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스파이크 존즈 감독, 호아킨 피닉스, 스칼렛 요한슨 주연, 상영중

▲ <그녀>, 스파이크 존즈, 2014년작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직업은 편지쓰기다. 고객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쓰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는 아내와 헤어졌다. 헤어진 지 오래지만, 그는 이혼서류에 서명하는 것을 미루어오고 있다. 그는 외로웠다. 고독하게 지내던 그는 한 여인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유쾌하고 재밌고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는 그녀와 얘기를 나누고, 웃고, 사랑을 나누고, 여행을 함께 했다. 그에게는 그녀와의 추억이 하나 둘 쌓였다. 그녀는 완벽했고, 그와 그녀는 너무나 잘 맞는 커플이었다. 그는 행복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그가 몰랐던 그녀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그녀는 그와 너무 다른 세계에 살았다. 그녀의 그와 전혀 달랐다. 그녀는 떠났다.

외로운 한 남자가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가 서로의 차이를 깨닫고 헤어졌다는 이야기다. 평범하다. 그런데 만약 한 남자가 사랑에 빠진 그녀가 컴퓨터 운영체제(OS : Operating System)라면 어떤가? 흥미롭지 않은가? 이야기 속 남자 이름은 테어도르, 테어도르가 사랑에 빠진 그녀의 이름은 사만다이다. 이들이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의 각본상을 비롯하여 각종 비평가협회와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독특한 SF영화이자 로맨스 영화인 <그녀>의 주인공들이다.

<그녀>의 시각적 이미지는 매우 양가적이다. SF영화이지만 SF영화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 기대되는, 날아다니는 자동차나 우주복과 평상복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미래의 의상 같은 상투적인 SF영화의 도상들이 없다. 반면에 로맨스의 이미지가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러브 레터를 읽는 테어도르의 얼굴로 시작한 영화는 많은 부분을 그의 얼굴에 의지하며 전개된다.

SF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로맨스

길을 함께 걷고, 큰 소리로 떠들며 웃고,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밥을 먹고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는 그의 얼굴은, 마주하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넘쳐흐를 만큼 행복으로 가득하다. 은은하면서도 원색이 살아있는 색감과 독특한 질감으로 표현된 화면은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일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이처럼 일상적이고 달콤한 사랑의 순간들이 이 영화에서는 SF영화 속 미래의 낯선 풍경이 되기도 한하는 점이다.

테어도르가 낄낄거리며 길거리를 거닐 때, 침대에서 사랑을 나눌 때, 여행을 떠날 때, 그의 옆에서 그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연인은 바로 카메라가 달린 갈색의 작은 사각형 모양의 컴퓨터다. 작은 컴퓨터와 손잡고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식탁에 앉아 마주보고 떠들며 웃다니 이 무슨 해괴한 상황인가. 게다가 주변을 지나는 행인들은, 마치 테어도르의 행동이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도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는다. 이 영화가 SF영화임을 새삼스레 상기하게 되는 순간들이다.

<그녀>는 관객들에게 로맨스를 이해하기 위한 SF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SF라는 장르는, 그것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든 공통적이고 객관적인 것이든 상관없이, 인간이 경험적인 지식으로 규정해 놓은 경계를 무시하고 확장하길 요구하는 측면이 있다. 즉 인물의 감정과 그 인물들 사이에 일어난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경험이 만든 한계 저 너머로까지 우리의 상상력을 넓힐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이 영화는 기존 인식과 지각의 경계 너머에 있는 상상의 영역에서 사랑의 재구성을 시도한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사랑의 대상이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면,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정확한 정보 수집과 처리 능력을 가진, 목소리와 의식으로만 존재하는 컴퓨터 OS의 사랑 방식을 이해하는 상상력을 요구하는 데 까지 나아간다. 그 단계에 이르러서는, 테어도르는 물론 관객들도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아쉽게도 사만다가 테오도르를 떠남으로서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되는지 알 수 없고, 결과적으로 영화의 더 넓은 상상을 경험할 수도 없다. 게다가 영화는 줄곧 사만다가 테어도르의 믿음처럼 독립된 하나의 인격이 아니라 프로그래밍된 상품에 불가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줌으로써, 사만다가 떠났다는 것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열어두고 있기도 하다.

 

<그녀>와의 사랑은...
자신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세계를 이해해야 유지할 수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오도르가 사만다와의 사랑 혹은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면, 그 첫 단계가 육체 없이 의식으로만 존재하는 방식 즉 자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통해 재구성되는 사랑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감정의 영역 안에서만 이해하지만, 사랑은 아(我)와 비아(非我) 사이의 이해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해는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이성과 지성이 활동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스스로 경험했던 세상 밖으로 나아가려는 능동적인 행위와 나의 밖에 있는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 등을 통해서도 시작되고 유지될 수도 있다. 사랑이 단순히 감정과 호르몬의 문제라면, 오랜 시간 함께하는 부부 관계나 친구간의 우정, ‘네 이웃을 사랑하라’와 같은 명령 등은 영원히 실천 불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좋은 영화가 그렇듯이 <그녀>는 기존의 인식과 지각의 한계에 도전하여 사고와 상상의 영역을 한 층 넓혀준다. 설혹 이 글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 만한 영화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세련된 감각으로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었고, 호아킨 피닉스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정 연기는 그 자체로 이 영화의 중요한 스펙타클이다. 스칼렛 요한슨은 목소리만으로 육체가 없는 인물에게 생생한 인격을 불어넣어 테어도르와 관객을 사랑에 빠뜨린다. 현대인의 고독, 테크놀로지 시대의 소통과 인간 사이의 관계 등의 화두를 던지는 <그녀>는 지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격정적인 액션과 사건 사고에 지쳤다면, <그녀>의 센티멘탈 세계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생산적인 휴식이 될 것이다.




 
 
성진수 (시릴라)
영화연구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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