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Cristo
영어는 제일 먼저 외운 단어가 무엇인지 기억이 없는데 스페인어를 배울 때 제일 먼저 외운 단어가 'gracias!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였다. 두 번째로 'perdon 뻬르돈'(죄송합니다) 'te quiero 떼 끼어로'(너를 사랑해)순이다.

물론 먼저 외우게 된 사연이 있었지만 몇 년 전 부터 신기하리 만큼 이 단어들이 묵상의 중심이 된 연유(緣由)는 누군가에게 언어를 배우면서 처음 외운 단어들에 대한 기억을 말했을 때 “수녀님은 멋모르고 외운 단어들이지만 신앙 생활을 하면서 세 단어의 표현이 죽을 때까지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말이 아닐까요?!"라고 말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참 소중한 단어를 먼저 외웠습니다. 

정말 그렇구나! 그런 의미로 외운 것은 아니지만 매일의 삶에서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말이구나!
하느님께 무슨 말로써 밑바닥 마음까지 다 표현 할 수 있겠는가? 바로 이 세 마디 밖게!!!!!!
매 순간 감사하고 매 순간 나를 고백하고 매 순간 미약한 마음이라도 진실되게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순백한 마음. 이것이 신앙인의 고백이구나 싶어 이 세 단어로 기도의 마무리를 하곤하였다. 생활에서도 무엇이든 감사하고 빨리 사과하고 사랑한다는 말들을 수시로 하게 되었다.



자! 이콘을 바라 보자.
이콘을 바라보면 하나의 특별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고요이다.
그 고요 속에 머물기 위해 이콘을 바라본다.

주님을 성전에 봉헌하시는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을 받으려는 시메온은 자신의 옷으로 손을 가리고 흠숭의 자세인 허리를 굽히고 있다. 구세주를 기다려온 여인 한나와 지극히 가난한 자의 봉헌물인 비둘기 한 쌍을 들고 있는 요셉 성인. 그 뒤로 건물과 건물 사이로 붉은 천이 드리워져 있다. 이 붉은 천은 천상과 지상의 경계를 나타낸다.

많은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이 이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구약의 완성과 신약의 예언이 동시에 만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시메온과 한나가 하느님께 바치는 감사와 찬미의 노래는 기다리는 자의 기쁨이 그대로 묻어 있지만 요란하지가 않다. 성전 밖에서 떠드는 장사꾼의 소리도 성모님을 놀라게 한 시메온의 예언도 심지어 숨소리도 거룩함의 고요에 모두 깃을 내리고 있는 듯 하다.

“감사합니다”
그토록 기다린 당신이 우리에게 오셨음을!
두 팔에 당신의 거룩함이 머무심을,
두 눈으로 신성을 바라보게 해 주심을,
가슴으로 인성의 숨소리를 느끼게 해 주심을...

“죄송합니다.”
이토록 연약한 당신을 모른 척 했음을,
나로 인한 죄를 당신의 십자가에 올려 놓고는 아직도 회피하는 내면의 어둠을,
약한 자들의 힘없는 목소리에 귀를 막았음을.
고통 속에서 처진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이들을 외면하였음을.

“사랑합니다.”
나에게 조건없이 오시어 안아 주시는 당신.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시어 넘어 지지 않게 잡아 주시는 당신,
내가 당신을 기다린 마음과 다르게 나를 기다려 주시는 당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사랑한다” 말씀 해 주시는 당신이시기에
“사랑합니다.”

 

 임종숙/ 루시아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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