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오늘을 말한다 43] 마태오 5,3-12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했습니다. 5월엔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도 있으며, 스승의 날도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고맙고 귀한 존재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특히 올해 5월은 더욱 그렇습니다. 많은 어른들이 자녀들 앞에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스승들 역시 제자들 앞에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이 저절로 생각납니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무수한 부모의 정성과 돌봄은 의심할 수 없으며, 제자들을 향해 사랑과 애정을 아끼지 않는 무수한 스승의 열정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부모에 대한 사랑, 자녀에 대한 헌신, 스승에 대한 고마움, 제자에 대한 애정을 마음에 품고 있지 않은 사람 없습니다. 그 마음이야말로 소박하고 평범한 사람이 갖고 있는 위대함입니다.

▲ 5.18묘역 희생자 영정 ⓒ한상봉 기자

그렇지만 5월은 우리 ‘사회’에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습니다. 지난 5월 16일은 1961년부터 1987년까지의 오랜 군사정권이 시작된 쿠데타(국가에 폭력을 가한)가 있었던 날이고, 5월18일은 34년 전 광주와 그 인근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나는 이 사회에 군사독재의 길을 연 날이고, 다른 하나는 이 사회에 민주화의 길을 연 날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어떤 이들은 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 하고, 5·18 민주화 운동을 ‘폭도들의 무장봉기’라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독자들께서 수고스럽겠지만 당시의 ‘언론’이 어떻게 전했는지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언론’이 항상 진리, 자유, 정의,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윤리적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흔히 ‘관급기사(국가가 공급하는 기사)’를 싣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1997년 정부가 ‘5·18 민주화 운동’을 국가 기념일로 삼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가 봅니다. 당시의 언론이 전한 정보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 같은 정서를 간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국가보훈처에서는 그동안 기념행사에서 다 함께 불렀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지 않음으로써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원래는 백기완 님의 80년 12월 젊은 춤꾼에게 띄우는 ‘묏비나리’라는 장시의 마지막 부분이었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라라 산자여 따르라”

1981년 5월 광주항쟁 때 희생된 청년 노동자의 넋을 달래는 노래극의 마지막 합창으로 부른 노래가 바로 앞에 소개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습니다. 그리고 1982년 2월 20일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 이 노래가 불려 졌으며, 이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 운동’의 현장 곳곳에서 불려 지게 되었습니다. 왜 97년 이후 국가기념일로 정하고 기념식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함께 불렀던 노래를 ‘공식’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 광주대교구는 매해 5.18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사진제공/광주인권평화재단)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5·18 민주화 운동’과 함께 했습니다. 특히 “광주대교구는 어는 때보다도 민중의 고통의 현장에 가까이 가 그들의 아픔에 동참했다..... 공수부대의 과잉 탄압을 사실대로 전달하고 과잉탄압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 광주대교구 사제들의 진실 알리기, 구속자 석방 등을 펼친 월요미사와 윤대주교 등의 활동...6월 항쟁과 민주주의 쟁취에 모두 다 한 몫을 했다.”(서중석, ‘광주항쟁과 천주교회의 진실 알리기)

그리고 광주대교구는 오늘을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로 정하여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 기념미사에서 듣는 하느님의 말씀은 1독서로 이사야서 9,1-6 혹은 이사야서 11,1-9을 말씀이며, 복음 말씀은 마태오 5.3-12 혹은 루카 6,20-23입니다. 우리가 ‘참행복’이란 제목으로 잘 알고 있는 대목입니다.

요즘 ‘세월호’ 참사를 놓고 ‘가슴이 먹먹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합니다만, 그 가운데 하나가 ‘기억과 망각’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인재를 겪었으면서도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 ‘기억하지 못하고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억하지 않고 망각한다면 같은 잘못이 되풀이 됩니다. ‘5·18 민주화 운동’도 마찬가지라고 믿습니다.

‘불의’를 기억하지 않고 망각한다면 단순히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불의는 더 정교하고 참혹하게 확장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꿈을 가져보며 제안합니다. 우선 기억하고 망각하지 않기 위해, 그래서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기 위해, 더 나아가 민주주의를 한 걸음 쉼 없이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5·18 민주화 운동기념일’을 한국천주교회의 기념일로 삼아 전국의 모든 본당에서 한 마음 한 뜻으로 미사를 봉헌하자고 말입니다. 미사야말로 예수님 죽음과 부활의 ‘기억’과 ‘재현’의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정의와 평화의 원천이신 하느님,
파스카의 신비가 저희 안에서 언제나 살아 움직이게 하시어,
5·18을 맞는 저희가 신앙의 빛으로 새롭게 되어,
다툼보다는 일치를, 분노와 미움보다는 화해와 용서로 지난날의 상처를 극복하고,
정의와 평화의 열매를 거두는 기쁨에 이르게 하소서.”
(광주대교구, ‘5·18 민주화 운동기념일’ 미사 본기도) 


박동호 신부 (안드레아)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신정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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