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현철]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지켜보며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세상의 평화는 힘에 의한 평화입니다. 세상 도처에 넘쳐나는 평화는 바로 힘에 의해 유지되는 거짓 평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소리 없는 신음으로 유지되는 평화, 잔인한 평화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바로 이 같은 거짓 평화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평화는 정의에서 비롯되는 평화입니다. 그리고 정의는 바로 창조질서의 보전에 있습니다.(사목헌장 78항) 사람을 두고 보면, 창조질서의 핵심은 바로 ‘하느님의 모상’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제대로 설 때, 하느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가 제대로 서고, 이럴 때에만 창조질서가 유지됩니다.

올바른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 안에 머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한계의 끝없는 극복, 근대 이후 찬양받아 온 정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계를 모르거나 무시하면 그 끝은 파국이며 파멸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이야기도 바로 이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창세기 2장) 세상에는 우리가 건드릴 수 있지만,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것, 건드릴 수는 있지만 건드린 결과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오늘 우리에게 이 진리를 뼈아프게 가르쳐줍니다. 할 수 있지만, 배의 수명을 그렇게 함부로 늘려서는 안 됩니다. 할 수 있지만, 배를 그렇게 함부로 뜯어고쳐는 안 됩니다. 할 수 있지만, 배에 그렇게 많은 짐을 싣고 배의 평형수를 마음대로 줄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 식으로 배를 건드릴 수는 있겠지만, 그 결과는 우리가 결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초래한, 하지만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참혹한 결과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서 있습니다.

ⓒ문양효숙 기자

지금 이 땅에 그런 일들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가장 위중한 문제는 핵발전소입니다. 특히, 수명을 십년 연장해서 가동하고 있는 고리 1호기입니다. 심지어 10년 연장을 한 번 더 감행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고리 1호기입니다. 지하수가 하루에 수백 톤씩 쏟아져 나오는, 취약한 암반층에 짓고 있는 경주의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핵발전소를 그렇게 운용하고, 방폐장을 그렇게 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결과를 결코 감당할 수 없습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정부가 입버릇처럼 되뇌는 ‘절대 안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장담 자체가 인간의 한계를 무시하는 발언입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아무리 해도 고장이 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고장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고장이 났을 때에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거기까지만 우리는 갈 수 있습니다. 가야합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것은 우리의 한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파국입니다.

이 같은 근본 원인을 무시한 정부의 대책은 진정성이 없습니다. 진정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을 막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문제의 뿌리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사람들에게 알리고 호소하여 근본부터 다시 시작하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문제의 뿌리는 버려두고, 정부의 조직을 아무리 바꾼다고 해도, 그 밥에 그 나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제시한 해경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과 같은 대책은 신중하다기 보다는 선정적일 뿐입니다. 누구와 어떤 논의를 거쳤는지도 모르는 이 같은 대책을 들고 나온 대통령에게서는 전혀 진정성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이 급박한 상황에도 이명박 정권이 핵발전소를 수출한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한 박 대통령의 행보는 그의 근본적인 관심이 안전이 아니라 여전히 ‘돈’이라는 것을 확인해줍니다.

“사회불안이나 분열을 야기시키는 일들은 국민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런 속내는 긴급 민생대책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을 때 이미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고, 이 사건이 알려주는 문제의 뿌리를 들여다보자며 침묵시위를 한 사람들은 사회불안과 분열을 야기하는 세력, 국민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악영향을 끼치는 세력으로 몰렸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격리되어야 하고, 실제로 그들은 연행되었습니다.

문제의 뿌리는 돈과 권력입니다. 돈과 권력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제어해야 합니다. 한계의 무조건적인 극복, 욕망의 무조건적인 실현은 인간 승리가 아니라 인간 파멸의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가 이 차원에서 철저히 반성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 반성은 특히, 권력을 부여받은 이들, 돈 있는 이들에게 더욱 더 요구됩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만, 우리는 파멸의 길이 아닌 참된 평화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조현철 신부 (프란치스코)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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