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라! 200주년 사목회의 - 6]

‘한국천주교 200주년 사목회의’(이하 사목회의)는 시대를 식별하고 교회의 현재를 성찰하여 교회가 가지는 본래의 사명을 논의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한 자리에 모여 세상 속의 교회를 논했다는 것 자체가 교회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는 일대 사건으로 평가 함 직하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적 에너지가 한국교회에 고스란히 스며든 결과이며 한국교회의 개혁 열정이 터져 나온 사건이다. 나아가 독재정권의 정치적 폭압에 항거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적 요구가 종교적으로 투사된 사건이기도 하다. 사목회의는 비단 교회사적인 사건일 뿐만 아니라 사회사적 맥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 사건이라 하겠다.

‘한국천주교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이하 의안)의 이러한 개혁적 비전은 오늘의 교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그만큼 오늘의 한국교회는 30년 전의 모습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과거 사목회의를 통해 집약되었던 개혁적 활력이 점점 쇠퇴해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전통적 권위 위에 안주해온 한국교회의 역사적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사목회의의 의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준하여 모든 문제를 내성(Ad intra)과 대화(Ad extra)의 분야로 대별하여 설정하였다.

내성은 교회의 내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대화는 사회와의 상호 소통과 봉사라는 개념에서 접근하고 있다. ‘지역사목’ 은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담고 있다. 지역교회로서의 교구와 본당을 다루고 또 사목의 주체로서 사목자들의 사명과 영성을 다루면서, 근본적으로는 사목의 목표가 세상에 봉사하는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역사목’ 은 한국사회의 현대적 특성을 사목활동의 중요 시금석으로 삼고자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문화적 코드를 통해 해석하고 사목적으로 접근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즉, 한국 문화와 사목의 관계성을 지적하며 토착화 사목의 개념을 제시하는 한편, 현대화로 야기되는 여러 문제들, 예컨대, 도시화, 비인간화 등과 같은 현상에 대응하는 사목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사명이라는 원칙이 전제되어 있으며 이를 말씀의 선포와 증거, 봉사라는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목은 세상에 봉사하는 것이며 그것은 그리스도교적 원칙을 선포하되 교회 스스로 이를 증거 해야 함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식별을 통해 ‘지역사목’ 은 결론적으로 다양한 권고 사항을 제안하고 있는데 주목할 만한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강론 연구위원회의 설치를 통한 강론의 내실화
2. 성서 연구 교육기관의 설립을 통한 성서 교육의 강화
4. 사제단 등과 같은 교회 내 폭넓은 의견 수렵을 통 전국적, 교구 적 차원의 사회참여 지침 마련
5. 가톨릭의 토착화를 위한 전통사상 연구소 설립 및 전례의 토착화 노력
6. 전통문화의 보존 운동
7. 인구에 비례하는 전국 단위의 사제 배치
8. 생명 존중 운동과 노동자의 권익 증진, 산업화 도시화에 따른 비인간적 관계의 개선
9. 교구와 본당, 본당 간 협력, 도시 본당과 농촌 본당간의 협력 등을 추구하는 공동사목 장려
10. 교구 및 본당 사목위원회,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등의 규약 통일
11. 수도자 및 평신도의 사목 협력
12. 성직자의 영성 제고를 위한 전국적 연수교육 제도 마련

