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탐구생활 - 5]

내가 처음 이 마을로 집을 보러 왔을 때, 지금 우리 집보다 훨씬 탐나던 집이 있었다. 그 집은 오래된 돌담이 빙 둘러져 있는 데다 뼈대가 튼튼해 보이는 흙집이라 딱 내 취향이었다. 게다가 여러 가지 꽃나무가 자리한 앞마당과 정돈된 뒤뜰까지! 오랫동안 내가 꿈에 그려온 집이 바로 거기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을 사정에 눈이 어두웠던 나는 그 집이 관리가 잘 된 빈집인 줄만 알고 혹시 저 집은 안 파나 여러 번 흘깃거렸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적막했고, 또 집의 일부는 허물어져 있었기에 내 마음대로 빈집이라 단정 지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집엔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셨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동래 할머니. 할머니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소리 없이 조용히 움직이시며 집 안팎을 살뜰히 돌보고 계셨다. 기역자로 구부러진 허리로, 지팡이를 짚고서.

▲ 정면에서 바라본 동래 할머니네 집 ⓒ정청라

때문에 그 집 마당과 대문 앞은 언제나 훤하다. 가까이 사는 깔끔쟁이 수봉 아주머니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워메, 저 살팎잔 봐. 아흔 넘은 노인이 저걸 쓸었다고 하면 누가 믿겄어. 집이는 저것잔 보고 배워.”

수봉 아주머니는 은근슬쩍 나를 타박하시기까지 했다. 하기사, 동래 할머니 집에 비하면 우리 집은 얼마나 어수선한가. 시멘트 마당 틈틈이 비쭉비쭉 솟아 나온 잡풀들, 관리가 안 되고 방치된 화분과 마당에 카펫처럼 수북이 깔린 나무 부스러기까지…….

마을 사람들이 뒤에서 흉을 보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마당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거의 안 하고 살았다. 도시에 살 때 마당이란 공간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일까? 나에겐 마당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낯설기만 해서, 도무지 내 할 일로 다가오지 않는다. 또한 아직까지는 집 안을 정돈하고 돌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집 둘레까지 손을 뻗을 여력이 없기도 하고 말이다.

꽃나무에 들이는 정성과 관심 또한 마찬가지다. 꽃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이 밭 작물을 해칠까 봐 지금 있는 꽃나무를 베 버릴까 고민을 한 적도 있다. 꽃은 당장 입으로 들어와 배를 불리는 게 아니다 보니, 먹을거리를 가꾸는 것만큼 마음이 쓰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동래 할머니를 지켜보며 내가 너무 팍팍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나무가 안중에 없는 삶은 마치 시가 없는 일상 같은 것은 아닐지…….

할머니는 어쩌다 우리 집에 오시면 꽃나무만 쳐다보고 꽃나무 얘기만 하다가 돌아가신다.

“목련꽃이 좋게 피었어. 이 집 목련나무랑 우리 집 목련나무를 한 날 심었는디 말이여. 수완댁(우리 집의 옛 주인)이랑 장에 가서 같이 사왔는디 우리 집 나무는 한 번 베내서 이 집이 목련만큼 못 컸어. 꽃이 참 좋네.”

“꽃(불두화)이 이삐게 피었네. 꽃이 참 좋아. 꺾어다가 우리 터에 심어놔야겄어. 이 집 나무도 사둔 집이서 꺾어다 심었는디 이라고 잘 자랐어. 나도 심어야지 심어야지 하다가 못 심었네.”

▲ 할머니가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시던 우리 집 불두화 ⓒ정청라

나직한 목소리로 독백처럼, 아니 꽃나무와 단둘이 나누는 사랑의 대화처럼 주절거리시는 것이다. 심지어 태풍 볼라벤 때 우리 집 지붕이 뚫리는 참사를 겪은 와중에도 할머니는 찾아오셔서 꽃나무 얘기를 하셨다.

“저 꽃나무(작약) 좀 삽으로 캐줄 수 있을까? 이 집 꽃이 많이 번져서 참 좋아. 수완댁이 살 때부터 캐다 숭굴라고 몇 번이나 했는디 삽질을 못해서 못 캤어.”

이 정도로 동래 할머니 머릿속은 꽃나무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야말로 오매불망 꽃나무!

그런데 한 달, 하루가 다르게 할머니가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귀는 점점 어두워지고, 치매 증상도 갈수록 심해져서 이제 할머니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몇 달 전에는 화장실에서 넘어져 엉덩이뼈를 심하게 다치시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뒤뜰에서 풀을 뽑다가 아래로 굴러 떨어져 얼굴 여기저기에 피멍이 들기도 했다. 할머니의 초조한 눈빛을 보면 앞으로 얼마만큼 버티실 수 있을지 조마조마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여전히 꽃나무를 바라볼 때만은 할머니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되살아난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가운데도, 이렇게 꽃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아무래도 동래 할머니 마음속에는 아직까지도 늙지 않은 고운 소녀가 있는 모양이다.

동래 할머니는
올해 나이 아흔넷. 처음 뵈었을 때만 해도 정신도 총총하시고 아픈 데도 하나 없으셨는데 작년과 올해 들어 점점 쇠약해지고 계신다. 장수의 비결을 물으면 “내가 청(꿀)을 많이 먹어서 근갑써. 우리 집 양반이 벌을 쳐서 항시 청을 먹었거든. 근디 산불 나서 그 양반이 타 죽고낭께 벌도 가버리대. 내가 키울라고 했드만 다 가블어”라고 말씀하신다. 슬하에 육남매를 두었는데 공사장에서 일하던 막내아들이 사고로 먼저 저 세상으로 가고, 남아 있는 오남매가 보고픈지 할머니는 집에 있을 때 늘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여기저기 전화를 하신다.
 

정청라
귀농 7년차, 결혼 5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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