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탐구생활 - 4]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사랑할 줄 모른다. 그건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제대로 키워본 경험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림책이나 만화영화 속에 나오는 동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살아 있는 동물은 멀리 있을 때만 귀엽다. 가까이 다가오면 무섭기도 하고, 더럽게 느껴지기도 해서 얼른 피해버리곤 한다.

이제라도 동물을 키워보면 좀 달라질까 싶어 한동안 개를 키우기도 했는데 거리감은 여전했다. 한 식구로 정이 드니 예쁘기는 한데 안아달라고 달려드는 건 너무 싫었다. 만지면 진드기가 옮겨 붙을까 싶어서 제대로 쓰다듬어준 적도 없다. 개한테 주는 밥은 왜 그리도 아까운지 먹을 것을 넉넉하게 챙겨주지도 못했다. 그러니 신랑이 개를 팔아버리자 했을 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쌍지 할머니가 “아가, 우리 집에 온나. 감자 좀 줄텡께” 하며 다울이를 앞세우고 집에 가신다. ⓒ정청라

이런 내가 정말이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가 있으니 바로 쌍지 할머니다. 할머니는 무려 일곱 마리나 되는 개와 함께 사는데, 개를 그야말로 자식 돌보듯이 하신다. 삶은 고구마를 호호 불어 먹여 주시는가 하면, 개 주려고 쑥떡도 하신다. 심지어 할머니가 똥을 누면 일곱 마리 사이좋게 먹으라고 조금씩 떼어서 나누어 주시기까지 한단다.

이런 할머니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뒤에서 흉을 본다. 집이 개판이라는 둥, 그 집에 가면 구역질이 나온다는 둥, 그 집 개들은 주인을 닮아 사납다는 둥 말이다. 하지만 쌍지 할머니는 사람들이 뭐라 하건 묵묵히 일곱 마리 개들을 부양하는 일에 충실하다. 오늘만 해도 산에 가서 취랑 머위를 포대 자루로 한 가득 뜯어 오셨다.

나물도 개 주려고 하느냐고? 물론이다.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머위나 취나물을 된장 조금, 쌀 조금 넣고 푹 삶아서 주면 개들이 환장을 하고 먹는단다. 그러면 그 모습이 보기 좋아 다리가 아파도 또 나물을 하러 가신단다. 90도 각도로 꼬부라진 허리로, 낡은 손수레를 끌고서 말이다.

나물만 하느냐, 나무도 한다. 개밥을 아침저녁으로 끓여 주려면 땔감이 꽤 많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에도 비탈진 산을 오르내리며 쓰러진 나무들을 모았다가 그걸 개미처럼 끈질기게 집까지 옮기셨다. 한 걸음 가고 쉬었다가 또 한 걸음 가고 쉬었다가 하시면서 말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기가 안쓰러워 그러다가 병나면 안 되니까 무리하지 마시라고 했더니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이 산중에 살라믄 심 안 들이고 살 수 있간디? 목숨 붙어 있는 한 심 쓰고 살아야제.”

그 얘길 듣고 나는 무척 부끄러웠다. 쌍지 할머니에 비하면 나는 훨씬 젊은 사람인데, 쌍지 할머니만큼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 듬직한 신랑이 있다고 그 그늘에 기대어 힘 안 들이고 수월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당장 믿고 의지할 신랑이 없고, 딸린 자식들만 줄줄이 있다면 나 또한 할머니처럼 억척스러워졌을까? 어쩌면 할머니는 할머니만 바라보는 일곱 마리 개들이 있기에 나이를 잊고 일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 쌍지 할머니 집 마당. 개를 사랑하셔서인지 할머니 집은 상상 이상으로 개판이다. ⓒ정청라

그런데 할머니가 자기 집 개들만 챙기시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끝집 아저씨가 어느 날 술에 취해서 소리실 할머니 댁 개를 때렸다. 자기가 지나가는데 개가 짖어댄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말이다. 그날 이후로 소리실 할머니네 개는 밥도 먹지 않고 개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안 그래도 눈물이 많은 소리실 할머니는 날마다 개집 앞에서 울었다.

보다 못한 쌍지 할머니가 개를 부둥켜안고 쓰다듬으며 돌봐주시다가 결국 이 개 내가 사겠다며 할머니 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가만 두었다간 끝집 아저씨에게 또 두들겨 맞을 것 같다면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에 끝집 아저씨가 또 술을 드시고 와서 그 개를 손봐줘야겠다며 쌍지 할머니 집까지 쳐들어갔다. 그리고는 개를 때릴 기세로 덤벼들자 쌍지 할머니가 온몸으로 막아서며 소리쳤다.

“때릴 거면 나를 때려. 왜 말 못하는 짐승을 괴롭혀. 뭔 잘못이 있다고……. 차라리 나를 때려.”

젖 먹던 힘까지 다 쥐어짜는 듯한 힘겨운 목소리로 할머니는 울부짖었다. 그러자 끝집 아저씨도 더는 행패를 부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할머니가 목숨을 걸고 싸워서 개를 지켜내신 것이다.

그런 쌍지 할머니를 지켜보며 나는 알게 되었다. 동물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건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동물이건 사람이건 진실로 사랑할 때 깊이를 잴 수 없는 힘과 용기가 나온다는 것을…….

오늘도 쌍지 할머니는 “얘들아, 할머니 갔다 온다” 인사하고 길을 나선다. 일곱 마리 개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산으로 들로 간다.

쌍지 할머니는
여든 다섯 나이에도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많은 식구를 부양하며 살고 계신다. 어렸을 때 먹고 살기가 어려워 큰 집에 맡겨져 눈칫밥을 먹고 자라셨다고 한다. 한글 공부가 죽도록 하고 싶었는데 큰아버지가 여자라고 절대 못 배우게 해서 공부를 못한 게 아직도 한이라고. 그래서 한동안 나와 함께 한글 공부를 하시기도 했지만 할머니 눈이 어둡고 손이 후들거려서(또, 내가 아이 키우느라 여유가 없어서) 공부를 지속하지는 못했다.

또, 꽃다운 나이에 늙은 신랑의 후처로 들어와 딸 하나를 낳았지만 딸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좋은 세상으로 먼저 갔다고 한다. 이래저래 팔자가 센 분이지만 그래서인지 사람을 이해하는 품이 넓고, 말 한 마디를 해도 연륜과 깊이가 느껴진다.
 

정청라
귀농 7년차, 결혼 5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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