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신학연구소 설립 20주년 맞아 부산에서 평신도 문제 다뤄

▲ 우리신학연구소가 설립 20주년을 맞아 ‘한국 천주교 평신도, 이대로 좋은가―2014년 한국 평신도의 자화상’을 주제로 준비한 행사가 5월 31일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은혜의 집에서 열렸다. ⓒ정현진 기자

우리신학연구소가 설립 20주년을 맞아 마련한 지역 순회 행사 첫 시간이 5월 31일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은혜의 집에서 열렸다.

‘한국 천주교 평신도, 이대로 좋은가―2014년 한국 평신도의 자화상’이라는 주제로 준비한 이번 행사는 한국 천주교 평신도의 현실에 대한 주제 강연과 대화 마당으로 진행됐다.

대화마당에서는 이동화 신부(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 박문수 한국가톨릭문화원 부원장(우리신학연구소 연구이사), 김유철 위원장(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이 패널로 참석했다. 애초 이 자리에는 이계성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이하 대수천) 공동대표가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행사를 며칠 앞두고 불참 의사를 전해왔다.

대화마당은 몇 가지 질문에 대한 참가자들의 답변으로 이어졌으며, ‘오늘날 평신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인가?’, ‘성직자와 평신도의 정치, 사회참여는 정당한가?’, ‘양극화한 한국 천주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해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시됐다.

목자는 예수뿐…모든 그리스도인이 ‘양’이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 회복이 교회쇄신의 중요한 요소

가장 먼저 교회가 여전히 평신도를 ‘아이’, 또는 ‘양’으로 보고 교육만을 강조한다는 것에 동의하는가의 여부와 그렇지 않다면, 오늘날 평신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이 물음에 대해 세 명의 패널은 우선 평신도와 교회의 관계 설정이 양과 목자로, 평신도가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입장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보였다. 또 평신도가 교회의 가르침을 열심히 듣고 배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보다 절실한 것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을 거스를 수 있는 영성”으로 성경의 말씀을 오늘의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이계성 대수천 공동대표는 사전 답변서를 통해 평신도를 양이라고 지칭하는 교회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과 교회가 신자 중심으로 바뀌고 신자들이 보다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대동소이한 의견을 보내왔다.

이 질문에서 특히 이동화 신부는 교회 안에서 사목자와 평신도가 목자와 양의 관계로 인식되는 부분에 대해 “양과 목자와 관계는 예수와 그 백성의 관계”라면서 “교회 직무 봉사자들이 목자이고, 평신도들이 양이라는 관계 설정은 초대교회의 평등, 형제애를 기반으로 했던 공동체가 왜곡된 것이며, 이런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 곧 교회쇄신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 지난 5월 31일 우리신학연구소와 경천회는 공동기획으로 ‘한국 천주교 평신도,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의 대화마당을 마련했다. 이날 주제토론에는 부산교구 정평위 이동화 신부와 평신도 대표로 박문수 박사, 김유철 마산교구 민화위 집행위원장 등이 참여했다. ⓒ정현진 기자

‘영적 지도’란 세상 모든 일에 대해 그리스도교적 판단을 분명히 하는 것
신자들, 기회주의적 욕망에 따른 정치 참여 배격되어야

“윤리적 차원에서 우리는 저항, 침묵, 옹호 그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인 행위와 판단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을 위한 판단과 실천을 하느냐가 문제다. 신앙인으로서 복음을 읽고 새기다 보면 사회적 약자와 공감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닌가. 모든 사람은 정치적 참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한 참여인가를 살펴야 한다.” (박문수 부원장)

두 번째로, “성직자와 평신도의 정치, 사회참여는 정당한가? 복음을 실천하는 데 있어 정치, 사회 참여를 하는 것이 마땅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동화 신부는 대수천이 내놓은 “사제의 정치, 사회참여는 정당하지 않다. 사제는 세속적 지도자가 아니라 영적 지도자이기 때문”이라는 입장에 대해 반박했다.

“‘정치’라는 개념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우선 대수천의 입장은 ‘정치’라는 개념의 이해 자체가 잘못됐다는 생각이다. 또한 ‘영적 지도자’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영적’이라는 개념은 육과 영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 모두를 포함한 전인적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영적 지도’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모든 일에 대해 그리스도교적 판단을 분명히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이 신부는 평신도들의 정치, 사회 참여는 어떤 형식이든 문제될 것이 없지만, 사제의 경우, 정파적 참여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사목자들이 세상 일에 대해 교회적,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권리다. 일상에서 공적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정치라면, 시민사회 활동은 평신도와 사제 구분 없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화 신부는 “그러나 아무 곳에서나 참여해서는 안 되며, 다만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사회교리에 대한 이해에 따라 참여해야 한다”면서, 기회주의적 욕망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배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유철 위원장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사회참여는 정당과 부당의 게임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면서, “참정권이 있는 시민으로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이나 안식일의 기적 역시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정치적인 행위였다”고 설명했다.

ⓒ정현진 기자

대수천 현상, 교회 양극화 아닌 신앙을 선택하는 동기의 문제
현세적 가치를 신앙으로 강화하려는 것…복음과 상관 없어

마지막 질문은, 대수천 현상으로 드러난 교회의 양극화 문제를 다뤘다. 교회 내 사회 참여에 대해 이념적으로 규정하면서 치열하게 양극화되는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은 무엇인가.

먼저 이동화 신부는 양극화 현상은 경제적인 빈부의 격차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양극화라고 설명하면서, “하나의 현상으로서 대수천은 현재 한국 교회가 처한 상황을 직면하게 해준다. 그것은 교회의 세속화와 종교의 시장화”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신자들이 사회 안에서 정치, 경제적 삶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세속화와 종교가 신자들의 입맛에 맞는 상품이 되어가는 종교 시장화가 대수천으로 드러나는 중요한 도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문수 부원장은 대수천 현상은 양극화라기보다는 신앙을 선택하는 동기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박 부원장은 각종 통계 자료를 통해 분석하면 신자들 역시 신앙의 가치보다는 현세적 가치를 쫒고 있다면서, “신앙을 선택하는 이유가 현세적 가치를 신앙으로 강화하고 싶은 것일 뿐, 복음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 현상에 대한 해법은 신앙과 사회적 관심, 공동체성, 교회의 공적 책임을 강조하는 쪽으로 회심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김유철 위원장은 양극화에 따라 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진영 다툼을 우려했다. 그는 교회 내에서도 보수와 진보, 좌와 우 간의 끝없는 소모와 확대 재생산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서로를 척결한다거나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은 신앙의 자세가 아니다. 척결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며 한 쪽의 아픔이나 상처를 다른 한 쪽이 고쳐줘야 한다는 상생의 정신으로 혁명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서로 다른 논리 사이에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세는 성직자들이 우선적으로 갖춰야 한다면서 “성직자들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신학교 교육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행사는 우리신학연구소와 경천회 회원을 비롯한 부산교구 신자들 7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대화마당 이후에는 본당과 교회에서 활동하는 평신도들이 경험과 고민을 나누기도 했으며, 파견 미사로 마무리됐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