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만화 <어진 목자 요한 23세 성인 교황> 그린 서현승 신부

▲ 서현승 신부가 사제요 수도자로서 세상에 말을 건네는 언어는 ‘만화’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끝나면, 예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복음 만화’를 그려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수도자가 될 것인가, 만화가가 될 것인가 고민하다가 수도자의 길을 선택했지만, ‘만화가 신부’로 살아가고 있어요. 두 가지를 같은 선에서 놓고 고민할 것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알겠어요. ‘만화를 그릴 수 있는 능력’은 하느님이 제 성소를 위해 마련하신 하나의 달란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소년>, <디다케>, <내 친구들> 등에 만화를 연재하던 서현승 신부(예수 그리스도 고난 수도회)가 첫 단행본을 냈다. 교황 요한 23세 시성에 맞춰 출판된 어린이용 만화책 <어진 목자 요한 23세 성인 교황>이다. 이번 단행본은 가톨릭출판사에서 출판하는 잡지 월간 <소년>지에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만화를 연재하던 중, 교황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 소식을 듣고 두 교황의 삶을 만화로 그려보자는 결심에서 시작됐다. 현재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만화는 월간 <소년>에 연재 중이다.

예수 그리스도 고난 수도회 사제로 2004년 사제품을 받고 광주 공동체에서 피정 지도와 수도회 신학생 양성 지도 소임을 하면서, 한 달에 한 주는 꼬박 ‘만화’라는 또 하나의 소임을 이어가는 서현승 신부를 만났다.

서현승 신부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눈에 보이는 성사로 드러내는 도구가 바로 ‘만화’다. 그래서 자신이 뭔가 느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만화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교황 요한 23세 만화도, 월간 <소년>에 연재한 김수환 추기경 만화도 그렇게 시작됐다.

이번에 <어진 목자 요한 23세 성인 교황> 역시 신학생부터 사제가 된 후까지 다양한 자료로 접했던 요한 23세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이나 영화, 자료를 통해 그분을 보면, 상당히 매력적이고 평화 지향적이고, 또 유머러스한 분이에요. 사실 처음에 <영혼의 일기>라는 책을 읽었을 때는 좀 고리타분한 양반이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나중엔 그 생각을 깨버렸어요. 이런 분이니까, 하느님이 그분을 통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이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서 신부는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를 그리면서, 어린 시절의 경험이 교황으로서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그가 익혔던 시골 마을에 대한 애정과 젊은 사제로서 겪은 제1차 세계대전의 상처가 그에게 평화와 화해에 대한 감수성을 어떻게 심어줬는지, 또 어떻게 실현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서현승 신부는 “그의 모든 삶을 하나로 꿰뚫은 개념은 화해와 평화였다”고 말했다.

▲ 작업실은 따로 없다. 방에서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데, 때로는 꼬박 이틀밤을 세우기도 한다고 했다. 공동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항상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또 고맙다고 했다. ⓒ정현진 기자

초등학교 1학년에 시작된 만화가의 여정
복음 묵상 그리면서 만난 인간적인 예수

서현승 신부가 전문적으로 만화를 배운 적은 없다. 다만 대학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하던 시절에 미술의 기본기를 익힌 것과 사제가 된 후 미국에서 잠깐 관련 과목을 공부한 것이 전부다. 하지만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사다주신 종합장에 4컷 짜리 만화를 그려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엉뚱한 내용이었지만 어머니는 다른 종합장을 사다주면서 칭찬하고 독려해줬다. 그 후로는 그림을 그리며 놀았고, 용돈이 생기면 군것질 대신 만화책을 사 모았다. 당시 유행하던 만화잡지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상을 배우는 교과서였고, 만화를 따라 그리는 교재였다. 그림이 점점 재밌어졌고, 대학 시절에는 주일학교 교사연합회 활동을 하면서 어린이 주보에 그림을 그리게 됐다.

서 신부는 복음 묵상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서 신앙이 조금씩 더 깊어졌다고 말했다. 그림을 위해서라도 복음 말씀을 생각해야 했고, 예수는 위대한 분, 하느님의 아들이라기보다 ‘매력적인 존재’로 다가왔다.

