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 2013년작, 현재 상영 중

▲ <필로미나의 기적>,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 2013년작
지난해 아일랜드에서는 총리가 나서서 ‘나라의 수치’란 표현까지 사용하며 사과했던 일이 있었다. 그 사과는 ‘막달레나 세탁소의 여성들’을 향한 것이었다. ‘막달레나 세탁소(Magdalene Laundry)’ 혹은 ‘막달레나 보호소’는 매춘부나 결혼 전에 아이를 임신한 젊은 여성들이 공동체 생활을 했던 곳으로, 아일랜드와 북미 지역에서 18세기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가톨릭 수녀들에 의해 운영되어 왔던 기관이다. 그런데 아일랜드의 총리가 이곳에서 지냈던 여성들에게 사과를 했다. 왜였을까?

2002년 베니스 영화제의 황금사자상은 <막달레나 시스터즈>(피터 뮬란 연출)란 영화에게 돌아갔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바로 ‘막달레나 세탁소’라 불리던 그 보호소에 대한 영화이다. 그곳에는 매춘부, 임신한 미혼 여성, 강간당하여 순결을 잃은 여성들이 ‘타락한 여성(fallen woman)’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채 수용되었다.

그들은 부당한 노동과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학대에 아무 보호 없이 방치되었고, 수녀들은 그곳에 수용된 여성들의 아이들을 어머니의 동의 없이 돈을 받고 부유한 가정에 강제 입양시키기까지 했다. 2009년, 이에 대한 아일랜드 정부의 정식 조사가 시작되었고 많은 것들이 사실로 드러났다. 그 결과 2013년에 총리가 모두를 대표하여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발표했던 것이다.

그리고 총리의 공식 사과가 있던 그 해에 영국에서는 ‘막달레나 세탁소’의 이야기가 다시 한 번 영화화되었다. 바로 <필로미나의 기적>이다. 기자였던 마틴 식스미스가 쓴 2010년 소설 <잃어버린 아이>를 각색한 이 영화는, 수녀들에 의해 아이를 강제 입양 보내야만 했던 필로미나 리의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막달레나 시스터즈>가 1960년대 ‘막달레나 보호소’의 실상을 보여주는데 집중하는 사회드라마라면, <필로미나의 기적>은 50년이 흐른 후에 ‘막달레나 보호소’의 피해자인 필로미나가 아들을 찾는 여정에 관한 휴먼드라마다.

신을 믿는 노파와 무신론자 신문기자의 여행

전직 기자이자 정부 자문이었던 마틴 식스미스는 한 파티에서 웨이트리스로부터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지적이고 냉소적인 그는 50년 전 아들을 빼앗긴 은퇴한 간호사의 휴먼스토리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휴먼스토리를 좋아한다는 신문 편집자의 말에 웨이트리스의 어머니 필로미나 리를 만나 보기로 한다.

필로미나는 10대 시절 하룻밤의 풋사랑으로 임신을 하게 되면서 아버지에 의해 수녀원으로 보내졌다. 아들 앤서니를 낳은 후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소녀들과 수녀원의 세탁소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지냈다. 하루 중 그녀가 아들 앤서니를 만날 수 있게 허락된 시간은 단 한 시간. 그 한 시간만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그녀는 수녀원을 방문한 부유한 부부가 앤서니와 친구의 딸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수녀원에 의해 아이들이 어머니의 동의도 없이 강제 입양되었던 것이다.

마틴은 필로미나가 아들을 찾는 것을 도와주기로 하고, 그들은 제일 먼저 수녀원을 찾는다. 하지만 예전에 있던 수녀들은 이미 죽거나 병들었고, 서류들은 화재로 불타 버려서, 그들은 입양에 대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한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마틴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그 수녀원의 아이들이 미국으로 팔리듯이 입양되어 갔으며 그것을 감추기 위해 수녀원에서 서류를 일부러 불태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아들을 찾을 수도 있다는 말에 필로미나는 마틴과의 미국행을 결심한다. 이렇게 영화는 관객을 앤서니를 찾아가는 필로미나와 마틴의 여정에 동행시키고, 앤서니의 입양과 성장, 그리고 수녀원과의 관계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하나씩 밝혀낸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앤서니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한 미스터리식 이야기 풀기를 시도하고 있는데, 예상치 않았던 순간 예상치 못했던 사실들을 하나씩 밝혀줌으로써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또한 서로의 농담을 알아듣지 못해 웃는 타이밍을 놓친다거나, BBC 기자나 ‘옥스브리지’ 등 필로미나가 마틴을 소개할 때 사용하는 표현을 마틴이 일일이 고치는 등, 사랑의 힘과 신을 믿는 노동계급 노파와 명문대 출신인 중산층 무신론자인 신문기자가 만들어내는 소소한 갈등과 엇갈림의 에피소드들은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유머와 활력의 원동력이 된다.

이처럼 따듯한 유머가 흐름에도 불구하고, 소재와 주제가 갖는 무게가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필로미나의 기적>이 여성의 성과 노동, 인권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표현하는 정도는 <막달레나 시스터즈>만큼 직접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다는 점에서는 충격적이고 당혹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영화의 마지막에 모든 진실을 알고 다시 수녀원을 찾아온 필로미나를 향한 노(老)수녀의 태도는 종교나 믿음의 외형이 선과 악을 구분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왜곡된 믿음 혹은 믿음의 빗나간 실행과 그것에 대한 교회의 책임, 더 나아가 과연 신이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는 두 인물의 여정과 그들이 알게 되는 질실, 그리고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굵직하고 무거운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진다.

종교가 늘 선하지만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들을 접할 때 종교인들은 종종 당혹스러워 한다. 어떤 이들은 정당성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어떤 이들은 반성하지만, 종교의 과거 혹은 현재의 치부는 종교인들에게 무시되는 경우가 더 잦은 듯하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 그것도 내가 직접 행하지 않은 공동체의 잘못을 개인의 차원에서 인정하거나 고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어두운 면을 들추는 영화를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필로미나의 실제 사건에 대해 선과 악의 이분법적 잣대를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것은 매우 큰 미덕이라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와 오고 가는 견해 속에서 우리가 더 많은 질문을 발견해내고,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기 때문이다.

 
 
성진수 (시릴라)
영화연구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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