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한백교회에서 엄기호의 <단속사회> 북토크 열려

죄책감, 미안함, 분노, 환멸......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말의 불가능성’ 앞에 서 있다. 세월호 참사를 말하지 않고는 우리 시대를 말할 수 없는 때, 그러나 세월호에 대해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쉽사리 입을 떼기 어려운 이 때에 문화학자 엄기호의 <단속사회> 북토크가 지난 5월 19일(월) 우리신학연구소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공동주관으로 서대문 한백교회에서 열렸다.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는 부제를 달고 출간된 <단속사회>는 인간관계의 연속성이 끊어진 한국 사회를 ‘차단하고[斷] 접속한다[續]’는 ‘단속’의 키워드로 엮어낸 책이다. 이번 북토크는 이 주제의식으로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말을 거는 시간이었다.

희생양을 찾는 우리 시대의 조급함

▲ 엄기호는 "세월호와 대한민국을 동일시하고 우리를 세월호 희생자들과 동일시하는 것은 자기연민을 투사하는 것이라 말했다. ⓒ이미영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처음에는 배를 버리고 떠난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들을 고용한 회사 청해진 해운과 그 회사의 실소유주, 무능한 해경, 더 나아가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 퇴진까지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모두 신자유주의 탓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엄기호는 이러한 양자의 태도 모두가 결국 못 견딜 것 같은 이 시간을 단순하고 쉽게 해결하려는 “무책임한 희생양 찾기”라고 잘라 말했다. 원인을 분명하게 밝히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과 무조건 다 네 탓이라며 책임지라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아주 다른 태도이다.

책임지라고 하니 해경을 해체해버리는, 그야말로 모든 책임을 타자화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대응하고 있다면, 보수든 진보든 많은 이들이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며 자기연민에 빠져서 손쉬운 비난 대상을 찾아 희생양 삼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침몰하고 있다”라는 메타포를 통해 세월호와 대한민국을 동일시하고 우리를 세월호 희생자들과 동일시하는 것은 실제로는 그들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연민을 투사하는 것으로, 정작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망각하게 하는 것 역시 우리가 경계해야 할 태도라는 것이다. 손쉽게 면피용 희생양을 찾을 것이 아니라 ‘견뎌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엄 기호는 말했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곁’

▲ <단속사회>, 엄기호, 창비, 2014
그렇다고 너무나 참담하여 할 말을 잃었다며 침묵하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라고 엄 박사는 선을 그었다. 그는 슬픔과 비극은 곁을 돌아볼 수 있는 때를 만드는데, 이때를 놓치지 않고 질문을 던지고 공유하고 토론하며 ‘곁’을 만들어 가자고 제안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우리가 사는 이 현재의 삶이 얼마나 허망한지 공통의 질문이 생겨나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함께 견딤’의 코뮤니타스(공동체)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같은 대답을 공유하는 ‘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질문을 공유하며 서로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경청하는 ‘곁’을 만들어 서로의 경험 안에서 지혜와 전승을 만들어내고 이어가자는 제안이었다. 엄기호는 그러한 곁을 만들어 내는 것은 SNS처럼 실시간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이 아니라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만들어내야 하는 ‘이야기’라며, 종교인들과 학자들, 활동가들은 이런 공통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북토크에 참가한 청중들은 엄기호의 강연에 공감하며, 세월호 참사 이후에 각 개인이, 또 교회 공동체가 어떤 ‘곁’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과 의견을 나누었다. 이번 <단속사회> 북토크는 책임을 묻기보다는 다만 슬퍼함에만 머물도록 조장하는 종교와 언론 등의 ‘단속(斷續)된 애도’의 문제점을 다시 생각해 보며, ‘견뎌냄’의 시간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곁’을 고민해 보게 만든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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