“특히 예수님의 표정을 상상하며 그리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어느 수녀님이 ‘베드로(서 신부의 세례명), 네 그림의 예수님 표정과 눈빛이 정말 마음에 든다’고 하셨는데, 어떤 장면에서는 예수님의 눈 밑에 다크 서클을 그리기도 했으니까요, 하하.”

성경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예수의 표정. 서현승 신부는 때로는 짜증내고, 화도 내고, 슬퍼하고, 격의 없이 웃고, 또 우울해하기도 하는 성경 속에 숨은 예수의 희로애락을 상상하고 그려냈다.

서 신부는 “예수님의 표정을 상상한다는 것은 아마도 복음의 상황 안에 온전히 들어가 인간적인 예수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하지만 함정이 있다면, 묵상하면서 하느님과 교감하고 영적 깨달음에 머무는 것 이전에 상상의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것”이라며 웃는다.

“내가 복음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동안, 하느님은 내 마음속에 성소에 대한 그림을 그리셨어요.”

다니던 대학 학내 사태 등을 겪으면서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만난 것이 예수 그리스도 고난 수도회였다. 서울 우이동 피정의 집에 봉사 다녔고 기도가 정말 좋았다. 힘들었던 때 아버지의 무덤을 자주 찾곤 했는데, 감실 앞에 앉으면 아버지의 무덤에서 느끼던 평온함이 똑같이 느껴졌다. 늘 그곳에 계셔서 살다가 언제라도 찾아갈 수 있는 또 한 명의 아버지였다.

어느새 수도성소를 마음에 두기 시작했고 열심히 고민했다. 마지막까지 수도자의 삶이냐, 만화가로서의 삶이냐를 두고 갈등을 겪었다. 수도자로서 살던 중에야 “수도자와 만화가는 같은 가치를 두고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가끔 만화를 그리면서 시간에 쫒기다보면, “전업적인 만화가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게 만화를 그리면 행복할 것 같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내가 지금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하다면, 공동체 안에서 기도하며 동력을 얻기 때문일 거예요. 수도원에 입회할 때는 만화를 포기했어요. 수도원 특유의 분위기가 만화에 필요한 상상력을 차단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 수도자, 사제로서 만화를 그리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추구하는 만화는 기도와 묵상이 아니면 도저히 아이디어를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에요.”

ⓒ정현진 기자

“나에게 만화는 수도의 일부”

서현승 신부는 “나에게 만화 그리는 능력이 있다면, 그건 나만의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무언가 하기 위해 하느님이 주신 달란트”라고 말했다. 특히 만화는 아이디어 싸움이지만 억지로 짜낼 수는 없다. 서 신부는 “오히려 마음을 비울 때 어느 순간 영감이 떠오르는 체험을 여러 번 하다 보니, 나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님을 알았다”면서, “나에게 만화와 수도생활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며, 만화는 수도의 일부”라고 말했다.

서현승 신부는 대학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면서 조금씩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디다케>에 교리교사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을 시작하던 때는 주인공과 함께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 다음은 가르치고 당위를 강요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저 만화를 통해 스스로 느끼고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서현승 신부는 “앞으로 복음 만화를 그리는 것이 꿈”이라고 고백했다. 현재 진행 중인 요한 바오로 2세 만화 연재와 김수환 추기경 만화 연재가 끝나면 무리가 되더라도 예수를 주제로 하는 복음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복음 속 예수를 해석하고, 만나고 묵상한 대로 그려내는 것이다. 만화를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로, 수도생활의 일부로서 느끼는 만큼, 다시 만화로 그 모든 것을 나누고 싶다는 의지인 것 같았다.

이미 서 신부는 신학교 학부 논문을 만화로 쓴 적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라는 주제의 이 논문은 예수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이에 대한 신앙체험을 만화로 녹여낸 첫 시도였던 셈이다.

올 하반기쯤 작업을 시작해 볼 생각이라고 말하는 서 신부에게서 설렘이 느껴졌다. 삶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담은 예수는 어떤 모습일까. 생생한 그림으로 살아오는 예수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매월 일주일간은 고스란히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며, 공동체에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서현승 신부다. 그 노고만큼 그의 만화 속에서 예수님과 우리의 새로운 만남이 이어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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