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자 수와 세월호 비교’ KBS 보도국장 해임 요구해

▲ 9일 오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거리에 앉아 있다. ⓒ문양효숙 기자

“오늘 대통령 못 뵈면 여기가 우리 집이고 누울 곳입니다. 분명히 대통령 만나서 얘기 드리고 가야 합니다. 그냥 갈 바에는 솔직히 여기서 죽는 게 낫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이 어버이날 밤 카네이션 대신 청와대 앞 거리에서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부여잡고 밤을 지샜다.

8일 오후 10시경 유가족들은 KBS 길환영 사장과 김시곤 보도국장의 직접 사과와 김 보도국장의 해임을 요구하며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김시곤 보도국장은 지난달 말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그러나 KBS 측은 유가족들이 사과를 기다리는 동안 “KBS는 자사 간부들이 유가족에게 폭행을 당했으며 일부 언론들이 오히려 유가족의 편을 든다”며 항의하는 입장문을 배포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9일 오전 2시 30분경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향했으나 경찰에 가로막혀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 주저앉고 말았다.

유가족들은 경찰에 둘러싸인 채 거리에서 밤을 새웠다. 오전 9시 30분경 청와대 박준우 정무수석이 유가족과 면담을 시작했다. 유가족들이 면담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안산 단원고 생존자 가족 30여 명이 희생자 가족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전날 밤부터 소식을 듣고 걱정하다 아침에 급히 안산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 9일 오전 안산 단원고 세월호 생존자 학생의 부모들이 유가족들과 함께하기 위해 청와대 앞으로 걸어오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오전 10시 30분, 자신을 단원고 생존자 장 모 학생의 아버지라고 밝힌 한 가족은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더 이상 이런 끔찍한 비극을 만들지 않기 위해 생존자 가족들도 함께하겠습니다. 제 아이와 친한 아이도, 집사람 사돈 조카도 이 자리에 (영정사진으로) 있습니다. 책임자가 당연히 처벌 받아야지요. 당연히 진심으로 사과해야지요.”

생존자 가족의 발언이 끝나자 영정을 들고 있던 유족 한 명은 “너희들이라도 살아서 고맙다”라고 외쳤다. 희생자 김 모 학생의 아버지는 “(자녀가) 살아있다 해도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라며 “와주셔서 고맙다. 그리고 아직 팽목항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은 KBS뿐 아니라 MBC, SBS 등 기자들에게 “너희들은 카메라 치워라”, “그런 기사 쓸 거면서 취재하지 말라”, “너희들이 기자냐”라고 외치며 분노를 드러냈다.

한편 오전 미사를 마치고 달려왔다는 이강서 신부(서울대교구)는 “미사를 준비하면서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다면 어디에, 누구와 함께 계실까’ 하고 묵상했다”며 “예수님은 기울어진 배 속에서 속절없이 죽어간 아이들 틈바구니에 계실 것이고, 울부짖는 유가족들과 함께 우셨을 것이고, 무능한 식물 정권에 항의하는 이들의 피맺힌 자리에 함께 계시지 않겠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영정을 부여안고 모포를 덮은 채 길바닥에 누워있는 부모들 쪽을 차마 볼 수가 없다며, “예수님을 잃었던 마리아와 제자들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달리 뭐라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비통한 마음을 전했다.

▲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이 모여 있다. ⓒ문양효숙 기자

오전 11시 50분경 청와대 측과 면담을 하고 나온 유가족 대표는 “박준우 정무수석이나 이정현 홍보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가족의 뜻을 전하고 면담을 신청해보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KBS 보도국장 발언 등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사과나 인사조치 명할 수는 없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거리에 모인 유가족들은 “청와대 측이 대화를 하며 ‘모르던 사실들을 많이 들었다’, ‘생생하게 들으니 만남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전하자 격앙했다.

대표단은 상황 설명을 마친 뒤 다시 청와대로 들어갔다.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빼온 영정사진을 품에 안은 유족과 오전에 달려온 생존자 가족들은 대통령이 면담에 응할 때까지 계속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9일 오전 현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은 직접 싼 김밥과 음료수, 모자 등을 들고 찾아온 인근 주민들과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모여든 시민들로 점점 붐비고 있다.

▲ 유가족을 가로막은 경찰차 앞에 시민들이 노란색 종이배를 접어 붙이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거리에서 밤을 지새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지쳐 잠들어 있다. ⓒ문양효숙 기자

▲ 한 시민이 세월호 유가족을 가로막은 경찰차에 종이배를 접어 붙이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시민들이 매단 노란 리본이 달려있다. ⓒ문양효숙 기자

▲ ‘살려내라’, ‘기억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매단 리본이 매달려 있다. ⓒ문양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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