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예수 부활 대축일) 요한 20,1-9; 사도 10,34ㄱ.37ㄴ-43

26년의 시간을 살다가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대학 1학년이 되었지요. 신학교 입학 동기는 단순했습니다.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예수께서 걸으셨던 발자국 위에 제 발자국을 포개고 싶어서”였습니다.

사랑, 희생, 거룩함, 믿음…… 제게는 이런 단어들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게 이런 단어들은 너무 추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부친의 병환으로 가정 경제가 무너지고 난 후 대전으로 이사를 왔는데, 수중에 있는 돈으로 머물 수 있는 마땅한 곳이 없었습니다. 형제들은 친척집으로 흩어져 살 수 밖에 없었고, 저만 먼저 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막내에 대한 부모님들의 배려였을 것입니다.

가난한 지역에 살다 보니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했습니다. 가난이 주는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리고 가난 때문에 당하는 모욕이 일상화된 인간의 처지가 눈에 보였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외치는 교회는 많았지만 사랑을 드러내는 교회의 모습은 만날 수 없었습니다. 대신 교회가 사용하는 상용어가 된 단어는 희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했습니다. ‘마음으로 동의하지 않는 희생을 희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모든 사람을 구하는 것

성당 청년회는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다녔습니다. 행려자들을 돌봐주고 그들을 위해 숙식을 제공하는 수사님들이 계신 곳이었습니다. 행려자들을 돌보는 수사님들은 피곤함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모든 사람을 구하는 것처럼 한 사람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모습은 제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시는 예수의 발자국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해방을 선포하시는 예수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사제직을 가슴에 품으며 기도했고, 신학교에 입학해서 사제가 되었습니다.

사제로 살면서 사제가 된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사제가 되고자 했던 첫 마음을 잃어버리고 직무에만 충실했을 때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되려고 사제가 되었는데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공감보다 당위성에 집착하는 사람, 어느새 제가 바리사이가 되어 있었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사제가 된 것을 후회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설렘과 사람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지 않았을 때, ‘하느님을 다시 찾기 위해서 사제직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힘을 나게 해주는 첫 마음의 기억

기억은 힘입니다. 어느 날, 피정을 떠났습니다. 수도원에서 머물면서 피곤한 몸을 뉘였습니다. 오랜 시간 잤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면 밥 먹고, 시간이 되는대로 산에도 오르고…… 그저 몸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였습니다. 이성적 판단이나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가슴에서 올라오는 욕구에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갑자기 성당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성당으로 들어가 감실 앞에 앉았습니다. 반가부좌를 한 채로 감실 속의 주님을 제 가슴 속으로 받아들이는 상상을 하면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났습니다. 그리고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첫 마음의 기억들, 사제가 되려고 했던 동기와 그때의 내재화된 경험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들리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제 걸을 수 있겠구나!’

▲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윌리엄 블레이크

부활절 아침,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뛰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스승 예수의 무덤입니다. 제자들에게 무덤은 스승 예수께서 있어야 하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했던 모든 것이 실패했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상한 움직임들이 나타났고, 그 소식이 제자들에게 전해집니다. 그때부터 실패의 상징이었던 곳이 기억의 장소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권력자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스승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스승 예수를 버리고 도망쳤던 자신들의 한계성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과월절 만찬 때 스승께서 보여주신 모범과 예식을 기억합니다. 빈 무덤은 이제 기억의 장소가 됩니다.

기억의 장소에서 제자들은 새로운 힘을 받습니다. 그리고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준비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다시 걸을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이 걷는 길은 스승이 걸었던 길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이 스승이 경험한 현실과 같을 것임을 알려줍니다. 부활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스승 예수를 사는 시작.

부활의 아침에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출발하자. 그분이 걸으신 발자국을 따라서 걸어가자.”

부활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시작을 축하드립니다.


임상교 신부 (대건 안드레아)
대전교구 청양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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