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외국 언론에서는 가끔 한국을 상징할 때 좋은 표현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는 coup(쿠데타), corruption(부패), catastrophe(재난), crisis(위기), 4C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외국에서 몇 년 언론사에서 일 할 때, 그곳 뉴스는 한국을 다룰 때 4C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우 부끄러워 변명을 준비하는데 외국 기자가 하는 말, “한국은 경제성장에 뛰어난 점이 있으나 쿠데타와 부패가 동반하고 있어서 4C 표현이 타당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참 난감하고 할 말이 없었던 씁쓸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세월호의 참사가 4C와 정확하게 오버랩 됩니다. 그러나 그 뿌리는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일당의 쿠데타에 있으며 지금의 대통령 박근혜와 정치적, 역사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일입니다. 쿠데타(coup)를 통해 절대 권력을 쥔 박정희는 절대 부패(corruption)할 수밖에 없었고 부패한 권력은 재난(catastrophe) 상황에서 위기(crisis)에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시스템이 일상적으로 멍들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와 함께 퍼스트 레이디로 살아가면서 아버지의 통치스타일을 배웠고 박근혜에 의해 임명된 지금의 고위 관료들은 지금이 2014년이 아니라 5·16 쿠데타 시절의 태도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이 박정희 시절에 유신헌법의 초안을 만든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체제는 박정희 체제의 연장선에 있으므로 원칙과 상식이 가동되기보다 권력의 입맛대로 움직이고 박정희 체제에서 모든 편법과 불법으로 국가가 운영되었던 것처럼 이미 지난 2012년에 부정과 공작으로 대선이 치러지면서 재난과 위기는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 (사진출처/청와대)

지난 대선은 공작이라는 부정선거로 얼룩졌고, 이를 숨기기 위한 또 다른 공작의 연속이었고 이런 공작 당사자들을 기소하려는 일부의 검찰을 제거하는 공작과 유우성 간첩 조작 등, 국가는 지금 헌정 질서 파괴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데도 고위권력자들은 이 문제의 뿌리인 4C를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체제와 구조에서는 고위직 관료들은 부정이나 부패를 불의로 보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 정도의 부패는 있는 것으로 생각하므로 민주적 절차나, 정치적 책임 등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출발한 정권에서는 이미 그에 따르는 재난과 위기는 잉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근혜는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합니다. 그 자신이 이미 박정희의 쿠데타를 인정하지도 않고, 자신의 대통령 당선이 공작과 불법의 결과로서 처벌 대상인데도 말입니다.

박근혜가 아무리 ‘국가개조’를 말해도 관료들은 속으로는 웃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누가 박근혜의 처벌과 책임 발언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겠습니까? 영화의 한 장면처럼 ‘너나 잘 하세요’가 떠오릅니다. 부정선거와 공작으로 시작한 대통령의 자리가 아무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개조’의 대상이고 현재의 대통령 자리야 말로 개조의 대상임을 머리 좋은 공직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침몰한 세월호 참사를 대응하는 박근혜를 보면서 문득 5·16쿠데타가 떠올랐습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가 ‘국가개조’를 부르짖었던 모습과 영락없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더디게 성장해온 우리나의 민주주의는 2012년 대선이 부정선거로 얼룩지면서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의 시절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부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고, 어떤 불법도 책임 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태도에서 이미 다른 형태의 쿠데타를 맞이한 것입니다.

세월호의 사고는 박정희가 5, 16 군사정변의 부당함을 감추려는 의도로 절차를 무시하며 급성장을 주도한 결과입니다. 이미 그 때부터 우리나라는 돈이면 모든 것에 앞서는 배금주의, 이기주의를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절차와 과정이 부당해도 상관없는 성장 우선주의, 평등보다는 권력이 우선하는 사회가 세월호 사고의 뿌리이며 부끄러운 4C의 정체입니다.

박정희 덕분에 역설적으로 5월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계절이 되었습니다만, 1961년 5월 16일의 잔인한 뿌리가 박근혜라는 줄기로 다시 나타날 것에 방심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아! 그것도 어린 학생들 300여명을 바다 한 가운데에 모아놓고 비수를 들이대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양운기 수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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