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열의 떼제 일기 - 14]

올해 프랑스의 지방선거와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외국인과 다른 문화, 특히 이슬람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히 혹은 은밀하게 드러내는 정당이 지지받는 것은 우려할 일이다. 프랑스 정치 현실이 어둡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다양한 문화가 조화롭게 어울려 더불어 사는 것은 아름다운 현실이고 가능한 미래다.

지난 주일 오후, 떼제에서 2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마을에 있는 ‘평화의 가르멜 수녀원’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불교,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스도교의 성직자와 신도들이 모여 반나절을 함께 보냈다. 그리스도교는 개신교와 정교회, 가톨릭을 모두 망라했다. 각각 자기 종교를 독실히 믿으면서 수행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경청하고 대화하고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취지였다. 8년 전에 시작된 이 모임은 2년마다 열리는데 나는 처음으로 여기에 참석했다.

마을과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언덕 위에 위치한 수녀원에 도착하니 임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왔다. 어린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도 있었고 젊은이들도 여럿 보였다. 먼저 온 사람들은 각자 싸 온 점심을 나누어 먹었고 참가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아는 얼굴을 보면 환성을 지르며 서로 손을 잡거나 볼을 맞대고 인사하는 것이 가족이나 오랜 친구처럼 정겨운 모습이다. 여기저기 아는 얼굴이 눈에 띄었다.

파아란 하늘, 5월의 따스한 햇살 아래 다양한 복장이 작은 수녀원 마당을 가득 메웠다. 수건으로 머리를 완전히 가리고 긴 옷을 입은 이슬람 여성들과 밤색 수도복을 입은 가르멜 수녀님들이 비슷하면서도 대비되었다. (수녀님들은 머리를 반 밖에 가리지 않았다!) 작고 둥근 키파를 머리에 쓴 유대인이 푸른색 수단을 입은 정교회 사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바로 옆에는, 붉은 장삼을 두른 스님 주위에 청소년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둘러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신한열

이번 모임의 주제는 “내가 너와 함께 있다―어둠 속의 빛”이었다. 비록 각자가 “너와 함께 있다”고 말하는 ‘나’를 하느님, 인생의 친구, 스승, 깨우침 등으로 달리 해석하더라도 어두운 현실 안에서 신앙이 가져다주는 빛을 증거하자는 것이었다.

먼저 이슬람 신자와 불자 한 사람이 각각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발표한 다음 소그룹 대화가 이어졌다. 알제리 출신의 교사는 오래 전에 겪었던 대지진 때의 체험을 얘기하면서 엄청난 고통의 순간에도 마음의 눈, 자비심의 눈으로 봄으로써 절대자이신 하느님의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파리의 학술기관에서 일하는 불자는 스승이 입적했을 때를 어둠의 순간으로 묘사했다. “스승님은 우리에게 태양과도 같은 존재였다. 천 개의 태양처럼 우리를 비추어주시던 그분이 갑자기 돌아가시자 어둠이었다. 모든 것이 완전히 캄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승님은 우리에게 모든 가르침을 주고 떠나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는 그 가르침에 따라 우리 스스로가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내가 속한 소그룹에서는 벨기에 출신의 스님, 알제리 출신의 회교도, 영국 출신 신교도 노신사, 포르투갈 이민 2세인 젊은 여성 파티마, 교구의 교회일치 담당 신부님, 개신교회 목사님,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인 중년 여성들이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의 신앙에 굳건한 바탕을 두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는 진정이 느껴졌다. 성직자나 수도자보다 신앙과 영적 추구에서 더욱 진솔하고 진지한 평신도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회교도 선생님은 스님을 “불자 형제”로, 나를 “그리스도인 형제”로 불렀다. 자신과 다른 종교를 가진 우리가 그에게는 모두 형제였다.

ⓒ신한열

잠시 다과 시간을 가진 뒤에 이어진 원탁 모임은 지난 8년 동안 우리 지역에서 네 종교가 어떻게 교류하면서 우의를 다져왔는지 들려주었다. 대화를 나눈 패널들은 서로를 직함이나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부르면서 격의 없이 대했다. 그들은 모두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신앙이 더욱 성숙해졌다고 고백했다.

샬롱의 유대교 지도자인 미쉘은 이렇게 말했다. “마르셀(개신교 목사)이 나와 함께 복음서를 읽자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감히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유대교 공동체를 벗어나서 공부하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그리스도인들과의 교류와 나눔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나의 종교인 유대교를 더욱 잘 믿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정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러자 가톨릭 주교 브누와는 이렇게 받았다. “미쉘, 우리에게는 유대교가 형님입니다. 유대교 없이 어떻게 그리스도교가 태어날 수 있었겠어요!” 여기에 이슬람 사원의 이맘인 아메드는 “이슬람이 시작할 때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이미 존재했던 두 형님과 같아요!”라고 응답했다. 이 아브라함의 후예들은 서로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듬뿍 가지고 있었다. 특히 회교도들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은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적대심이 사라지지 않는 오늘날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었다.

그리스도인들이 회교도를 무찌르기 위해 무기를 들었던 시절에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이집트의 술탄을 찾아갔다. 어쩌면 그것이 회교도와 그리스도인의 최초의 대화였는지도 모른다. 이번 모임의 준비와 진행을 도운 이들 가운데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이 여럿 있었다. 참가자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다수였지만 그들은 그것이 너무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 깊게 배려했다. 이곳의 가톨릭 신자들은 수적으로 훨씬 적은 개신교나 정교회 신자들을 동등하고 형제적으로 대하는 데 익숙해 있다.

사실 어떤 집단 사이라도 수가 많은 쪽이 힘을 과시할 경우에 대화는 어려워진다. 프랑스 교회가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정치적으로 힘이 없기 때문에 더 겸손할 수 있고, 그것이 다른 종교와의 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한열

기도 시간에는 성당 한가운데에 정방형 탁자를 두고 참가자들이 사방으로 둘러앉았다. 순서지에는 “한 종교가 기도하면 다른 종교인들은 듣는다”라고 적혀 있었다. 혼합주의로 비판받지 않기 위한 배려로 느껴졌다. 먼저 스님 두 분을 포함해서 불자 세 명이 티벳 말과 불어로 기도했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고통의 원인도 사라지기를…….” 유대교인들은 히브리어와 불어로 시편을 읽었다. 이슬람교 신도들은 코란의 한 대목을 읽고 매일 드리는 기도문을 다 함께 외었다. 내 앞에 앉은 10대들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에 몰입한 모습이 너무나 진지하고 아름다웠다.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정교회 노래와 떼제 노래, 시편과 복음 봉독, 응송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개신교 · 정교회 · 가톨릭 신자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사도신경을 바쳤고,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멜로디로 다 함께 주님의 기도를 노래했다.

한 종교의 기도가 끝나고 다음 종교의 기도가 시작되기 전에는 잠시 침묵, 그리고 짧은 기악 연주가 있었다.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네 종교의 기도가 이어졌다. 우리는 점점 더 평온하고 깊은 기도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그 사이 저녁 햇살이 색유리창을 통해 우리 가운데 놓인 탁자 위로 쏟아졌다. 부드러운 빛이 차츰 성당을 채웠다. 성스러움이 우리를 감싸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내면의 빛이 우리 모두를 환히 비추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한참동안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다.

ⓒ신한열

 
 

신한열 수사
떼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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