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된 생명 윤리를 위해 애쓰는 낙태 반대, 생태 여권운동가들


메리 크레인 데르와
그녀가 안락사 없는 동물 보호소에서 입양한 기니피그 젬마
대부분의 NCR 독자들은 아마도 ‘낙태 반대, 생태 여권운동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겠지만, 낙태에 대해 정치를 초월한 관점을 가지고 모든 창조물에 대한 청지기 의식에 투철하게 좀더 ‘일관된 생명 윤리’를 주장하는 낙태 반대자들이 있다.

낙태를 합법화했던 로 대 웨이드 미국 대법원 평결이 있은 지 36주년을 맞는 오늘이야말로 낙태 반대, 생태 여권운동가들의 관점에 귀기울여 볼 때인 듯하다.

대부분의 생태 여권운동가들이 낙태에 대해 선택주의자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반면, 캐나다의 프란체스코 제3수도회 성심 수녀회의 수녀 로잘리 베르텔과, 케냐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와 같은 지식인 활동가들은 자칭 낙태 반대, 생태 여권운동가들이다.

미국의 가장 저명한 낙태 반대, 생태 여권운동가들 가운데 한 명인 작가 메리 크레인 데르는 <비폭력적인 선택 지침>의 편집장이다(www.nonviolentchoice.blogspot.com). 그녀는 NCR에 자기 자신을 “생태 지지자이며 채식주의자, 대도시 중앙의 저소득자 거주 지역에 위치한 유기 공동체의 정원사이자 입양한 기니피그 보호자”라고 소개하였다.

데르는 낙태 반대, 생태 여권운동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자신의 이메일에 게재된 몇 가지 질문에 답하기로 하였다. 다음은 그것을 적당한 길이로 좀 더 명확하게 편집한 것이다.

NCR: 생태 여권운동을 간단히 정의해 주시겠습니까?

데르: 생태 여권운동은 여성에 대한 억압과 자연 파괴가 서로 맞물려 있는 지배와 파괴의 양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태 여권운동가들은 낙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흔히 채식주의자이며 자연보호론자였던 초기 여권론자들 때부터, 생태 여권운동은 여성에 대한 억압과 인간 이외의 다른 창조물들의 파괴, 나아가 전 생태계의 파괴가 많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생명체나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은 전혀 지각력이 전혀 없는 존재, 타고난 가치나 그 어떤 권리도 없는 존재로 취급받아 왔습니다. 태어났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린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에게는 ‘영혼이 없다’고까지 말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문화는 지각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소중하며 권리를 지닌 이 모든 존재들을 대부분 잘못 대우해 왔습니다. 하나의 비극적이고 참으로 유해한 결과는 수백만의 임신한 여성들이 낙태를 유일한 차선책으로 볼 수밖에 없는 궁지로 몰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낙태 논쟁의 양면은 개인적인 선에서만 말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낙태의 근본 원인을 모호하게 하고 해결책의 모색을 방해합니다.

우리가 좀더 예민한 생태학적 의식을 갖고 다름 아닌 공동 책임감의 부재야말로 낙태의 원인이라고 자각한다면, 여성들이 임신 방지를 위해 언제 어디서나 적절한 선택을 하도록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에라도 출산 전과 출산 중, 출산 이후까지 최선의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부 여성들은 이렇게 오염되고 엉망인 세상에 자녀를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아 낙태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여성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 지구 환경을 모두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상태로 복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낙태 반대, 생태 여권운동가로 자처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물론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좀 더 조직적으로 일하며 더 많이 들려주고 보여주어야겠지요. 생태 여권운동가라고 밝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낙태 선택주의자로 비쳐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낙태 반대, 여권운동가들은, 굳이 생태 여권운동가라고 자처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지배와 억압의 모든 양상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의식에서 그들은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나아가 동물들을 보호하며, 소비를 최소한으로 하는 삶을 살며, 환경 오염을 경고합니다. 

낙태 반대, 생태 여권운동가들은 평화주의자이며 채식주의자, 사회주의자, 적어도 반자본주의자처럼 보입니다. 사실입니까?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 대체로 불살생(不殺生)의 일관된 생명 윤리를 고집한다는 점에서 그렇죠. 그러나 생태 여권운동가들이 그러한 문제들에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동물을 잡아먹고 그 가죽과 털을 이용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고기를 먹고 가죽을 사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낙태 선택주의자이면서도 생태 여권운동가가 될 수 있습니까? 아니면 낙태에 대한 관점 때문에 생태 여권운동가라고 불릴 수 없는 겁니까?

저 자신이 수년간 여권운동가도 아니고 낙태 반대, 여성 혐오주의자라는 말을 들어왔고, 나아가 생태 책임감도 없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누군가가 낙태에 대하여 나와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대 해서 그를 적대시하며 생태 여권운동가로 볼 수 없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제 저는 생태 여권운동이 진실로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에 서야만 가장 완전하고 최선의 길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생태 여권운동가라 해서 반드시 낙태 반대자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동시에 저는 낙태 선택주의자이면서 생태 여권운동가들이 이기적이고 사악한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일부 낙태 반대주의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들 역시 남성과 여성,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평화를 이루는 방법을 찾고자 애쓰고 있고, 또한 여성과 어린이들의 고통에 마음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낙태를 한 적이 있거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낙태를 하도록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은 낙태 선택주의자가 됨으로써 그러한 힘든 경험들을 이해하고 평화를 이루고자 합니다. 생태적 의식이 감정 이입의 문제라면, 그것은 다름 아닌 낙태에 대해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 이입일 것입니다.

패트릭 오닐 2009.1.22. (기사출처- NCR)

번역/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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