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맞은 가톨릭 유아생태교육…1200명 몰려도 일회용품 하나 없는 기념식

“아이들에게 자연 생태계에 맞는 교육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어요. 처음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유아교육분과를 맡아서 어떤 교육을 하면 좋을까 고심 중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마침 그분들이 찾아오셨죠.”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두 명의 실무자가 최요한 수녀(부산교구, 해성유치원 원장)를 찾아온 건 10여 년 전이었다. 최 수녀를 찾아온 이들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생태교육을 했는데, 좀 늦은 감이 있다”며 “유아교육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최 수녀는 ‘하느님이 주신 때’라고 생각했다.

천주교가 운영하는 유치원 교사를 대상으로 연수를 시작했다. 연수를 기반으로 월 1회 생태 강좌를 시작했다. 시작부터 반응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처음 시작했던 강의에 참가한 교사는 30여 명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홍보가 어려웠어요. 처음에 서울대교구 주보에 냈는데 크게 반응이 없더라고요. 결국 전국에 홍보를 했죠.”

서울에서 열리는 강좌에 부산, 대구 등지의 유치원 교사들이 참가했다. 가톨릭뿐만 아니라 일반 유치원에서도 강좌를 들으러 왔다. 겨자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10년, 현재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가 여는 생태월례강좌에는 수강 가능 인원보다 더 많은 수의 교사들이 신청한다. 어쩔 수 없이 대상자를 가톨릭 유치원 교사로 제한했다.

▲ 가톨릭 유아생태교육 1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한 가족이 비빔밥을 만들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지난 1일 서울 중구 계성여고 운동장에서 열린 가톨릭 유아생태교육 10주년 기념행사에는 13개 기관에서 1200여 명이 넘는 유아와 가족들이 참가했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유아생태교육소위원회 위원장인 배 벨라댓다 수녀(인천 박문유치원 원장)는 “생태적인 인식이 많이 확산되고 ‘환경 가족’이 많아졌구나 싶어 흐뭇하다”고 말했다.

오후 1시에 개막식을 마친 후, 가족들은 유아생태교육소위원회 위원들과 유치원 교사들이 준비한 다양한 실천 마당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아이들은 지렁이를 토분에 분양 받고 양파껍질로 천연 염색을 하는가 하면, 재활용품으로 다양한 놀잇감을 만들었다. 부모들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떡메를 치고, 천연모기퇴치제와 천연 치약 등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다.

1200여 명이나 모인 이 행사에는 단 한 개의 일회용품도 사용하지 않았다. 사실 필요가 없었다는 게 맞다. 가족 단위로 참가한 이들의 손에는 돗자리, 개인 컵과 수저 등이 들려 있었다. 행사 참가 신청을 알리는 공문에는 ‘오실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는 요청마저 있었다. 하지만 참가한 아이와 어른들 속에서 불편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점심식사로 준비한 양푼 비빔밥을 남기는 가족도 눈에 띄지 않고, 그도 그럴 것이 행사에 참가한 유아와 가족은 이미 유치원과 가정에서 이런 실천을 해왔기 때문에 이 모든 작은 불편이 낯설지 않다.

▲ 한 어린이가 양파껍질로 천연염색한 옷을 만지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가톨릭 유아생태교육 1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한 어린이가 흙속에서 움직이는 지렁이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배 수녀는 가톨릭 유아생태교육은 ‘실천 중심’이라며, “10주년을 맞아 그동안 우리가 해온 활동을 알리는 한편, 함께해온 가족들과 함께 축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톨릭 유아생태교육은 무엇보다 가족과의 연계를 중요시했다. 생활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하려면 유치원에서만으로는 부족했다. 아이들이 집에서 부모와 할 수 있는 일상 활동을 생각했다. 이들이 전하고 싶은 건 ‘삶’이었다.

“교사들의 인식이 바뀌면 유치원 아이들에게 전달되고, 그러면 아이들에게서 가정으로 ‘생태적 삶’이 전달돼요. 아이들은 스펀지처럼 받아들이거든요.”

실제 10주년 행사장에서 만난 학부형들은 ‘아이에게 눈치가 보여서’ 생활에서 많은 부분을 조심하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세찬이는 6세부터 2년째 수원 소화유치원에 다닌다. 세찬이는 유치원에서 ‘즐거운 불편’을 실천했다. 10주년 행사에 참가한 세찬이 어머니는 “세수할 때 물을 틀어 놓으면 세찬이가 달려 와서 물을 잠그면서 ‘엄마, 그렇게 하면 지구가 아파’라고 한다”고 전했다.

