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상지종] “시간을 돌릴 수 없지만, 새로운 시간을 함께 만들 수 있습니다”

세월호와 함께 스러져간 꽃다운 아이들의 부모님께.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제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몸도 마음도 세월호와 함께 참담한 어둠 깊숙이 가라앉은 지난 4월 16일 이후,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가슴 찢으며, 때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울부짖으며, 수없이 되뇝니다.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고, 혹여 아프지 않을까 밤잠 설치며 아이를 돌보아본 적도 없는, 홀로 사는 사제도 순간순간 떠오르는 스러져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목소리에 미칠 것 같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낳고 기르신 부모님은 어떠실까,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위로를 드릴 수 있으며, 어떻게 흐느끼는 여러분을 안아드릴 수 있을까요.

▲ 세월호 침몰사고 13일째인 4월 28일 오전 비 내리는 팽목항을 뜨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이 사고해역을 바라보며 소리없이 울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을 이겨낼 희망을 노래하고, 슬픔을 딛고 설 기쁨을 선포해야 할 사제이기에 여러분께 위로와 격려가 되어드리고 싶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어설픈 연민, 공허한 위로의 말로 여러분의 가슴 깊이 파인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스런 상처를 섣부르게 보듬겠다는 것은, 같은 아픔을 나누지 못한 사람의 기만이요 교만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아이일 뿐만 아니라 나의 아이요, 우리 모두의 아이인, 싱그러운 생명 가득 머금은 채 죽음의 바다를 먼저 건너간 아이들에게 피눈물로 사죄하고, 그저 여러분과 함께 울고 함께 분노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도 미안합니다.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아이들을 가슴에 묻은 여러분께 아무 힘도 위로도 되어 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제게, 그저 미안함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제게 며칠 전 여러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고로 매일 울고 안타까워하는 국민 여러분, 제 자식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무능한 저희 유가족에게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4월 29일, 세월호 사고 유가족 대표 기자회견문)

이 글을 읽고 마음 속 흐르는 눈물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위로받으셔야 할 여러분이 오히려 저희를 위로하시다니요.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저희들을 꾸짖으셔야 할 여러분이 오히려 무능하다며 꾸짖어 달라고 하시다니요. 피 토하는 심정으로 기자회견을 하신 여러분과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이것만이 아이들과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하는 길이니까요.

▲ 세월호 침몰사고 16일째를 맞은 1일 오후 장례식을 치르고 전남 진도군 팽목항으로 다시 모인 희생자 가족들이 정부의 늑장대응을 원망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 편지를 쓰면서도 어쩔 수 없이 되뇌게 됩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4월 16일 이전으로, 16일 오전 침몰 바로 전으로, 아니 세월호가 완전히 가라앉기 전으로라도.’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심정은 더 하시겠지요. 하지만 시간은 돌릴 수 없습니다. 단 1분 1초 이전으로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지금부터 다른 시간을 만들어 갈 수는 있습니다.

세월호를 집어삼킨 자본과 정치의 부패한 고리가 지배하던 악취 나는 지난 시간을 뒤로 하고, 온 나라 모든 이의 공동선을 이루려 자본과 정치가 겸손하게 봉사하는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해맑은 희망으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아이들을 무참히 내팽개치고 업무성과와 밥그릇 싸움에 매달렸던 썩어빠진 정부 관련 기관들과 선박 관계자들이 떵떵거렸던 죽음 같은 지난 시간을 뒤로 하고 말입니다.

모든 이, 특히 약하고 여리고 가난한 이의 고귀한 생명이 온전히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나라의 모든 공권력이 합심하는 살맛나는 시간을 우리가 만들 수 있습니다. 가족들의 간절함과 아픔은 외면한 채 정부기관의 앵무새가 되어 진실을 호도하던 언론들이 미쳐 날뛰던 어두웠던 지난 시간을 뒤로 하고, 두려움 없이 권력자들의 거짓과 위선을 폭로하고 억눌린 이들의 고통을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진실을 밝히는 참 언론이 승리하는 빛나는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보다 자기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권력의 노예가 된 탐욕스런 국가 최고 통치자가 국민 위에 군림하던 암울한 지난 시간을 뒤로 하고, 국민을 주인으로 받드는 선한 대통령이 온몸과 마음으로 헌신하는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올라간 착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러한 시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 4월 30일 저녁, 서울 대한문 앞에서 봉헌된 ‘세월호 참사로 인한 희생자들과 모든 이웃을 위한 참회의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이 기도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지금 이 순간 살아서는 만나지 못했던,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이 떠오르는 듯합니다. 아이들의 맑게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처참한 십자가 죽음 뒤에 오는 빛나는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사제로서, 우리 아이들이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더 없이 환한 모습으로 뛰놀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어쩌면 하늘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우리의 마르지 않을 참회의 눈물이나 사그라질 수 없는 분노가 더 이상 필요 없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영원한 생명과 평화를 간절히 기도하는 이 시간에, 우리 착한 아이들은 오히려 더 이상 아파하지 말라고,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다만, 이미 하늘나라에 올라간 자기들이 아니라, 여전히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시는 이 아이들과 지금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없지만, 기도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하겠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원했던 세상, 여러분께서 원하시는 세상 함께 보듬어 가겠습니다. 이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던 죄 많은 사제의 편지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4. 5. 1

우리 안에 부활한 아이들처럼
눈부신 햇살 가득한 오월 첫날에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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