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나라
평화와 예의의 마을로 돌아갔으면.
조금 덜 먹어도
깨끗한 자연, 나누는 마음으로 살아봤으면.
젊음이 여기저기 갇혀서 아우성거리고
늙음은 제 빛을 잃고 휘청거리는
우리들 사는 곳 너무나 아파.
고요한 나라,
정의와 사랑의 마을로 돌아갔으면.
조금 덜 입어도
웃음이, 인정이 넘치는 사람 사는 세상 만나봤으면.
제 할 일, 제 분수를 아는 사람들과
하늘 어우어진 그 옛 땅을 한번만이라도 밟아봤으면.
ㅡ 넋두리
아침,
문을 나서는데 계단으로 내려오던 아이가 꾸벅 인사를 한다.
처음 보는 남자아이인데 해맑은 얼굴이다.
"어디 가니?"
"우유 사러요 아빠가 사오래요. 마트에 가서요."
몇살이니? 물으니 여덟살이란다. 내 눈에는 여섯살쯤으로 보였는데.
이 추운 아침에 굳이 코 앞에 상가를 두고 마트까지 가서 사오라는 아빠의 저의는 알 길 없지만
아이 걸음으로는 족히 가는데만도 십분은 걸리는 거리다.
게다가 심드렁하게 가기싫은 표정이 역력하니.. 더 걸릴 것은 자명한 일.
아이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아파트 계단을 같이 내려와 차에 타면서
태워줄까? 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아이의 부모가 티비를 보며.. 차 태워준다고 하는 사람에 대해 뭐라고 경계의 말을 했을지,
그래서 아이는 그런 사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섣불리 친절을 베풀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는 걸 깜빡 잊은 것이다.
어차피 내 가는 길이 마트를 지나는 길인데.. 그럼 나도 기분좋고 아이도 수월할텐데.
백미러로 지지부진 걸어오는 아이를 보며 한숨이 나온다.
강씨,
그는 자신의 친절을 의심없이 받아들인 사람들만 해친게 아니다.
그와 일면식도 없는 내 등에도 두려움의 창을 내리꽂았다.
오늘 아침, 어린 꼬맹이와 착한 세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잘라버렸다.
지난 여름 내 친구가 일주일인가.. 혼자 도보여행을 하며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했었다.
사람들이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따뜻하고 친절하다고,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 같다고,
내가 이렇게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줄 몰랐다고 친구는 자랑을 했었다.
그때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래서 올해의 계획 귀퉁이에 슬며시 바램처럼 끼워두기도 했는데..다시 자신이 없어진다.
그러고보면 결국 한사람으로부터 세상과 마음의 문을 열고 닫는 힘이 나오는구나 싶다.
갑자기 언젠가 읽었던 글 하나가 생각이 난다.
2006년도인가 미국 펜실바니아 주의 조그만 마을에 있는 아미쉬의 원룸스쿨에 총기사고가 났었다.
한 젊은이가 갑자기 총을 가지고 들어와 수업중인 어린 아이들에게 무차별 난사를 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다섯명의 어린 소녀들이 죽고 5명은 부상을 당하고..그리고 그는 자살을 해 버렸다.
이 사건은 미국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피해자 가족들이 보여준 태도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즉시 자신의 아이들이 죽거나 중상을 입어 병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젊은이의 집을 방문하여 그 가족을 위로했다는 것이다.
이 아미쉬 사람들은 자신들 뿐만 아니라 그 가족도 똑같이 피해자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 이후로도..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고 살인자의 가족으로 죄인취급을 받는
그 부인과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피해동지로서 아픔을 나누고
답지된 성금도 함께 나누며 서로 위로하고 친교를 나누었다고 한다.
한사람이 저지른 살인행각이 온통 세상을 흙탕물처럼 흐리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그 흙탕물을 닦아내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피해자 가족만큼이나 충격과 두려움, 공포, 배신의 늪속에 빠져있을
그 집의 남겨진 가족들,
특히나 아이들은 어떡하고 있나..걱정이 된다.
조희선/ 시인, <거부할 수 없는 사람>, <타요춤을 아시나요> 등 시집을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