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연구소 공개대학 - 교회 설립부터 신유박해까지 6]

윤유일이 1790년 북경으로 파견돼 구베아 주교에게서 성직자를 보내주겠다고 약속받은 후, 오기로 했던 레메디오스 신부가 사망하자 그를 대신해 주문모 신부가 서울에 도착한 것은 1795년 1월 3일이다. 1800년 4월 순교하기 전까지 주문모 신부는 선교사 없이 불안정하게 유지되었던 조선 교회를 체계적으로 조직하여 교세를 확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 방상근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지난 8일 서울 중구 한국교회사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린 공개대학에서 방상근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은 조선에 들어온 최초의 신부인 주문모가 어떤 활동을 펼쳤는지, 그리고 주문모 신부를 보호하기 위해 3명의 신자가 순교한 을묘사건에 대해 강의했다.

주문모(세례명 야고보) 신부는 1752년 중국 강남 소주의 곤산현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고모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장년이 된 후 북경으로 가서 신학교를 졸업했고, 구베아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1794년 12월 주문모 신부는 윤유일과 지황, 최인길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이듬해에 조선 땅을 밟았다.

주문모 신부가 서울에 와서 처음 머물렀던 곳은 지금의 서울 계동에 있는 최인길의 집이다. 그는 최인길에게 조선말을 배우며, 조선 교회의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그해 성주간에는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필담으로 고해성사를 주었으며, 부활절인 4월 5일에는 한국 천주교회 최초로 부활 미사를 봉헌했다. 6월에는 양근에 있는 윤유일의 집을 거쳐 고산의 이존창과 전주의 윤관검의 집을 방문하는 등 지방을 돌기도 했다.

방상근 연구실장은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오고 6개월 후 그를 밀고한 사람이 생겨 체포령이 내려졌다”며 포졸들을 피해 피신한 과정을 설명했다. 최인길이 신부로 위장해 중국말을 하며 포졸들을 속이는 동안, 주문모 신부는 남대문 근처에 있는 강완숙의 집으로 피신했다. 체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최인길의 신분은 드러났고, 뒤이어 윤유일과 지황도 체포되었다. 이들은 포도청에서 심한 고문을 당했지만 끝까지 신부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아, 결국에 매를 맞고 순교했다.

“재판관들이 그들에게 천주교를 믿는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을 숭배하는지 질문하자 그들은 모두 용감하게 그렇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저주하고 모독하라고 하자 그들은 자기들은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참된 하느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모독하느니 차라리 천 번 만 번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단호하게 대답하였습니다.”(1797년 8월 15일자, 구베아 주교가 사천교구 생 마르탱 주교에게 보낸 서한)

그 사이 주문모 신부는 몇몇 교우 집에서 며칠을 보낸 후, 지방으로 피신하여 1년 정도 떠돌다가, 1796년 서울로 돌아왔다.

방 연구실장은 “주문모 신부가 회장제를 설정하고 명도회(明道會)를 설립하는 등 조선 교회를 조직화하고 체계화시켜 안정적으로 이끌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회장제는 신부가 한 명뿐이기에 지역, 단체, 여성 등 사목에 따라 회장을 임명하여 효율적으로 신자들을 보살피기 위해 만든 제도이다. 회장들은 신부를 대신해 지방의 공소를 관리했고, 모든 신앙 활동이 비밀리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신자 관리와 함께 신자와 신부, 신자와 신자 사이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명도회는 주문모 신부가 북경에 있는 단체를 모방해 만든 교리 연구 및 전교 단체이다. 명도회는 <명도회규>(明道會規)에 따라 운영되었는데, 회원이 되려면 신부에게 이름을 알리고 신공(神工)을 해야 했다. 신공은 교리를 공부해서 남에게 가르치는 것으로 1년의 유예기간 동안 이를 부지런히 해야만 입회할 수 있었다. 여성들도 가입할 수 있었는데, 명도회의 영향으로 입교한 사람들 중의 3분의 2가 부녀자였다.

방 연구실장은 “회장제와 명도회가 이 시기 한국 교회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고, 그 결과 1795년에 주문모 신부가 입국할 당시 4,000명이었던 신자 수가 1800년에는 10,000명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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