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경호’ 목적이라지만…개인정보보호법 위반 · 유출 피해 우려돼
미등록 이주민 등 개인정보 못 밝히는 이들 참석도 제한

한국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위원장 강우일 주교, 이하 방한준비위)가 오는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봉헌되는 순교자 124위 시복미사 참석자를 모집하면서 ‘교황 경호 문제’를 이유로 신청자의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신자들의 개인정보가 교황 경호를 담당하는 경찰청에 제공될 우려와 함께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개인정보를 제공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참가가 제한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각 교구에서는 방한준비위의 요청에 따라 본당과 기관을 통해 시복미사 참석자 명단을 취합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입수한 A교구의 ‘교황님 집전 시복미사와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참석인원 파악 협조’ 공문에 따르면, 방한준비위는 4월 말 교구별 참석인원을 배정하고, 5월 30일까지 참석자의 이름과 세례명,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한 명단을 제출하도록 각 교구에 요청했다.

“경호 이유로 주민등록번호 수집은 과도”
일선 본당, 개인정보 제공 대상, 목적 등 밝히지 않아

주민등록번호 수집 이유에 대해 A교구는 공문에서 ‘교황 경호 문제’라고만 밝혔을 뿐, 수집한 개인정보를 어떻게 사용하고 보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교황의 경호는 교회 기관이 아닌, 경찰청에서 담당하게 된다. 따라서 방한준비위가 수집한 신자들의 개인정보가 경찰청에 제공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경우 당사자에게 제공 대상과 이용 목적, 보유 및 이용 기간 등을 알리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일선 본당과 기관에서는 미사 참석 희망자에게 이러한 설명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개인정보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박주민 변호사는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때 당사자에게 동의를 얻지 않아도 되는 경우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거나 법령상 의무를 준수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공공기관이 법령 등에서 정하는 소관 업무의 수행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명백히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급박한 생명, 신체, 재산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다. 이 경우(시복미사)는 예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미사 참석자의 개인정보를 ‘교황 경호 문제’와 관련해 사용한다 하더라도, 정보 제공에 대한 동의를 받지 않았으므로 이를 경찰에 제공하는 것은 위법행위가 될 수 있다.

경호 문제를 이유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것이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이라는 지적도 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참석자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름과 생년월일, 연락처로도 충분히 식별이 가능하다. 물론 그 정보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건 주민등록번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특히 주민등록번호는 다른 개인정보에 비해 도용됐을 때 피해가 훨씬 크다. 오 활동가는 “최근 잇따르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서 보듯이 충분히 도용될 위험이 크며, 그로 인해 다수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한국 천주교는 오는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기간 중 거행될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 교황 방한준비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본당과 기관, 교구, 방한준비위를 거치며 신자들의 개인정보가 광범위하게 수집되는 만큼, 노출될 위험이 높다. 방한준비위는 시복미사 참석자 수를 약 20만 명으로 예상하고 있다. 즉, 20만 건의 개인정보가 수집된다는 얘기다. 일부 본당에서는 단체장들이 보안이 취약한 휴대전화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참가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보를 수집하는 측이 관리에 신경을 쓴다고 하더라도 예기치 않은 사고로 신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대교구의 한 본당 사제는 “방한준비위나 교구 차원에서 개인정보 수집에 관한 안내문을 만들어 배포한다면 본당에서도 그에 따라 개인정보 수집 과정과 관리를 더 확실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등록 이주민, 사실상 미사 참석자 등록 불가

한편, 미사 참석자의 주민등록번호 수집은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참석을 제한하는 문제도 야기한다. 미등록 이주민이 대표적이다. 한국 천주교 대부분의 교구에서는 주요 사목활동 중 하나로 이주노동자 공동체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들 구성원 중에는 미등록 이주민들이 포함돼 있다. 외국인의 경우 주민등록번호 대신 외국인등록번호나 여권번호를 기재할 수 있지만, 미등록 이주민은 강제추방의 위험 때문에 사실상 등록이 불가능하다.

전주교구 익산노동자의집 김호철 사무국장은 “미사 참석에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조차 체류 자격에 따라 또다시 차별하고, 구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정부의 방침이 그렇다 해도 교회는 이들의 울타리가 되어 미등록 이주민들도 교황님 미사에 참여할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서 교회가 이주사목을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익산노동자의집은 공동체에 찾아오는 이주민들을 ‘미등록’과 ‘등록’으로 구분하지 않기 위해 아예 미사 참석자를 모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방한준비위, “실명확인 위해 어쩔 수 없어…안전한 관리 노력할 것”

방한준비위는 참석자들의 실명 확인을 위해서는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방한준비위 관계자는 “다른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경찰청에서도 주민등록번호 외에는 실명 확인 방법이 없다고 해 부득이하게 이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수집과 관리 절차에 대해서는 “교구 사무처에 보낸 협조 공문에 어느 정도 설명을 했는데, 각 본당과 기관으로 내려가면서 누락된 것 같다”고 답했다.

개인정보 제공에 따른 참석 제한에 대해서는 “교회 안에서도 행사에 소외된 이웃들이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많아서 방법을 찾고 있다. 특수한 처지에 있는 분들에 대해 따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