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 '가톨릭 에코 북 콘서트' 열어
김준한 신부, 김익중 교수와 다큐 <핵마피아> 제작 중인 김환태 감독이 핵 발전의 문제 나눠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위원장 조해붕 신부)가 주최한 ‘가톨릭 에코 북 콘서트’가 17일 오후 7시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산 다미아노 카페에서 열렸다.

이날 콘서트에서는 체르노빌의 모습을 담은 르포르타주 만화 <체르노빌의 봄>(길찾기, 2013)를 중심으로 김준한 신부(부산교구), 김익중 교수(동국대학교 의학과), 다큐멘터리 <핵마피아>를 제작 중인 김환태 감독이 핵 발전의 문제점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체르노빌의 봄>은 체르노빌 참사가 일어난 지 22년 후인 2008년, 방사능에 노출된 참사 현장을 직접 찾아간 만화가 엠마뉘엘 르파르가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을 담아낸 작품이다. 비극과 참사, 고통이 담겨 있으리라 예상되지만, 저자가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삶’이었다.

▲ 17일 오후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가 주최한 에코 북 콘서트에서 김준한 신부(왼쪽)와 김익중 교수(오른쪽)이 핵발전의 위험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문양효숙 기자

처음에 저자는 방사능 측정기 소리가 귀를 찌르는 현장에서 방진 마스크를 하고 장갑을 낀 채 그림을 그린다. 작가의 곤두선 신경을 그대로 드러내듯 그림은 온통 어두운 회색빛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그림은 봄을 담기 시작한다. 그는 이제는 숲으로 변한 도시의 연두빛, 하얀 꽃잎, 노란 새싹 등을 발견한다. 작가는 “이 모든 색깔이 타오르듯 강렬했다 주위의 모든 것이 고요하게 호흡했다. 관능이 살아 숨 쉰다”라고 기록했다.

문규현 신부는 이 책을 추천하면서 “이 책에서 만나는 체르노빌 사람들과 자연은 말합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고. 뒤틀리고 파괴되고 엉망이 되어버린 삶도 삶이고 죽음을 안고 사는 생명도 생명이라고. 포기하지 말고 핵이라는 악이 초래한 인류사적 비극과 고통의 의미와 연대하라고 말입니다”라고 권면했다.

김준한 신부 "사람은 두려움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희망이 필요
유경촌 주교 "노후원전 재사용은 제2의 세월호 준비하는 것"

김준한 신부는 초고압 송전탑을 막기 위해 9년간 싸워온 밀양에서 경험한 ‘체르노빌의 봄’이 무엇인지 전했다. 김 신부는 ‘자연화’에 집중했다.

“분명 싸움은 팍팍합니다. 21세기 선진국의 문턱에 있는 국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폭력적인 일들이 무궁무진 하지요. 하지만 어르신들이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버텨내는 힘이 분명히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움막을 짓고, 무덤 같은 구덩이를 파면서도 그 옆에 상추를 심고 고추를 심으시지요. 노는 땅을 못 보세요. 희망은 대단한 게 아니라도 어딘가에 살아있어요. 자연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 한다면 분명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신부는 “파국을 강조하는 것은 지나침이 없지만, 사람은 두려움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며 “사고가 난 뒤 발견한 것은 물론 암담하지만, <체르노빌의 봄>에서 자연을 발견한 건 분명 희망”이라고 말했다.

▲ 엠마뉘엘 르파주, <체르노빌의 봄>, 길찾기, 2013
반면, 김익중 교수는 책 속에서 유전자 변형을 일으킨 대형 버섯 등이 아름답게 그려진 듯 해 “저 아름다움을 위해 슬픈 일이 일어나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며 ‘비극의 미화’를 우려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핵 발전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전기사용량을 줄이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모든 선진국들은 전기 사용량이 증가하지 않아 발전소를 세울 이유가 없지만, 한국은 매년 전기 사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전력수요 관리의 핵심은 산업용 전기다. 가정용 전기는 전체의 15%밖에 되지 않고 많이 증가하지 않지만, 산업용 전기는 중국보다도 가격이 30-40%나  싸기 때문에 전기를 많이 쓰는 공장들이 계속 한국으로 들어오는 실정이다.

김준한 신부는 “송전탑 문제의 근원지를 찾아가니 거기 핵발전소가 있었다”며 “2020년이 되어야 지을지 안 지을지가 결정되는 신고리 5,6호기 때문에 왜 어르신들의 논과 밭에 왜 송전탑이 들어서야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어서 김 신부는 “경남은 전력 자급률이 100%가 넘는데, 도시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밀양 어르신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송전탑 세우는 위치를 몇 미터만 물려달라는 요구도 전혀 관철되지 않았습니다. 69개 송전탑 중 단 한 개도요. 사기업이었다면 기업 이미지를 고려해서라도 협의를 했을 텐데, 한전은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정부와 공기업의 오만함이지요. 몇 안 되는 어르신들을 막는 현장 경찰은 3,500명이지요. 싸우다보면 저도 여기저기 멍이 드는데 어르신들은 뼈가 부러지십니다.”

김 신부는 “한 개인이 선하고 정의롭게 살아갈 때 근본이 되는 밑바닥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며 “내가 누리는 전기가 누군가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본의 아니게 가해자가 되는 것”이라 말했다.

▲ 유경촌 주교가 가톨릭 에코 북 콘서트에서 핵발전소의 문제와 밀양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한편, 다큐멘터리 <핵 마피아>를 제작중인 김환태 감독은 자신의 작품이 핵 문제의 위험성을 숨기고 핵산업계에서 이권을 잡고 있는 이른바 ‘핵마피아’를 직접 찾아가 그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과정을 담을 예정이라 설명했다.

이날 에코 북콘서트에는 유경촌 주교가 참석했다. 유 주교는 인사말에서 수명이 다 된 노후 원전을 거론하며, “제2의 세월호 참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닌가”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유 주교는“‘뭐 별 일 있겠어?’라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가져오는가 생각하니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며 “구체적인 실천을 고민하는 자리가 점점 더 늘어난다면 좋은 해결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김익중 교수(단국대 의학과)를 (동국대 의학과)로 바로잡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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