권이라는 걸 오로지 나이로 규정하면서 ‘너는 아직 몸과 마음이 미성숙해서 제대로 된 투표를 할 수 없어’, ‘선동 당해서 투표하면 어떡하니?’ 하는 건 너무 이상해요. 오로지 나이가 사람의 성숙의 기준이 된다는 건.”

‘미성숙한 존재’라는 사회적 인식은 그들의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진다. 청소년은 소통이 아니라 훈육의 대상이 된다.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방침들은 ‘어려서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너희를 위한 것’이 되고, ‘나중에 알게 될 테니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하라’는 강요는 삶에 대한 자기 고민과 성장의 싹을 애초에 말살시킨다. 그리고 이는, 청소년들에게 학습된다. 범규 군은 “그렇게 해서는 세상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세상은 험하니 지금 참으면서 미래를 위해 준비하라고 하죠.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해도 취업 안 되잖아요? 사회가 끊임없이 애들을 똑같이 찍어내는 것 같아요. 걔들이 다시 똑같은 어른이 되고, 그러면 또 자기 애들한테 그렇게 하고. 그러면 세상이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준엽 군은 자신의 현재를 ‘주관이 서서히 생기는 때’라고 정의하면서, “다 컸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경험하면서 쌓아가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경험조자 주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준엽 군은 “꿈을 찾으라고 많이 말하는데, 사실 청소년들이 꿈을 찾을 여력이 없다. 학교에 처박아 놓고 공부만 시키면서 꿈을 찾으라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정말 꿈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범규 군도 “또래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말하긴 좀 어렵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끝으로 청소년들의 눈에 비친 정치와 국가를 물었다. 준엽 군은 조심스럽게 “이런 나라에서 살아야 하나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답했다.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면서, 보호 받지 못하는 곳에서 살아야 하나 싶었어요. 이민 가고 싶단 생각이 많이 들었죠. 이런 상황이 바뀌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합법적으로 불법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어요. 제일 쉽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란 생각도 들고요.”

지혜 양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제 사회문화 시간에 선생님이 국가가 생긴 이유가 위험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하나의 집단을 형성한 거라고 하셨는데, 이 나라는 위험에서 지켜주기는커녕 위험으로 내몰고 있는 것 같아요. 학생들이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 혹은 ‘그만 살고 싶어’ 하는 생각을 안 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 김지혜 (19세, 인천시 소재 공립고등학교 3학년 재학, 올해부터 성당 나가기 시작)
* 엄준엽 (18세, 인천시 소재 공립고등학교 2학년 재학, 모태신앙)
* 박범규 (17세, 서울시 소재 비인가 대안학교 재학, 종교 없음)
* 권예림 (19세, 전라남도 담양군 소재 인가형 대안학교 재학, 종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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