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권중심’ 개관 1주년 앞둔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서울 마포구 성산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인권중심 사람’. 3층 건물에 옥상이 있는 이 공간은 오는 29일 개관 1주년을 맞는다. 2010년 10월 문정현 신부 헌정 콘서트를 시작으로 2년 6개월 동안 3,000여 명에 달하는 시민들의 후원으로 주춧돌을 쌓아 만든 공간이다.

지난 1년간, 인권중심 사람에서는 300회가 넘는 단체들의 회의와 행사가 열렸다. 7,000명 넘는 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드나들었다. 인권단체를 위한 공간을 만든다는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인권중심 사람을 만들고 운영하는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소장은 “이곳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의 토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인권중심 사람 개관 1주년을 맞이한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소장 ⓒ문양효숙 기자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정말 열심히 뛰는데도 운동의 역량이 커지지 않고, 대중에 대한 영향력도 늘기는커녕 줄어든다고 생각했어요. 심지어 활동가들의 현장 활동이 시민들에게 공감과 지지를 얻기보다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느끼기까지 했으니까요. 언제까지 소수 활동가들의 헌신으로 한국 사회의 인권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까 고민이 됐죠. 어떻게 하면 시민과 함께하는 인권운동을 만들 수 있을까, 인권운동을 대중화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어요.”

29일 개관 1주년을 맞아 문을 여는 인권도서관 동화(冬花)는 그런 인권재단 사람의 취지에 무엇보다 충실한 공간이다. 공간 자체는 아담하지만 이곳에서는 인권 저자 직강, 글쓰기 교실 등 시민들과 만나기 위한 다양하고 알찬 프로그램들이 진행될 예정이다.

〔‘동화(冬花)’는 박래군 소장의 동생 박래전 열사의 호다. 세상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자 했던 박래전 열사는 1988년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분신했다. 유족은 2007년 민주화운동 정부 보상금 1억 5천만 원 전액을 인권재단 사람에 기탁했고 이는 인권중심 사람의 터를 닦는데 쓰였다.〕

올해 초 시작한 인권중심 시민학교는 시작을 알리자마자 30명 정원이 금방 마감됐다. 총 8번의 인권강좌에는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등이 강사로참여해 ‘사회권으로서의 인권’에 관한 심도 깊은 강의가 진행됐다. 박 소장은 “시민들에게 갈증과 욕구가 있다는 걸 확인한 게 강좌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1년에 6번은 인권현장기행을 떠난다. 5월부터 7월까지 상반기에는 한 달에 한 번 박래군 소장이 동행해 남산 안기부 터,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남영동 대공분실(경찰청 인권센터)을 방문한다. 하반기에는 마석 모란공원과 청계천 기행, 동학 기행 등을 준비 중이다.

한편, 개관 1주년을 맞아 주차장은 갤러리로 재탄생한다. 7.5평의 갤러리 in 주차장은 꽤나 알차게 만들어진 전시공간이다. 무료에 가까운 저렴한 비용으로 단체나 지역 주민이 전시회를 열 수 있도록 했다. 갤러리 인 주차장의 첫 번째 전시회는 29일부터 시작하는 ‘밀양 : 그 은밀한 빛’ 특별전이다. 사진작가 장영식 · 노순택, 판화가 이윤엽 등이 참여했다. 박래군 소장은 도서관과 갤러리가 “활동가와 활동가, 활동가와 시민, 시민과 시민이 만나는 소통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해 ‘대중화’와 함께 인권재단 사람이 중요시 여기는 하나는 인권단체와 활동가들에 대한 지원사업이다. 그중 하나가 인권단체 인큐베이팅이다. 이 사업은 2년간 월 5만 원의 관리비만으로 인권재단 사람의 사무실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신생 단체를 지원한다. 올해 1월 모집 공고에서 선정된 성적지향 ·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SOGI)와 전국세입자협회 두 단체가 3월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 계단 곳곳에 만든 인권도서관 ‘동화’의 서재. 출판사에서 기증받은 인권 서적들로 채워가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동시에 인권재단 사람은 인권단체를 위한 세 가지 기금을 마련해 실제적인 재정을 지원한다. ‘인권활동119기금’, ‘반차별데이기금’, ‘미래지향평화기금’이 그것이다. ‘인권활동119기금’은 인권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한다. 얼마 전에는 이 기금으로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9년간 싸워온 밀양 할머니들의 구술사 작업을 위해 인권활동가들에게 100만 원의 교통비를 지원했다. 뿐만 아니라 이 기금은 내란음모사건 가족들의 고통을 기록하고, 그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작업에도 쓰였다.

