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사회, 사회민주화와 복지시스템 통해 기복 문화 청산

한국종교의 문제점에 대해 여론조사를 하면 대체로 물량주의, 성장주의와 함께 기복주의가 우선 순위에 오른다. 물량주의, 성장주의가 자본주의가 이식되면서 형성된 것이라면 기복주의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논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대중들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다. 기복주의는 종교발달의 초기단계에서 발생해 문명과 문화, 경제가 발전할수록 약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사시대부터 철기시대 이전까지의 고대 문화시대는 샤먼이나 일부 권력을 가진 사제들이 혹세무민하면서 미신이 보편화돼 동물은 물론 사람까지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 기원 전 5세기 이후 붓다, 마하비라, 조로아스터, 예수 같은 인물들이 출현한 고전 종교시대에는 자신의 안락보다는 이타적 신앙을 강조하는 흐름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위대한 스승들이 사라진 후 추종자들의 일부는 스승의 뜻과는 다른 고대 종교시대의 법과 제도(예배와 각종 성사 등)를 변형해 스스로 권력이 되거나 국가권력에 협력하면서 전쟁과 가혹한 세금, 굶주림,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대중의 일상을 기복신앙으로 묶어두고 체제운영에 동원하는 중세적 종교문화시대를 열기도 했다.

중세이후 서구는 과학혁명과 시민혁명, 복지국가 건설을 통해 기복신앙의 부정적 유산을 청산했다. 과학혁명을 통해서는 종교의 미신적인 요소를 걷어냈으며 프랑스나 영국 등에서는 시민혁명을 통해 절대군주를 사형시키고 귀족과 종교권력을 해체하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20세기에는 부의 적절한 분배를 통해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물질적 보장과 의료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복지사회를 만듦으로써 기복신앙의 중요 요소인 가난과 질병에서 대중들을 해방시켰다.

그러나 서구를 제외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제3세계 국가는 여전히 기복신앙이 위세를 떨친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30년간의 경제발전에도 기복신앙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연말연시, 입시철이 되면 사찰과 교회, 성당에는 가족의 안녕과 자식의 합격을 비는 중년 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은총으로 아말감 치아가 금니로 바뀐다?

가족을 위한 기도는 그나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 없지만 일부 종교의 일탈행위나 과도한 행동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성령의 은총으로 일반 아말감 치아가 금니로 바꿀 수 있다는 개신교의 '금이빨 선교', 해인사가 추진했던 세계 최대 청동대불 건립추진, 성모마리아가 피눈물을 흘렸다는 등의 기적소동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킨 천주교의 윤율리아 사건 등은 가장 부정적인 사례 중에 하나다.

선진사회를 지향하는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상식이하의 기복행위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사머니즘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샤머니즘은 인간 일체의 생활 현상을 초월적 신령계가 지배한다고 믿는다.

결국 길흉화복은 오로지 운명적이어서 만사는 팔자소관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면서 무기력하고 나약한 인간이 되게 한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일상과 운명에 대해 주체적인 책임을 지고 결단하려 하지 않는다. 또 사회적으로 국가의 법과 제도에 순응하고 오로지 가족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소극적 삶을 살게 한다.

두 번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서구와 같이 지식층, 부르주아와 기층 대중이 지배질서를 완전히 갈아엎은 시민혁명의 경험이 없고 분배정의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서구는 시민혁명을 통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만들어 복지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신뢰할 만한 정치·경제·사회시스템을 통해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을 완화시켰다. 또한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인권과 양성평등, 소수자 배려 등을 통해 국가의 부당한 간섭에서 독립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인간을 만들어 냈다.

'가난은 국가가 해결할 수 없다'는 권력과 언론, 기득권 선전선동에 현혹

그에 비해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도 왕조시대 · 일제강점기의 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아직까지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정부가 인권을 유린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특권층에 관대한 불공정한 사법체계로 인해 시민들은 국가권력과 법체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용산 철거민과 촛불집회 참석시민에 대한 과도한 경찰의 법집행은 우리의 인권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정부출연기관인 한국법제연구원이 2008년 9월 발표한 '2008 국민법의식 조사연구'(만 19세 이상 3007명 면접조사)에 따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동의하느냐에 대한 질문에서 65.2%가 동의했고 '권력이나 재력이 재판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95.6%가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해 특권층에 대한 피해의식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국민 10명 중 6명은 법을 제대로 안 지키고 있는데 그 이유는 '법대로 살면 손해를 보기 때문'(34.3%)이라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고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서'(20.1%), '법을 지키는 것이 불편해서'(14.5%), '법을 잘 몰라서'(11.7%) 등이 뒤를 이었다. 이처럼 사법 불신이 심하다 보니 현재도 점치러 가면 가장 피해야할 재난 중에 하나가 관재(官災)로 되어 있다.

경제적으로도 지난 30년간 경제발전의 과실이 재벌, 고위관료 등 소수에게 집중되는 등 사회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기층 대중의 삶은 날로 피폐해지고 있다. < 한겨레 > 가 지난 1월 2일 발표한 여론조사(리서치 플러스, 전국 성인남녀 800명)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살 만한 사회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가구소득 월 20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72.1%)과 블루칼라(68.8%) 등 사회 취약계층과 50살 이상 장년층(67.8%)에서 부정적인 대답이 많았다.

< 한국일보 > 여론조사(1월 2일자, 미디어리서치)에서는 현재의 생활 형편이 IMF 위기 때보다 '어렵다'라는 응답이 58.3%에 달했고 '비슷하다'는 32.9%,' 조금 더 낫다'는 7.1%,' 훨씬 더 낫다'는 0.5%에 불과했다.

