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3년째 ‘5·18과 한국천주교회’ 학술대회 열어
도덕에서 정치적 개입으로 확장된 신앙실천

5.18 광주민중항쟁 34주년을 즈음한 14일 광주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광주인권평화재단과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주최로 ‘5.18과 한국천주교회’ 학술대회가 열렸다. 3년째 진행된 이 학술대회의 이번 주제는 광주항쟁 당시 천주교의 활동을 실천적 · 영성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었다.

학술대회를 시작하면서 노성기 신부(광주가톨릭대 총장)은 “지난 34년 동안 왜 광주대교구는 5.18을 부둥켜안고 가슴 아파했을까” 질문하며 답을 찾아보자고 했다. 노 신부는 “‘왜?’라는 질문 자체가 바로 하나의 신학하기 작업”이라며, 광주대교구가 5.18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5.18은 반인륜적 학살이 자행된 민족의 아픔이요, 비극”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기조강연에서 김희중 대주교(광주대교구장)는 “그동안 3년에 걸쳐 진행된 학술대회에서 논문을 제출한 발제자들은 신부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는 측면에서는 종교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웠다”고 자평했다. 이어 “평화적인 항쟁과 수습”을 위해 사제들이 노력했지만 가톨릭교회가 체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면서, 그래도 “광주대교구가 폭압적인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에 관하여 진실규명이라는 명제 앞에서는 어떠한 타협이나 회유도 거부했다”고 말했다.

▲ 14일 광주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5.18과 한국천주교회’ 학술대회가 열렸다. (사진 제공 /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정의구현사제단, 신학적 정당성 얻어 사회참여의 제도화 낳아
광주항쟁, 현지 교회인 광주대교구만의 일로 제한돼

이날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오승용 교수(전남대학교 5.18연구소)는 “종교 코드를 통해 읽는 5.18 항쟁”이라는 주제로 “종교는 교리를 실천하는 ‘신앙실행의 자유’를 통해 국가와 국가의 정책, 국가의 담지자인 정권과 긴장관계를 형성해 왔다”며 광주항쟁 전후의 가톨릭교회의 신앙 실행 방식의 변화를 밝혔다.

한국 천주교회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순교 시대 이후 오랫동안 정부와 대결구도나 긴장관계를 조성하려 하지 않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 당시 전체 인구의 3.5%에 불과함에도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저항의 중심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1970년대 한국 천주교회는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에 맞서 1971년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과 구속, 그리고 교회의 효과적 대응을 위해 젊은 사제들을 중심으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결성된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여기서 오 교수는 “물론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되었다고 가톨릭이 정의구현사제단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여 행동 통일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신학적 정당화’를 목표로 천주교의 민주화운동을 제도화하고 주체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계기로 작용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전 교회가 전국적인 투쟁을 벌였다면, 5.18 항쟁이 진행되던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가톨릭교회의 활동은 현지 교회인 광주대교구를 통하여 이루어졌고, “전 교회 차원의 개입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오승용 교수는 말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지원이 있었지만, 광주 지역을 제외한 타 지역 교구에서 5.18 항쟁에 대한 지원이나 강경진압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광주대교구의 항쟁 참여, 처음엔 사회교리에 대한 추상적 반복에 머물러
김성용 신부 “수습 위해 활동한 성직자를 내란죄로 몰아세우는 나라는 망할 것”

한편 광주대교구의 활동에 대해서 “현장교회로서 자동적 개입”이었고, 교구장과 일부 사제의 참여라는 한계를 가졌으며, 대응 방식도 “바티칸의 사회적 교의의 추상적 반복이라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결국 가톨릭교회는 5.18 항쟁과 관련하여 “화해와 평화 그리고 국민적 단결을 강조함으로써 과도정부와 신군부에 대하여 ‘조건부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비판적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역할을 수행하였고, 경제적 혼란과 무정부상태에 대하여 과도정부 자체의 존재를 거부하지는 못했다”는 게 오승용 교수의 지적이다.

그러나 항쟁에 직접 참여한 김성용 신부 등 ‘민중교회’는 투쟁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5.18 항쟁의 진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것과 “정부와 군의 책임을 인정하고 군의 만행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면서, “교회는 5.18 민주화운동에 직접 참여하여 시민군에 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시민군의 이해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합법적인 공간과 국제수준의 정치적 지원을 동원했다”고 긍정적인 평가도 덧붙였다.

