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정평위, 노동사목, 노조 공동으로 노동절 미사 봉헌해

▲ 9일 저녁, 대구 가톨릭근로자회관에서 노동자 미사가 열렸다 (사진 제공 /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제124회 노동절을 맞아 천주교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김영호 신부, 이하 정평위)와 대구노동사목이 9일 저녁 대구 가톨릭근로자회관 대강당에서 노동자 미사를 봉헌했다. 대구 정평위, 대구노동사목과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전국여성노조 대경지부가 공동주최한 미사에는 80여 명의 노동자, 신자가 참석했다.

이날 미사에서는 경주 발레오만도 노조 정연재 지회장과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곽상호 대의원이 현장의 소리를 전했다.

자동차 부품 회사인 발레오만도는 한라그룹 계열이던 만도기계가 1999년 프랑스에 본사를 둔 발레오로 넘어간 회사다. 2010년 노사 대립으로 98일간의 직장폐쇄와 대량해고 사태를 겪었다. 작년 7월 사장이 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폭행을 용인하듯 말하고 그 손해배상을 ‘개값’으로 표현해 노조의 큰 반발을 일으켰다. 당시 노조 측이 공개한 영상에서 강기봉 발레오만도 사장은 한 회사 간부가 “제가 패도 돼요? 개값 물어주실래요”라고 묻자 “개값이야 언제든 물어주지”라고 답했다.

120여 명의 조합원이 있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김해, 진주, 통영 3개 분회는 미사 이틀 전인 7일 파업 투쟁에 돌입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작년 7월 금속노조 직할지회로 가입한 바 있다.

▲ 노동자 미사에 참석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 (사진 제공 /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이날 김영호 신부는 강론에 앞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가 발표한 노동절 메시지를 낭독했다. 강론에서 김 신부는 “극우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의 상식적인 정신세계를 끊임없이 왜곡하고 변질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그들은 노동을 근로로 바꾸고, 녹색을 성장으로 바꾸고, 빨강을 보수로 바꾸어 버렸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박정희 정권 이래로 노동은 불온하고 위험한 말이 되었다”며 “자기들 말대로 노동자는 없고 모두 근로자라면, 왜 파업하면 ‘근로자 파업’이 아니라 꼭 ‘노동자 파업’이라고 하며 근로자를 위한 정부 부처의 이름은 왜 ‘고용근로부’가 아니라 ‘고용노동부’인가” 되물었다.

“근로라는 말은 한자로 풀면 ‘힘들게 부지런히 일함’이라는 뜻입니다. 노동이란 말은 ‘몸을 움직여서 일을 함’이라는 뜻이지요.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손, 발, 두뇌 등 신체의 모든 기능을 이용해서 하는 의식적이고 종합적인 인간 활동이 노동입니다. 근로와 노동이란 말은 이처럼 다른 말입니다. 그런데 노동이란 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대신 근로란 말을 쓰면서부터, 모든 노동자가 근로자가 되면서부터 정말 재능 없고 능력 없고 배우지 못한 못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쌔빠지게 하는 일이 노동이 되어버렸습니다.”

김 신부는 “‘노동’이 ‘근로’가 되면서 노동자, 농민이 천덕꾸러기, 못난 사람들, 버려진 잉여인간으로 취급당하게 됐다”고 지적하면서, “우리는 근로에 의해 추방당한 노동을 다시 되찾아 와야 한다. 이 사회에서 노동이 당당하게 자기 이름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김영호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이어서 김 신부는 “우리 신앙은 하느님을 노동자로 고백하며, 예수님도 목수 일을 하신 노동자였다”며 “노동에 대한 우리 교회의 가르침은 아주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것을 손수 만드시는 노동자의 모습, 그것이 창세기가 고백하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노동은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예수님 또한 목공기술과 담장을 쌓은 석축기술, 그리고 가재도구나 농기구를 정비하는 제철기술을 가진 가내수공업 노동자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대문 고쳐! 부서진 담장 고쳐!’ ‘달구지 고쳐!’ 하면서 일거리를 찾아다녀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하루 벌어 하루를 살던 힘겨운 노동자의 삶을 예수님도 사셨던 것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이 노동자이시고 농부시라면 농부가 하는 일, 노동자가 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하느님다운 일, 예수님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신부는 “교회는 5월 1일, 세계 노동자의 날에, 노동의 가치를 기억하고 노동의 숭고함을 가르치고자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요셉을 노동자의 주보성인으로 삼아 노동자를 기억하는 축일을 지내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농부와 노동자들이야말로 이 세상을 ‘보기에 좋은 세상’으로 만드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거룩한 노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소중한 사람들임을 우리 신앙인은 늘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김 신부는 “우리 시대에 무시당하고 천대받는 농부, 노동자들이 진정 자신의 노동에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정당한 임금을 받고, 사회적으로도 노동의 가치가 인정을 받으며, 기쁘고 당당하게 노동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미사 중에는 건설노동자의 작업화, 병원노동자의 주사기, 투쟁 상황 정리 문건 등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터에서 사용하는 작업도구와 생산물 등을 봉헌하기도 했다.

이날 노동자들과 신자들은 미사 말미에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노동하는 이들에 대한 존중이 이뤄지도록 민주주의 사수와 박근혜 정권 퇴진투쟁에 나설 것 ▲노동자 민중을 절망으로 내모는 민영화정책 저지, 연금개악저지 및 노동탄압 분쇄투쟁에 적극 나설 것 ▲세월호 참사 원인에 대한 정부의 은폐 의혹과 책임 회피를 규탄하며 생활임금쟁취와 민중 생존권 투쟁에 적극 나설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 이날 노동자와 신자들은 건설노동자의 작업화, 투쟁 문건 등을 봉헌했다. (사진 제공 /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