“‘미안해. 빨리 잠글게’라면서 잠그곤 하죠. 요즘은 유치원에서 재활용품으로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데 함부로 뭘 버리지도 않더라고요. 분리수거도 뭔지 모르던 애가 작은 상자 하나도 버리지 않아요. 자기 장난감도 만들고 작은 생활용품도 만들고요. 아무래도 아이가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지요.”

세찬이 어머니는 “우리 아이만 그러는 게 아니다”라며 “가끔 엄마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면 아이들한테 혼난 경험을 다들 이야기한다”며 웃었다.

“안 하면 이런 감성이 아무래도 소홀해질 거 같아요. 그런데 어렸을 때 이렇게 하면 커서도 습관처럼 배어 나오고, 그럼 또 세찬이가 다음 세대에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사실 저도 (환경을 생각하는 삶을) 잊었다가 아이 때문에 마음을 한 번 더 가다듬게 돼요. 하나하나가 모이면 (환경이) 괜찮아질 것 같아요.”

‘즐거운 불편’에서 시작한 가톨릭 생태유아교육은 ‘탄소 줄이기’를 거쳐 2012년부터 ‘에너지 줄이기’를 시작했다. 유치원에서는 쓰지 않는 전기 콘센트를 빼고, 에어컨과 엘리베이터 사용을 줄였다. 교실 스위치에는 위치를 표시한 스티커를 붙여 아이들 스스로 꼭 필요한 경우에만 형광등을 켰다. 배 벨라댓다 수녀는 이런 교육이 결국 탈핵을 위한 근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나 언론에서는 우리가 전기가 부족해서 핵발전소를 지어야 된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전기 사용을 줄이는 게 ‘실제로’ 가능하니까요. 유치원에서도, 가정에서도. 더 이상 핵발전을 계속할 이유가 없죠.”

▲ 지난 1일 서울 중구 계성여고 운동장에서 열린 가톨릭 유아생태교육 1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한 어린이가 떡메치기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이날 행사장에서는 재활용품을 이용한 장난감과 생활용품을 직접 만드는 부스가 설치돼 인기를 끌었다. ⓒ문양효숙 기자

위원회의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0년간의 단단한 평가와 노력들은 각자의 유치원에서 작은 실천들을 끊임없이 만들어갔다. 태양광을 이용해 가로등을 설치하고 옥상에 텃밭을 만드는가 하면, 비닐 대신 보자기를 사용해 선물을 포장하고 음식을 남기지 않는 등의 실천이 이어졌다.

올해 환경사목위는 유아생태교육 이론과 프로그램을 겸한 생태강좌를 격월로 열고, 유아들이 생태체험을 할 논과 밭을 연결했다. 심포지엄을 열고 교사들과 함께 송전탑 건설 싸움을 해온 밀양 등으로 현장 연수를 떠났다. 초대 위원장을 지낸 최요한 수녀(부산 해성유치원 원장)은 “현장을 다녀온 교사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유아생태교육소위원회 위원들은 “현재 보건복지부나 교육부에서 내려오는 지침에 환경에 관한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지만, 막상 어떻게 할지 몰라 문의해 오는 유치원이 많다”고 설명했다. 인식은 변했으나 교육현장의 준비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위원들은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가 10년간 쌓아온 교육 이론과 프로그램이 현재의 교육부 지침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며 “앞으로도 널리 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요한 수녀는 “내년부터 부산교구에서도 생태유아교육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어쩌다보니 위원 2명이 부산에 가게 되었는데 이것도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가해요. 위원들이 각 지역에서 민들레홀씨처럼 많은 유아교육기관에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배 벨라뎃다 수녀에게 “가톨릭 유아교육은 왜 생태교육이어야 하냐”는 우문(愚問)을 건네 봤다. 배 수녀는 “가톨릭 기관뿐 아니라 모두가 해야 하는 것”이라는 현답(賢答)으로 응수했다.

“다만 가톨릭 유아교육기관이 더 중점적으로 관심을 쏟는 것은 하느님께서 지으신 생명을 살리고 더불어 사는 것이 진짜 행복이고 신앙인의 기본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 교육이 참 생명살림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 수원 소화유치원 백승희 어린이가 그린 환경 포스터. 이날 계성여고 행사장에는 어린이들이 유치원과 가정에서 미리 그린 환경 그림들이 전시됐다. ⓒ문양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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