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기쁨> 강좌 마지막 회에 소희숙 수녀 초청으로 참석해 발언

“키가 170㎝ 정도였는데 다 타고 겨우 뼛가루 한 주먹만 남았어요. 17년을 살았는데, 남은 게 겨우 한 줌뿐이었어요.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더라고요.”

“살면서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길 바란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세상에 나를 끼워 맞추며 살려고 노력했는데…… 세상은 그렇지 않았어요.”

지난 5월 31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머리에서 가슴으로 읽는 <복음의 기쁨>’ 마지막 강의가 열렸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소희숙 수녀(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녀원)는 팽목항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만난 세월호 유가족 이호진 씨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8반 이승현의 아버지”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호진 씨는 “이 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는 유족들을 대변하는 게 아닌 순전히 제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밝혔다.

▲ 세월호 희생자 고(故)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배선영 기자
이 씨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뒷모습이 마지막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말하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저녁 오후에 안개가 껴서 배가 출항하지 못했다는 전화가 왔을 때, 이 씨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9시 15분에 ‘배가 침몰 중이고 구조 중이다’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는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말한 이 씨는 “정신을 차리고 TV를 틀어보니 배가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진도에 도착하니 배의 선미 부분만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배가 침몰하고 2일차 새벽, 뉴스에서는 오보가 계속되었다”며 “다른 일 같으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했을 텐데, 아버지이고 자식의 일이다 보니 멍청하게 뉴스를 다 믿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안 믿었어도 이런 결과였겠지만, 그때까지는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며 울먹였다.

“배의 선미 부분이 보이지 않자, 팽목항에 통곡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생존자가 아닌 희생자가 되어 하나둘씩 나올 때, 그 광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아이들이 얼마나 벽을 긁어댔는지, 열 손가락의 손톱이 까지고 새카맣게 멍이 들어 있었어요. 그걸 보고 미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4월 30일 새벽 이 씨의 막내아들 이승현 군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왔다.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장례를 치렀다. 이 씨는 “장례식에 많은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들러 기도를 해줬으니 승현이가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갔을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 씨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세월호에 관한 진실이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고, 관련된 사람이 모두 처벌받을 때까지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승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고 전했다.

이 씨는 “배가 침몰되고 나서 2~3시간 동안은 아이들이 다 살아있었다”며 “한 사람이라도 정신 차리고 아이들을 구하고자 했더라면 100명은 살았을 텐데 유가족들이 이 점을 가장 안타까워 한다”고 밝혔다.

“아이들이 살려고 발버둥치고 물속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파도로 변해서 팽목항을 내려칠 때, 그게 그냥 파도인 줄로만 알았어요. 마지막 생존자가 친구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살고 싶어 할 때, 육지에 있는 사람들은 아는 체 하지 않았습니다.”

이 씨는 유가족들이 “우리가 강남 8학군에 살았더라면, 우리가 권력이나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말한다며 씁쓸해했다. 이어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살리지 못하고 몰살시켰다”면서 “다음에는 3천 명, 3만 명이 희생될지 모르니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씨는 “시간의 제한을 두지 않고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전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그는 배가 갑자기 방향을 튼 것을 언급하며 “완벽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책임자가 처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청중을 향해 “여기에 있는 분들이 잊지 않고, 이 일을 계속해서 말하고 언론의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천주교 예비신자인 이 씨는 “아직 할 줄 모르지만 나름대로 기도하고 있다”고 밝히며 “막막한 상황에서 붙잡고 이야기할 사람이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밖에 없었고, 덕분에 따뜻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한편, 이날 ‘복음의 기쁨, 투신하는 영성’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소희숙 수녀는 “투신하는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며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라”고 당부했다. 또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오늘은 너였지만 내일을 내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일에 깨어있고, 진실을 외치고 전달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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