이는 당시 광주 남동성당 주임 김성용 신부의 법정 최후진술에 잘 나타나 있다. 김 신부는 “성직자가 내란에 가담할 정도의 나라라면 그 나라를 희망이 없으며, 수습을 위해 활동한 성직자를 내란죄로 몰아세우는 그 나라는 망할 것”이라고 진술함으로써 지금까지의 도덕적 ・ 인도적 차원의 개입으로부터 정치적 차원의 개입으로 전환됨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5.18과 한국천주교회’를 주제로 3년째 학술대회를 계속해 왔다. 사진은 지난해 5월 5.18 광주민중항쟁 33주년 기념 미사 중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왼쪽)가 5.18기념재단이 발간한 증언록 <5.18의 기억과 역사―천주교 편>을 받아들고 있는 모습 ⓒ한상봉 기자

5.18 광주항쟁의 ‘영성화’ 작업은 사회교리에 따라
성찰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교회의 세상 복음화 활동

제2발제에서 광주항쟁의 경험에서 교회의 길을 모색한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는 “그때 저항하며 물리치고 극복하려 했던 대상이 어쩌면 그때보다 더 잔인하고 더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를 질문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광주대교구의 ‘5.18의 영성화’ 작업을 “기억과 의식의 회복”과 “시대에 적응”하려는 노력이라며, 이를 위해 “교회의 ‘사회교리’에 따라 성찰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교회의 세상 복음화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교회가 “세상의 복음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면, 교회 자신의 복음화는 더욱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교회에서 “사회교리가 지금까지 외면당한 채 ‘문서’로서 잠자고 있다”는 점이라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날에는 과거만큼 교회 문헌들에 관심을 갖지 않고 빨리 잊어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지만, “한국 교회는 ‘관심’을 가진 적도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사회교리 외면하는 신학생 양성 과정
모든 과정에 사회교리 연관성 가르쳐야

한국 교회가 ‘양적 성장’만을 ‘복음화’로 이해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박동호 신부는 세상을 향한 복음화 사명에 대해 한국 교회가 소홀했던 원인을 먼저 ‘신학생 양성 과정’에서 찾았다. 신학교 양성 과정이 ‘사목’을 전제로 한다면, “당연히 모든 교과과정에 ‘사회교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봉사해야 할 ‘하느님 백성’이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론, 그리스도론을 비롯해 교회사, 전례, 윤리신학, 교회법 따위를 가르칠 때도 ‘사회교리’와 관련해서 학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신학과 교회와 관념에 집중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인간의 일’과 ‘세상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도록 양성”하는 이분법적 태도를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영적인 세속성’이며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라 경고한 사실을 덧붙였다. <복음의 기쁨>에서는 “복음화를 사명으로 받아 일하는 많은 사람한테서, 비록 그들이 기도를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극도의 개인주의, 정체성의 위기, 그리고 열정의 소멸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극도의 개인주의, 정체성의 위기, 그리고 열정의 소멸은 서로를 키우는 악”이라고 말했다.

“신학교의 ‘교회와 세상 사이의 경계 세우기(담 쌓기)’ 훈련은 ‘복음의 열정’으로 무장하고 ‘하느님 백성’에 대한 봉사와 세상의 복음화라는 사명(mission)에 헌신하기보다는, ‘자아도취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능력 위주의 기능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엘리트집단’으로서의 교회의 성직자 중심의 자기보전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한다.”

박동호 신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과 <간추린 사회교리> 등 사회교리 문헌들에 비추어 볼 때 “주교의 주요 임무(봉사의 임무) 가운데 첫째는 복음 선포”이며, “하느님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는 것이 사제들의 첫째 임무”라고 말했다.

또한 성경 공부조차도 ‘개인주의적’이며 ‘영적’인 의미 발견의 도구로 활용되는 현실을 개탄했다. 이어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라, 불행에 대한 심리적 위안거리나 행복에 대한 신적 담보로, 혹은 정의의 실현에 무관심하거나, 불의에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편리한 수단으로 전락된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교황 프란치스코가 “저는 자기 안위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건전하지 못한(unhealthy)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섰기 때문에 다치고, 상처입고, 더러워진 그런 교회를 더 좋아합니다”라고 한 말씀을 인용하며, “용기 있고 창조적인” 교회를 희망했다. 이어 “저는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the Poor Church for the Poor)를 희망합니다”라는 교황의 말로 발제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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