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지요하]

19일 오후에도 다시 서울을 갔습니다.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이 주최하는 네 번째 ‘거리피정’이 7시 30분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날의 네 번째 거리피정도 미사로 진행되었습니다. 가톨릭행동의 거리피정은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표어와 함께 ‘탐욕스런 자본과 무능한 정권에 희생된 세월호 희생자와 모든 이웃을 위한 참회의 거리미사’임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대한문 앞 광장에서 거리피정을 가져왔습니다만, 19일 저녁은 개신교 교단(감리교)에서 세월호 관련 참회 추모 집회를 열기로 되어 있어서, ‘가톨릭행동’은 서울광장 분수대 앞에서 거리피정을 가졌습니다.

미사 집전과 강론은 현우석 스테파노(의정부교구 5-7지구 병원사목 담당) 신부가 맡아주셨고, 각 수도회의 수녀들과 신도들 300명가량이 참례하였습니다. 나는 미사 중에 눈대중으로 300명가량임을 헤아리고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2명을 떠올렸습니다. 300여명의 신자들이 바치는 뜨겁고도 간절한 기도가 302명 영혼들에게 고루 미치게 되기를 또한 간절히 기도하게 되더군요.

▲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는 시민들이 접은 수많은 노란 세월호가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사랑과 연대의 정을 담고 놓여있다. ⓒ한상봉 기자

이날 미사의 특이한 풍경은 ‘평화의 인사’ 나누기였습니다. 사제가 영성체 전에 신자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권하면 신자들은 “평화를 빕니다”라고 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가벼운 포옹을 하기도 하는데요, 이날 미사를 주례하는 현우석 신부는 서울광장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새로운 방식을 채택하였습니다.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두 개의 원을 만들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줄의 신자들을 서로 마주보게 한 다음 안쪽 줄의 신자들을 시계방향으로 돌게 하면서 번갈아 마주보게 되는 신자들이 악수를 하고 서로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십자를 그려주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자리에서 수십 명과 차례로 축복을 나누는 색다른 방식의 축복인사 나누기였지요.

신자들은 서로의 손바닥에 십자를 그려주면서 늘 함께 하기를 다짐하였고 연대와 공유의 정을 아로새길 수 있었습니다. 시간 관계상 한 바퀴를 다 돌 수는 없었지만 번갈아 대략 30여 명과 손을 잡고 축복을 나누었기에 모두들 즐겁고 뿌듯한 마음이었습니다.

‘영성체 후 기도’ 다음에는 내가 앞에 나가 마이크를 잡고 ‘자유발언’을 하고 나서 자작시 낭송을 했습니다. 내가 또 한 번 눈물로 지은 시였습니다.

지난 5일 저녁 대한문 앞 광장에서 거행된 두 번째 거리피정 미사 때 나는 ‘참회 추모시’를 낭송한 바 있습니다. 세월호 안에서 숨져간 단원고 학생들이 못난 어른들과 세상을 깨우쳤다는 생각으로 제목을 ‘세상을 깨어나게 한 우리 아들딸들아’로 잡은 시였지요. 눈물을 흘리며 지은 그 시를 낭송하기 전에 나는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가슴에 달고 있는 노란 리본의 의미와 지향을 형상화한 시를 지어 가지고 와서 다음 번 미사 때 들려드리겠노라는 약속이었지요.

자진해서 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리며 시를 지은 거지요. 명색이 시인이요 소설가인 내가 눈물을 흘리며 시를 지어본 경험은 거의 없습니다. 21년 전인 1993년 가을 모종의 기가 막힌 사건을 겪고 나서 성당 성체조배실에서 시 서너 편을 지으며 눈물을 흘린 이후로는 눈물을 흘리며 시를 지어본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나는 1982년 소설가로 등단하였지만 30여 년 동안 문인 명색을 유지하면서 시도 꽤 많이 지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행사에 필요한 목적시(축시․헌시․추모시․기도시․조시 등)을 많이 지었습니다. 대개는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쪽의 요청을 받고 목적시를 지은 거지요.

그러다보니 목적시들이 아주 많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82년 등단 30주년을 스스로 기념하는 뜻으로 목적시들만을 모아서 <불씨>라는 이름의 시집을 발간하였습니다. 시집의 표제시인 <불씨>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2012년 7월 2일부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매주 월요일 저녁 대한문 앞에서 거행하는 미사에 나도 적극 참여하면서 짓게 된 시였습니다. 그 ‘대한문 미사’가 생명과 평화, 민주주의의 ‘불씨’가 되기를 바라는 뜨거운 소망의 표현이었지요.

천주교 수원교구 신부님 한 분의 도움으로 그 일을 할 수 있었고, 재판 1천 권을 찍어 그해 10월 22일 서울광장에서 거행된 시국미사 때 전량 무료 배포를 하기도 했지요. 정말 민주주의의 작은 ‘불씨’가 되기를 소망하며….

