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 여경]

이틀 전 제출한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대학 과정을 모두 마쳤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그 사이 나는 많은 부분에서 변화했다. 지식도 경험도 다양해지고,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러면서 가치관이나 습관들도 조금씩 변했다. 갓 서울에 올라와 지하철 노선도를 항상 지니고 다니던, 뭐든지 어색하고 어리둥절한 여학생이던 5년 전을 돌아보면 시간이란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모든 게 달라진 것은 아닌데, 내가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나는 불안하다는 것은 여전히 생활 한 켠에 자리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여전한 걸 보면 이런 감정은 어쩌면 평생 안고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확신이 어렴풋하게 들기도 한다. 계속해서 나는 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내가 무엇을 할지 고민하면서 살지 않을까, 하고. 다만 이제 나의 곁에서는 나를 지지해주고 함께해주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대학 생활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일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졸업을 앞둔 불안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 친구도, 나도 문학을 좋아하고, 문학을 계속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야기는 ‘문학을 공부한다는 일’이 불안, 불안정성과 필연적으로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문학이 딛고 있는 지반, 그것은 불확실성이 아니겠느냐고, 오히려 우리는 확실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경계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물론 생계 문제를 완전히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단지 어느 것도 확정 짓지 않는 태도,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 삶은 결코 안정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것―그것이 삶의 본질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

ⓒ여경

가끔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달려가는 친구들을 보면 신기하고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저렇게 삶의 변수를 모두 제거하고 앞만 보고 갈 수 있을까. 어쩌면 저렇게 확실성으로 가득 찰 수 있을까? 물론 그것은 지극히 불안한 사회에 대한 반작용, 안정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택해야 하는 필수 전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우리가 놓치는 것도 참 많을 것이다. 다가오는 우연들, 만남들, 기회들이 어쩌면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을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변수로 간주하고 제쳐두려고 한다면, 안정성 안으로 삶을 구겨 넣으려고 한다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얼마나 많이 줄어들까. 지루하고 건조해지지는 않을까?

이제 어딜 가나 받게 되는 질문이 생겼다. “이제 졸업하고 뭐하니?”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쓴 첫 글도 이런 질문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이제 뭐하니?” 그때는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는, 졸업을 할 때쯤이 되면 내가 스스로 어떤 답을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전하다. 나도 잘 모르겠다는 것. 졸업 후에도 나는 계획이 없다. 대책이 없다고 말하는 게 더 맞는 말일 테다.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불안하다. 매 순간 불안함이 들이닥치고 어느 날은 미래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 잠도 잘 못 자고, 내가 잘못 살아온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하지만 그것이 함께 가져올 역동성과 기쁨, 경이로운 우연들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닥쳐오는 변수들, 인연들, 내 삶에 영향을 줄 수많은 다른 삶들을 기꺼이 반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영향을 받고 내 삶이 이리저리 흔들려 방향을 여러 번 바꾸는 일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걸 위해서라면 나는 불확실성의 빈자리를 열어 두어야 하고, 그 한 켠에는 언제나 불안이 있을 수밖에 없을 테다. 그러니 이제는 불안을 잘 끌어안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능숙함을 기대한다.
 

 
 

여경 (요안나)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학생. 삶, 사람, 꽃, 벗, 별, 꿈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울림이 예쁜 말들에 이끌려 국어국문학과에 가게 되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이를 위해 문학과 예술의 힘을 빌리려 한다. 시와 음악과 그림, 나무, 물이 흐르는 공간,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고향 바다를 닮아 평온하고도 깊고 강인한 사람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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