‘반차별데이데이기금’은 소수자 인권과 반차별의 가치를 세우는 인권의 날 행사를 지원한다. 4월 20일 장애차별철폐의 날을 지원했고, 오는 5월 15일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 10월 17일 빈곤차별철폐의 날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미래지향평화기금’은 과거사청산 관련 국가손배소 승소에 따른 수임료 일부를 기탁한 법무법인 지향에서 이름을 따왔다. 인권평화활동을 양성하고 지원하는 기금이다. 시민들은 자신이 지원하고 싶은 기금을 선택해서 지원할 수 있다. 박래군 소장은 “재단도 부채가 많지만 이 기금을 만드는 걸 늦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인권재단 사람의 공간을 만드는 데 총 18억이 들었어요. 그중 부채가 6억 정도 되지요. 얼른 갚아야 해요. 하지만 인권운동에서 현장활동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피해자 옆에 서는 것이 최우선이에요. 활동가들이 열심히 싸우는데 그 싸움을 제대로 하려면 누군가는 이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박 소장은 “대기업과 권력의 돈을 받으면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할 수가 없다”며 ‘소소한 돈의 힘’을 강조했다.

“용산참사 때 355일을 거기서 버텼죠. 천주교가 함께해 준 게 무엇보다 큰 힘이 됐어요. 그런데 그곳을 지원하는 돈이 대부분 소소한 돈들이었어요. 가난한 사람들이 용산참사 유가족에 공감했고, 시민들이 늦게 와서 죄송하다며 돈을 넣는 거예요. 그렇게 모인 힘으로 355일을 버텼고, 부상자를 지원했고, 현재까지도 싸우고 있지요.”

박 소장은 인권활동에 기부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보험을 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는 ‘구호성 기부’가 잘 돼요. 제3세계 아이들을 돕는다든가, 가난한데 병원비가 없는 사람을 돕는다든가 하는 내용이지요. 그런데 ‘인권이라는 가치’에는 기부를 잘 하지 않아요. 멀어 보이거든요. 하지만 당장 나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면, 야금야금 내 주변에 인권침해가 생기고 결국 나도 거기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인권피해는 한 번 당하면 개인도, 사회도 회복하기가 무척 어려워요. 그러니 내 일이 아니라고 안심할 게 아니라 같이 힘을 보태는 게 필요하지요.”

한편, 박래군 소장은 최근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고를 지켜보며 “인권활동가로서 무기력감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그 사회, 혹은 국가의 수준이라는 게 평상시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면 국가가 어떤 수준인가 드러나거든요. 정부의 행태, 해운업체, 해경, 재난 시스템, 엉망진창인 국가, 언론까지 모두 화가 나요. 그런데 분노하는 동시에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경험이 많으니 현장에 달려간다면 우왕좌왕하는 실종자 가족들 더 잘 추스르고 도울 수 있겠죠. 그런데 못 가요. 가는 순간 활동가들은 외부세력이 되고, 그럼 의도와 상관없이 피해자 분들에게 누를 끼칠 테니까요. 프레임에 갇혀서 움직이는 운동이구나 싶어서 무기력감을 느꼈어요.”

박 소장은 “정부와 여당 정치인들의 망발은 말할 것도 없고 선장과 선원들의 태도에서도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읽을 수 있다”며 분노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드러냈다. 박 소장은 이 같은 태도가 “사회 전체가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무한경쟁에 압도당한 결과”라고 말한다. “인권도, 정치나 경제도 모두 사람을 살리려 하는 것들이고 생명이 모든 것의 출발점인데, 경쟁에 내몰리다 보니 옆에서 누가 죽건 말건 나만 살면 된다는 분위기가 사회 전체에 내면화됐다”는 지적이다.

박 소장은 끊임없이 ‘이런 세상을 대체 어떻게 이겨나갈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했다.

“그건 한 사람, 인권재단 사람 하나가 아니라, 시민과 활동가들이 힘을 모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한순간에 변하진 않겠죠. 하지만 1년, 2년, 쌓이면 달라질 거예요. 인권재단 사람이 인권센터의 좋은 모델을 만들어서 지역 곳곳에 인권센터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지역 거점들이 생기면 전국적으로 연결되기도 하고요. 갈 길은 멀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할 게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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