어려운 현실에 직면한 대중들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점집을 찾고 때에 따라서는 소위 '대박'을 꿈꾸며 각종 범죄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자신은 물론 가정까지 파괴하기도 한다. 신도 32명이 집단자살 해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오대양 사건'(1987년)이나 종말이 다가왔다며 신도들의 재산을 가로챈 '다미선교회 사건'(1992년)은 대중의 갈망을 악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가가 부의 분배에 소극적이 되면 대중들은 기대 대상을 사회보다는 자신이나 가족들에게 우선 두게 된다. 앞서 < 한겨레 > 여론조사에서 '자신이 품고 있는 희망'이 '나와 가족의 건강'(29.8%), '가족의 행복'(27.4%), '경제상황 호전'(25.0%) 등으로 나타났다.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대상이 대부분 '자신'이나 '가족'인 반면 대통령·정부·국회·언론기관 등에 대한 기대는 응답자의 절반도 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가난은 국가가 해결할 수 없다'는 국가권력과 언론, 특권계층의 선동에 속아 복지를 개인과 가족문제로 돌리면서 사태해결에 소극적이거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선거 때는 자신들과는 계급·계층 이해가 다른 후보들의 로또 복권같은 공약에 투표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지난 대선과 총선 때 일용직 노동자,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들이 일자리가 늘어나고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로 이명박 후보나 한나라당에 표를 던진 것은 기복주의적 정치행위나 다름없다. '황우석 사태' 역시 그의 연구만으로도 대한민국 팔자가 핀다는 언론과 권력, 대중들이 합작해 벌인 일종의 '쇼'였다. 한마디로 대한민국판 '메시야 신드롬'이었던 것이다.

기도와 함께 적극적인 사회 참여가 근본적인 문제해결 가능

정치권력과 함께 종교계 역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기복신앙을 부추기고 있다. 부의 분배와 사회 민주화, 개인의 권리의식이 향상되면 될수록 성직자들의 권위의식이나 불법·탈법행위가 근절되고 그만큼 그들에게 의존하는 기복행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복행위가 줄어든다는 것은 곧 성직계급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서구교회는 오래 전부터 교회운영을 평신도에게 맡기는 등 교회 민주화와 재정 투명화가 일반화되었고, 성직자들도 시민으로서 세금을 내고 일상에서도 일반 신도들과 편안하게 만나 호프를 즐기는 등 권위의식을 버린 지 오래다.

이에 대해 한국교회 성직자들은 서구사회가 섹스 · 마약 · 동성애 · 낙태 등 윤리적으로 타락해 서구교회가 문을 닫는다는 식의 원색적 비난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국가 투명성이나 윤리지수는 한국보다 훨씬 높다.

우리나라의 국가투명성 지수는 5.6점(2008년 현재)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평균인 7.11점을 크게 밑돌고 있는 반면 성과 마약 등에 가장 개방적인 덴마크와 뉴질랜드, 스웨덴이 9.3점으로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싱가포르(9.2점·4위) 홍콩(8.1점·12위) 일본(7.3점·18위) 대만(5.7점·39위) 등 아시아 이웃 국가에도 뒤지고 있다.

사회복지도 이명박 정권 들어서면서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소수 부자들 세금은 깎아주고, 대신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원하는 예산은 줄이고 있는 것이다. 현 정권의 복지정책의 핵심은 '성장을 통한 복지' 로 말 그대로 국가의 역할과 공공성보다는 민간의 재원동원과 경쟁, 효율을 앞세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자유주의 복지정책은 영국과 미국에서 파탄난 것으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사회복지지출 수준은 OECD 국가 평균인 21.83%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9.09%(2005년 기준), 그리고 순사회복지지출은 OECD 평균인 23.2%의 절반 수준인 12.23%.이다.

반면 국가 중기재정에서 사회간접자본(SOC) 분야는 연평균 1.9%p에서 7.3%p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사회복지지출 감소와 대비되는 이러한 수치는 복지보다는 건설족을 위한 '삽질 경제'가 계속되어왔음을 잘 보여준다. 이는 곧 예산이 없어서 복지를 늘릴 수 없다는 것이 허구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같은 상황에도 한국의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신도들에게 기도만 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심지어는 자기종교를 믿으면 부자되고 다른 종교를 믿으면 가난해진다고 헛된 가르침을 남발한다. 이러한 종교가 영향력을 가진 나라는 그만큼 기복이나 근본주의 신앙, 미신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서구국가에서 전통적 신앙이 강한 미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가 득세하고 900여명이 집단 자살한 인민사원 사건이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종교의 본질이 대중들의 현실에 대한 불안과 죽음, 가난, 질병 등에 대한 우려를 해소시켜주고 마음의 평안을 주기 위한 것이라면 스웨덴 · 노르웨이 · 핀란드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이미 국가·사회적 장치와 정신분석 등 학문적 성과를 통해 이미 그것을 달성했다.

결국 한국의 종교대중들이 기복종교에서 벗어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리려면 기도와 함께 정치사회 시스템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로또복권을 놓고 기도하고 '뉴타운 재개발', '4대강 유역 개발'로 나라와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사이비 메시야들에게 매달리는 것보다 차라리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거나 아니면 선거 때 자신들의 계급과 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 오히려 현재의 질곡에서 벗어날 확률이 높다. 기도가 해결해준다고?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백찬홍/유영모, 함석헌을 선생을 기리는 재단법인 씨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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