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석 교수, ‘원죄’에 대한 공동체적 해석 시도.. 전쟁신학 요구

▲ 민경석 교수
전쟁 문제를 ‘원죄’와 관련시킨 새로운 해석이 나왔다.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의 민경석 교수는 26일 서울 서대문구 안병무홀에서 열린 특강에서 ‘전쟁과 원죄와 교회’라는 제목으로 발제하면서, 원죄와 전쟁의 상관성을 신학적으로 검토했다. 이 특강은 우리신학연구소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공동 주최했다.

민경석 교수는 해방신학도 여성신학도 있지만 “왜 전쟁신학은 없는지” 물었다. “전쟁은 국가라는 공공집단이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벌이는 범죄”라고 말했다. 전쟁 중에는 “모든 폭력 수단이 정당화되고, 적국에 대해서는 모든 윤리적 배려를 정지시키면서, 자국민을 윤리적 · 인간적 감각이 마비된 야만인으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또한 “스스로를 모든 선과 악, 모든 진리의 기준으로 절대화한다”고 비판했다.

민 교수는 이런 점에서 전쟁을 ‘궁극적 죄악’이며 ‘원죄의 궁극적 표현’이라고 전했다. 특히 전쟁이 공공집단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기에, 이를 수행하는 국가나 제국주의는 가장 악랄한 ‘주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쟁에 내재한 악의 경향에 비교할 때, 개인의 죄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죄’에 대한 기존 관념이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고, 추상적이며, 일반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비판하는 민경석 교수는 “다른 개인들이나 집단을 자기 집단의 동일성에 폭력적으로 종속시키고, 이를 제도화하려는 인간 본성의 원초적 죄악”이라고 ‘원죄’를 다시 규정했다. “원죄는 개인 악과 집단 악에 선행하는 내적 조건이며,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인, 공동체의 자원을 악용하며, 사회역사적 갈등에 따라 경제, 정치, 문화 등 여러 방면으로 언제나 더 커지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원초적 악’에 대항하면서 희망을 낳는 것이 ‘원초적 은총’이라고 민 교수는 말한다. 원초적 은총은 사랑 안에서 일치하시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타자들의 연대’다. 그들은 서로 다른 존재이지만, 서로 안에서 ‘타자’의 얼굴을 발견하면서 정의와 평화, 인격 존중을 통한 공동선을 위해 연대한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모든 연대의 모형이며, 성령은 모든 연대의 촉매자”다.

▲ 민경석 교수는 교회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닮아 공동선을 위한 ‘연대하는 타인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민경석 교수는 “교회는 타자들의 연대를 가져오는 원초적 은총의 성사적 표현”이라고 말한다. 이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를 ‘구원과 일치의 성사’라고 말하는 이유는 “교회 안에서 타자들의 연대가 확연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가톨릭교회는 교회 공동체의 잘못을 참회한 적이 있지만, “교회 구성원 일부의 잘못이라고 말할 뿐 교회의 문화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민 교수는 “교회 안에는 동일성의 횡포가 없는지 반성해야 한다”면서 “교회 구성원 개개인의 죄악이 아니라 교회 문화 자체의 죄악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성직자의 권위주의’를 지목하며, “말만 하나인 백성이지 교회 구성원 사이의 평등성이 보장되지 않는 문화에서 평신도들은 위축되어 자율성과 활동성이 억압된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한국 교회의 경우에 “정의구현사제단조차도 성직자 권위주의의 한 표현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어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되었지만, 만일 평신도가 구속되어도 이런 단체가 만들어졌을까” 물었다.

마지막으로 민 교수는 교회가 “복음 선포와 실천을 통해 개인들에게는 원초적 은총으로서 연대의 덕행을 강조”하고, “집단에게는 ‘타자들의 연대’를 실천함으로써 모든 국가, 종교, 문화에 침투하는 제국주의적 동일성의 횡포에 저항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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