2013년에도 나는 또 한 권의 목적시집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환경 관련 목적시들이 주축을 이루는 <그리운 천수만>이라는 시집이지요. 조력발전이라는 이름의 ‘개발귀신’에 맞서 ‘가로림만’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동참하다 보니, 30여 전 개발귀신에게 천수만을 빼앗긴 일이 생각나서 20년 전 천수만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노래했던 연작시를 중심으로 두 번째 목적시집을 간행한 거지요.

이 시집은 고장(충남 태안)의 후배 문인들이 주머니를 털어서 내게 만들어준 ‘헌정시집’이랍니다. 등단 이후 30년 동안 고향에 머물며 고장의 정신문화와 문예마당을 위해 헌신해온 내 노고에 보답하는 뜻으로 시행한 일이지요. 후배 문인들은 내게 소설집 출간을 권하였지만, 나는 비용 문제를 생각하여 또 한 권의 목적시집 간행을 선택하였지요.

목적시를 짓다 보면 마음이 비장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때로는 비통한 마음도 갖게 되지요. 하지만 아무리 비장함과 비통함을 안고 시를 짓는다 하더라도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습니다. 21년 전 사사로운 참담한 일을 겪었을 때의 성체조배실 시작(詩作)을 제외하고는 정말 눈물 흘리며 시를 지어본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세월호 관련 시 두 편을 지을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첫 번째 시인 ‘세상을 깨어나게 한 우리 아들딸들아’를 5일 저녁 대한문 미사 중에 낭송할 때는 울먹이기도 했지요. 두 번째 시인 ‘노란 리본은 생명의 깃발이다’를 19일 저녁 서울광장 미사 중에 낭송할 때는 울먹이지 않았지만….

곁가지 얘기들이 길었습니다. 별 볼일 없는 삼류문사 주제에 구렁이 제 몸 추는 것 같은 얘기를 많이 늘어놓아서 면구스럽기도 합니다. 나이 먹어가면서 잔소리가 많아지는 것도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용과 해량을 빌며, 내가 19일 저녁 서울광장 미사 중에 낭송했던 시를 소개합니다. 

▲ ⓒ한상봉 기자
 

노란 리본은 생명의 깃발이다

2014년 4월 어느 날
산천의 노란 개나리들이 무참히 작별을 고하면서
노란 나비 꽃들이 온 산하에 피어났다

슬픔 속에서 피어난 꽃들이다
분노와 비탄 속에서 환생한 꽃들이다
합장한 수억만의 손들
뭇 생령들의 날숨과 들숨 속에서 탄생한 꽃들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생명 꽃이다
오늘을 살게 하고 내일을 열게 하는 꽃이다

리본 모양의 노란 생명 꽃은
겨레의 간절한 소망을 안고 왔다
슬픔과 비탄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기 위해 왔다
기원이라는 이름
연대라는 이름
공유라는 이름을 데불고 왔다

무사히 살아 돌아오기를 바랐던
간절한 기원들은 허무하게 스러졌을지라도
그 기원을 승화시키려는 의로운 마음들이
찬란한 봄날의 개나리들처럼 만개했다

그리하여 수억만의 노란 리본들이
생명의 나비처럼
새 생명의 약동처럼
온 산하에서 힘차게 날아오른다

오랜 세월 경제와 성장만을 위해
폭주를 거듭해온 자본의 횡포에 짓눌려
좁쌀처럼 졸아들었던 생명의 가치들이 새롭게 움을 튼다
권력의 발톱에 채여 나뒹굴던
진실과 양심
정의와 평화
민주주의의 깃발들이
노란 리본을 껴안고 새롭게 펄럭인다

바닷물 속에서 숨져간 우리 아들딸들이
세상을 깨우기 위해 환생한 꽃들이다
우리가 잊기도 하고 거리를 두기도 했던
때로는 의심하고 부정하고 무시하고 홀대하기도 했던
그 생명의 깃발들이
다시금 우리들 가슴에 깃대를 꽂는다

자, 우리 다 함께 눈을 뜨자
손잡고 일어서자
어깨동무하고 나아가자
힘차게 나아가자

너와 나, 우리들 가슴에 달린 작은 리본은
행동하는 양심의 표본이다
거대한 인간 사랑의 깃발이다
신념과 희망의 몸짓이다

우리들 심장에 깃대를 꽂은
신비롭고도 우람한 깃발을 높이 들고
저 인간회복, 민주회복의 등마루를 향해
우리 다 함께 뜨거운 발걸음으로
힘차게 나아가자
우리 아들딸들에게 다시는 미안하지 않도록! 


지요하 (막시모)
소설가, 대전교구 태안성당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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