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호흡처럼, 이 노래처럼]

가톨릭 성가 246장에는 ‘창파에 뜬 일엽주’라는 성모님의 노래가 있다. 이 성가를 부를 때면 늘 살레시오여고 교사로 있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5월이면 어디서나 울려 퍼지던 성가소리로 교정이 생기를 띠었었다. 종교교사였던 내가 가장 바빴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행복했던 시간들이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성모의 밤에 들 초컵을 셀로판지로 만들고 온 건물에 놓일 초컵엔 흙을 미리 담아 놓았었다.

5월 24일 도움이신 마리아의 대축일엔 체육관에 전교생이 모여, 꽃 한 송이를 성모님께 바치고 촛불행렬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종교가 가톨릭이 아니더라도, 살레시오여고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잊지 못할 가장 소중한 추억의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살레시오여고 동창생이라면 선후배의 차이가 나도, 성모성월 행사 이야기만 나오면 지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여고시절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날 오전에 있었던 성가경연대회에선 한개 반이 각각 자유곡과 성가 한 곡씩을 선택하여 발표했었다. 모두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의상도 화려하고 합창 수준도 뛰어나 반의 단합을 한눈에 볼 수 있었으며, 목이 터져라 부르는 성가소리로 교정이 가득 찼었다.

 ⓒ한상봉 기자

종교교사의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나던 시간이기도 했었는데, 1학년 수업을 하며 바로 이 노래, ‘창파에 뜬 일엽주’의 가사가 너무 좋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열변을 토했더니, 그해 성가경연대회에서 1학년들이 이 곡을 많이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곡은 합창으로 하기에 좀 어렵다고들 해서 매년 합창대회에서 선택된 적이 거의 없었다. 결국 모두 열심히 준비했으나 수상의 영예를 얻은 반이 한 반도 없어 아쉬움이 남는 곡이다.

“창파에 뜬 일엽주 풍랑에 시달리듯 이 세상 온갖 시련 그치지 않으니
폭풍이 닥치거든 더욱 보호하소서. 마리아 마리아 성 마리아여.

축복해주옵소서 복되신 성모여 이삭과 열매들과 내 손의 피땀과
굶주리는 자들과 억눌려 우는 자를 마리아 마리아 성 마리아여.

성낸 파도 그 속에 버림을 받은 자 불의에 저항하며 핍박을 받는 자
당신께 의탁하니 용기를 주옵소서. 마리아 마리아 성 마리아여.”

내가 이 성가를 특별히 좋아하는 까닭은 가사에 있다. 이 성가에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 가난한 이웃들이 있다. 시련 속에 놓여 있는 가족과 청소년들이 있고, 하루 종일 노동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있으며, 아무리 일을 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가난의 대물림으로 우는 사람들이 있고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 싸우다 질타를 받는 사람들의 외침이 있으며, 그들을 기억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가난한 사람이기에, 이 노래의 가사를 그냥 쉽게 입으로만 부를 수가 없었고 가슴으로 노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말 마음을 다하여 축복해 주시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두 손을 하늘로 들어올리며,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노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밖에 믿을 데가 없다고…… 어디 가서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겠냐고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얘들아 이 노래 속에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이 들어 있다. 이 노래 속에는 육체적으로 노동하는 사람들의 기도가 있다. 더 이상 희망할 것이 없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일어서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 그것은 나의 모습일 수도 있고, 너희 가족의 모습일 수도 있고, 우리나라의 모습, 이름은 모르지만 내가 여러 가지 이유로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일 수도 있다. 이 노래는 생각 없이 부르면 안 된다. 이 노래를 부를 때는 노래를 부르면서 그 가사로 기도를 바쳐라. 누군가 내가 어려울 때 이 노래를 부르며 날 위해 기도할 것이다. 나 또한 지금 이 순간 나의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이 노래를 부른다. 내가 성모님의 전구로 바치는 이 기도가, 하느님 아버지께 사랑으로 전달되어 가난한 이들의 아픔이 작아지고, 노동하는 이들이 힘을 얻고, 이름 없는 이들에게 희망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니?”

그래 오늘도 그랬다. 오늘 봉산동 성당의 퇴장성가가 바로 이 노래였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다시 가사와 하나가 된다.

“주님, 돌아보소서. 가난한 이들의 빎을!”


김성민 수녀 (젤뜨루다)
살레시오회 수녀이며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기도하는 사람이다. 동화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이야기해주고 싶은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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