사목회의 이후의 30년을 반추할 때 이 제안들 가운데 교회 차원에서 시행된 바가 있거나 이후 지속적으로 그 제안들이 시행되고 있는 것은 매우 드물다. 예컨대, 전례의 토착화와 관련해서 시행되었던 국악미사나 성직자의 재교육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시행 정도가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나머지 제안들은 사실상 사장되다시피 했는데 안타까운 것은 이 제안들이 여전히 한국교회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교회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나 주도로 이루어진 사안은 아니지만 임의적으로 혹은 자발적으로 이러한 제안에 부응한 사례들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예컨대, 성서 연구 교육기관과 관련해서는 성서교재 계발 및 이를 통한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고 ‘한님성서연구소’와 같은 전문 성서연구기관이 설립되기도 하였다. 또한 <갈라진 시대의 기쁜 소식> 등과 같은 강론을 지원하기 위한 잡지들이 발간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교회의 ‘민간 부분’에서 자발적으로 시도된 사례들이었으며 이들에 대한 교회적 차원의 지원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별 사안들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성직자 혹은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자원을 모아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연구와 교육 투자에 인색한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당과 센터를 짓는 데는 전교구적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이는 반면, 정신적 자원을 발굴하는 데에는 인색한 교회의 근시안적 사목관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를 물량주의적 사목관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국교회의 이 같은 현주소를 상징처럼 보여주는 사례는 열풍처럼 불었던 교구 신학교의 설립이었다. 신자 수 증가에 따른 교구 차원의 사제 양성이라는 명분과 교육의 질적 강화라는 명분하에 추진한 사업이었는데 오늘의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는 결과를 빚고 있다. 사제양성에 대한 한국교회의 각별한 애정이 드러난 사례이기도 한데, 문제는 양성에 대한 의지가 질적 측면보다는 양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사태라 하겠다. 이러한 접근은 ‘지역사목’이 제안하는 사제 양성의 개념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셈이다. ‘지역사목’은 양적인 것보다는 질적인 차원에서 사제의 자질과 영성의 제고를 제안을 했지만 한국 교회는 엉뚱한 방향으로 응답한 것이다. 물론 사목회의 결과를 존중해 신학교를 설립한 것은 아니겠지만.

관련이 있는 또 다른 문제는 공동사목 분야이다. 의안은 본당들 간의 유기적인 협력과 노력을 통한 공동의 문제해결을 권고함과 동시에 도시본당과 농촌본당과의 긴밀한 협조를 권고하고 있다.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도·농간의 소득 격차가 커지면서 도시본당은 농촌본당과의 협력이 필요해졌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다. 물론, 교구 내 도농본당간의 협력과 교류는 가능하겠지만 전국적 차원의 교류는 사실상 어렵다. 이는 교구별 신학교가 설립된 이후 전국적 차원의 사제교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서울과 광주의 신학교만 있을 때는 전국의 신학생들이 함께 생활함으로써 자연스러운 교류의 장이 형성된 반면, 교구별 신학교 설립 이후에는 그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따라서 교구별 신학교 설립은 결과론적으로 사목회의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 셈이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의안은 도시화에 따른 교회의 불균형을 지적하면서(32항 참조) 한국 교회의 공동노력을 제안하고 있다. 도시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인한 사제 수의 부족, 농촌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한 농촌본당의 공동화를 지적하고 전국적 차원의 비례적 사제 배치를 제안하고 있다.

사실, 교구별 인적 자원의 교류가 이루지기 어려운 가톨릭교회의 구조상 이러한 제안은 이상적인 것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자신을 비울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그것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열린 마음과 봉사적 사목 의지에 투철했다면 가능하지도 않았겠냐는 말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교회의 물량주의적 성향은 이를 불가능한 제안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러한 태도는 의안이 제시하고 있는 ‘말씀을 증거 하는 사목’의 원칙과도 배치되고 있다. 교회 스스로 자신을 비우는 모습을 보일 때 대조사회로서의 교회로, 구원의 보편적 성사로 사회의 모범이 될 수 있음에도 교회는 한국사회의 물량주의적 격랑에 휩쓸려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해 온 것이다.

이외에도 지적하고 싶은 것은 산적해 있으나 지면이 부족한 관계로 이쯤에서 그쳐야 할 것 같다. 다만 사족을 달고 싶은 것은, 증거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욕망을 버리고 스스로 낮아지려는 용기를 회복해야 한다는 점과 그것을 위해 우선 사목회의 의안을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읽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박현준
종교학 · 신학을 전공하였고 영성과 신비주의, 종교 공동체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이사, 서강대 종교학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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