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지요하] 경기 안성 유무상통마을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유무상통마을(미리내실버타운) 현관 앞에 건립된 '동양평화소녀상'의 모습 ⓒ미리내실버타운

28일 낮 12시 경기도 안성시 유무상통마을의 미리내실버타운에서 ‘동양평화소녀상’ 제막식 및 축복식 행사가 있었다. 실버타운 현관 앞마당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고 소녀상의 의미를 기리는 뜻 깊은 행사를 연 것이다.

‘유무상통(有無相通)’이란 말 그대로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 통하고 하나라는 뜻이다. ‘있는 것이 없는 것이요,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는 철리(哲理)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유무상통마을’은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의 미리내실버타운과 인근 용인시, 광주군 등에 분포되어 있는 여러 개 복지시설을 아우르는 이름이다. 비교적 유복한 노인들이 생활하는 미리내실버타운에서 얻어지는 수익금으로 여러 개 무료 복지시설들을 운영하니, 그 이름은 매우 적절하다(처음에는 미리내실버타운의 수익금으로 여러 무료 시설들을 운영하는 시스템이었으나, 기초연금과 건강보험, 정부지원 등으로 여러 시설들의 자체 운영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유무상통마을의 모든 복지시설들을 운영하는 복지법인의 이름은 ‘오로지’이다.

오로지 복지법인을 설립하고 유무상통마을을 건설하여 운영하는 방구들장(상복, 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지난 2010년 미리내실버타운 앞마당 한복판에 안중근 장군 동상을 건립했다. 그리고 그해 3월 26일 제막식 행사를 성대하게 열었다.

방구들장 신부는 안중근 장군 동상 건립 이후로 해마다 안 장군의 순국일인 3월 26일이나 직전 주일에는 안중근 장군 추념제를 거행해오고 있다. 또 2010년 ‘안중근 바보장학재단’을 설립하여 해마다 30명 대학생들에게 각 200만원씩의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방구들장 신부가 이처럼 안중근 장군을 기리는 것은 거짓과 불의, 비겁함이 만연되어 있는 세상에 의로움의 불씨를 키우고 나누고 확산시키려는 소망 때문이다. 안중근 장군의 애국애족 정신과 평화에 대한 사상이 널리 전파되고, 그 의로운 기상이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널리 주입되고 확산될 때 민족의 미래가 밝아질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민족통일을 지향하면서 겨레의 앞날을 밝힐 수 있는 작은 불쏘시개 하나를 피우기 위해 그처럼 정성을 다해 안중근 장군을 기리는 것이다.

그런 방구들장 신부가 올해 들어서는 미리내실버타운 앞마당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는 일을 했다. 꽃다운 어린 나이에 일제에 징발되어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이역만리 병영에 끌려가서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한편 그들의 희생을 되새기는 정신을 후손들에게 물려줌으로써 평화 지향 의지를 우리 사회에 확산시키려는 뜻이다. 그 할머니들을 순결한 소녀 시절의 모습으로 ‘환생’시킴으로써, 그 희생을 발판 삼아 민족정기와 함께 통일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들을 키우고 싶은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28일의 소녀상 제막식 및 축복식은 천주교 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 리노 주교가 참석하여 주례했다. 이성효 주교는 행사에 초대된 90세가 넘으신 두 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름(김복동, 길원옥)을 부르며 위로하시는 말씀과 함께 소녀상의 의미를 설명했다. 소녀상에 성수를 뿌리고 분향을 하고 나서 민족통일과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내용의 기도를 했다.

▲ 행사를 주례한 천주교 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와 유무상통마을 촌장 방구들장 신부를 비롯한 여러 명의 신부들과 유무상통마을 전 직원이 함께 두 분 위안부 할머니께 큰절을 드렸다. ⓒ미리내실버타운

행사는 대북 연주, 제막식, 유무상통마을 돌보미들로 구성된 ‘미리내밴드’의 축하연주, 축복식, 살풀이춤, 헌시 낭독, 감사패 전달 순으로 진행됐다. 참석자 모든 함께 ‘소녀상 건립 취지문’을 낭독했고, 또 다 함께 ‘안중근 찬가’를 불렀다.

행사의 백미는 맨 마지막에 있었다. 두 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소녀상’ 앞에 앉으시게 하고, 이성효 주교와 방구들장 신부를 비롯한 여러 신부들과 유무상통마을 전 직원이 함께 큰절을 올리는 일이었다. 프로그램에는 없던 일인데, 그런 특이한 일이 행해졌다. 주교 복장을 한 천주교 주교와 여러 명 신부들이 함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큰절을 드리는 장면은 다시 보기 어려운 일일 터였다.

성대하고도 뜻 깊은 행사는 미리내실버타운 방상숙 원장의 인사말을 끝으로 마침표를 찍었고, 기념촬영 후 모두 함께 식당으로 가서 오찬을 즐겼다. 식당 안의 모든 식탁에는 내가 태안에서 가져간, 전국에서 가장 맛이 좋다고 자부하는 막걸리가 올려졌다.

난생 처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했던 뜻 깊은 행사에 대한 기록을 마치면서 내가 행사 중에 낭송했던 헌시를 소개한다.


소녀상의 치마폭은 천년 웅비의 날개다
—동양평화 소녀상 제막을 경축하며

나라 잃은 죄업이
가난하고 순박한 백성들의
어린 딸들에게 암운처럼 드리웠다

비록 가난의 멍에를 지고 살았지만
정조와 절개를 생명처럼 여기던
대한의 딸들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갔고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왜구의 나라와 오랑캐 나라에 무수히 끌려갔던
한반도 처녀들의 한 맺힌 피눈물

그 슬픈 역사의 숱한 고갱이 속에서도
몸의 순결을 생명처럼 여겨왔던 대한의 딸들이
남의 나라를 침탈하고 인류 공멸의 전쟁을 일삼는
왜국 군대의 야욕 앞에 숨을 곳이 없었다
짐승의 이빨을 들이대고 덤비는
왜구들의 손아귀에 잡힌 가녀린 허리들이
진달래 꽃잎처럼 스러졌다

부모형제와 생이별하고
고향산천을 아득한 기억 속에 묻고
이역만리 타국의 병영에서
왜구들의 노리개가 되어야만 했던 대한의 딸들
밤마다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아롱졌던
비탄의 눈물들

치마폭 가득 눈물방울들을 안고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왔건만
조국은 광복을 찾은 나라가 아니었다
갖가지 형태의 어둠들이 골골마다
장막처럼 드리워져서
아무도 그들을 보지 못했다

해방된 조국은 그들에게
왜국이나 다름없었다
해방된 조국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하염없이 세월이 흐르더니
민중의 뜨거운 자각이
역사의 봉우리들을 이루는 시절에 이르러
그들은 마침내 ‘소녀’로 환생했다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그들은
평화를 지향하고 상징하는
고귀한 관을 쓰게 되었다
이름하여 평화소녀상!

그들은 모두
안중근 장군의 딸들이다
동양평화의 이상향을 제시하고
구체적 방안까지 펼쳐보였던
아버지 안중근 장군의 품안에서
소녀들의 꿈이 봄날의 들꽃처럼 피어난다

그리하여 오늘
민족정기의 꽃나무가 힘차게 자라나는
대한민국 유무상통마을 한복판에
아버지 안중근 장군의 뜻을 되새기는
수많은 소녀들의 얼이
천년의 웅비를 위해
힘껏 나래를 다듬는다

세계평화를 염원하며
이 땅 위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소녀상!
이름하여 동양평화 소녀상이다!

 

지요하 (막시모)
소설가, 대전교구 태안성당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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