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계신 분이 저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저도 미사 중에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을 통해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는 장면을 재현하는 부분에서 왜 빵을 쪼개지 않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맥락은 이렇습니다.

사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반복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배경설명을 합니다.

“스스로 원하신 수난이 다가오자, 예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재현합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그렇습니다. 미사 통상문에는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고 적어놓고는 예수님의 말씀만 그대로 재현할 뿐 실제로 빵을 쪼개는 행위는 나중에 이루어집니다.

미사 때 빵(축성을 통해 이미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된)을 언제 실제로 쪼개는지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제는 주님의 기도를 마치고 평화 예식(평화의 인사)을 하고 나면 빵을 둘로 나누고 거기에서 다시 작은 조각을 떼어 성작(술잔, 이때는 성혈이 든 잔)에 넣습니다. 이때 사제는 작은 소리로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칩니다.

“여기 하나 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이를 받아 모시는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게 하소서.”

그러니까 성체의 작은 조각을 성혈에 담는 행위는 성체와 성혈이 일치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 의미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보거나 교회의 일치를 뜻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빵을 쪼개는 행위는 유다 풍습 가운데 빵 나눔을 통해 공동체 안에 사랑과 일치를 다졌던 것에서 유래합니다. 이런 전통이 사도 시대에는 사제단이 주교를 중심으로 빵을 나눌 때, 빵 나눔을 통해 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 의미는 이제, 하나인 생명의 빵, 세상의 구원을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모시는 행위(영성체)에 참여하는 모든 이가 한 몸을 이룬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미사 경본 총지침>, 83항).

빵을 쪼개어 나누는 행위의 또 다른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그분의 영혼과 육신이 갈라진 것을 의미한다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이홍기, <미사전례>, 분도출판사, 1997, 288~289쪽 참조). 그래서 작은 조각을 떼어 성작에 넣는 행위가 그분의 부활을 뜻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섬세한 의미들이 영성체 직전에 몰려 있기에 성찬례 제정을 재현하면서 “쪼개어”를 말할 때는 실제로 빵을 쪼개지 않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그때는 빵과 포도주가 성체와 성혈로 성변화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순간입니다. 그러니까 이때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것이고, 이것을 영성체 직전에 나눔으로써 그분의 죽음을, 그리고 작은 조각을 성혈에 합하면서 그분의 부활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성체를 통해 모든 이가 그리스도와 한 몸,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

▲ <성찬식의 제정>, 프라 안젤리코

그러니까 성변화 전에 빵을 쪼개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행위를 재현하는 의미는 있지만, 아직 성변화 전이기에 거기에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의미가 담길 수는 없습니다.

내친 김에, 언제 성변화가 일어난다고 보는지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다락방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최후의 만찬을 거행한 사건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제가 지금 이 순간에(hic et nunc) 예수 그리스도가 거행하신 것을 똑같이 재현함으로써 성변화 역시 재현됩니다.

그런데 개신교에서는 이것을 재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거행한 것을 기억하고 기념(memory)하는 것으로 간주하기에 빵과 포도주는 그대로 빵과 포도주로 남아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함께했던 최후의 만찬이란 사건을 기념할 뿐입니다(조학균, <미사 이야기>, 대전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012 참조).

그러니까 성변화는 사제가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성령 청원 기도)라고 말하면서 손을 모아 예물 위에 펴 얹음으로써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행위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즉,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예수님이 하신 위의 말씀을 사제 마음대로 변형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미사 경본에도 이 부분은 볼드체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대로 또렷하게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이어서 성체로 변한 빵을 회중이 볼 수 있도록 들어 올렸다 성반에 내려놓고 사제와 회중은 모두 절을 합니다. 성혈로 변화된 포도주가 담긴 잔도 들어 올려 회중이 볼 수 있도록 하고는 다시 내려놓고 모두가 절을 합니다.

이때 복사는 종을 치는데 그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전례에서 기원합니다. 그때는 사제가 벽을 보고(회중을 등지고) 미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사제의 행동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종을 쳐서 회중들의 주의를 모았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아셨다면, 미사 중에 잠심하느라 눈을 감고 있다고 하더라도 종소리가 나면 눈을 뜨고 제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미사 때 사제가 빵을 나누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더불어 성변화가 실제로 언제 일어나는지 살펴봤습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성체를 어떻게 모셔야 할지 간단한 설명을 덧붙여야겠습니다. 성체를 모시기 위해 제단 앞으로 나갈 때, 오른손을 위로 내밀어야 하는지 왼손을 위로 내밀어야 하는지 자꾸 헷갈린다는 분들이 계셔서 그렇습니다.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보면 왼손이 위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즉, 왼손으로 성체를 받아 오른손으로 집어 입에 넣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혀를 내밀어 성체를 받아 모셨습니다만 혀를 내미는 행위가 어째 불경스러워 보였나 봅니다. 성체를 앞에 두고 ‘메롱’하는 듯한 분위기 말입니다. 그리고 자칫 실수해서 사제의 손가락이 누군가에 혀에 닿았을 경우 위생상의 문제도 제기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언제인가부터 두 손을 모아 성체를 모시게 된 것인데 동서를 불문하고 문화적 정서상 오른손이 올바르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전해져 내려오기에 오른손으로 성체를 집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굳이 왼손잡이라는 자기정체성을 드러내 보이고 싶은 분들은, 사제 앞에서 오른손, 왼손을 어찌해야 할지 손을 번갈아 올렸다 내렸다 하며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마시고 오른손을 위로 올려 당당히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예민한 사제라면 묻겠지요. “세례 받으셨나요?” 그러면 당당히 말씀하세요. “왼손잡이입니다.” 그러면 됩니다. (성체를 모시는 내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속풀이 ‘모령성체, 그리고 성체를 영하는 바람직한 태도’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호를 긋는 것도 전통적으로 오른손으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왼손잡이라고 해도 성호를 왼손으로 긋는 분은 못 봤습니다. 하지만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는 분들에게도 강요하는 것 아니니 그때는 왼손으로 성호 그으시면 됩니다. 단, 이때에도 차례대로 이마, 배, 왼쪽 어깨, 오른쪽 어깨를 찍는 순서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이 순서가 맞지만, 비잔틴(동방) 전례에서는 오른쪽 어깨를 먼저 찍고 왼쪽 어깨로 갑니다.〕

좀 더 알게 되신 만큼 이제는 미사 때 더 찬찬히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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