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편 읽기 - 25장]

야훼여, 내 영혼이 당신을 우러러 뵈옵니다.
나의 하느님, 당신만을 믿사오니, 부끄러운 꼴 당하지 않게 하시고 원수들이 으스대는 꼴 보지 않게 하소서.
당신만을 믿고 바라면 망신을 당하지 않으나, 당신을 함부로 배신하는 자 수치를 당하리이다.
야훼여, 당신의 길을 가리켜주시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주소서.
당신만이 나를 구해 주실 하느님이시오니 당신의 진리 따라 나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소서. 날마다 당신의 도움만을 기다립니다.

야훼여, 당신의 자비와 한결같으신 옛 사랑을 기억하시고
젊어서 저지른 나의 잘못과 죄를 잊어주소서. 야훼여, 어지신 분이여, 자비하신 마음으로 나를 생각하소서.
야훼여, 당신은 바르고 어지시기에 죄인들에게 길을 가르치시고
겸손한 자 옳은 길로 인도하시며 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십니다.
당신의 계약과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당신의 모든 길이 사랑이며 진리입니다.

야훼여, 내가 지은 죄 크고 크오나, 당신 이름 믿사오니 용서하소서.
야훼를 경외하는 자가 누구냐? 바른 길을 그에게 가르쳐주시리라.
행복하게 한세상 살게 하시고, 후손 또한 유산을 물려받게 하시리라.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당신의 생각을 털어놓으시고 당신의 계약을 가르쳐주시리라.
야훼 홀로 이 발을 올무에서 벗겨주시기에 나는 언제나 야훼만을 바라봅니다.

나를 굽어보시고 불쌍히 여기소서. 외롭고 괴로운 이 몸입니다.
나의 근심을 말끔히 씻어주시고 곤경에서 이 몸을 건져주소서.
나를 굽어보소서. 고통 받고 불쌍한 이 몸입니다. 나의 죄를 말끔히 씻어주소서.
보소서. 나의 원수들이 얼마나 많사옵니까? 미워서 잡아먹을 듯 달려드는 저들입니다.
이 목숨을 지켜주소서, 건져주소서. 당신의 품속에 달려드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야훼여, 당신만을 바라보는 이 몸이오니, 지켜주시어 올바르고 흠 없이 살게 하소서.
하느님, 그 온갖 고초에서 이스라엘을 지켜주소서. (시편 25장)

ⓒ임의진
“루루루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루루루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봄비는 찰찰 내리고 시편의 기자는 빗소리에 흥얼거리며 옛사랑을 노래한다. 사랑은 꽃처럼 피고 지고, 먹구름은 슬금슬금 다가와 봄비를 뿌리고 촉촉하게 사라졌다. 따스한 입김 같은 안개가 봄비의 뒤안길을 살펴주러 찾아오면 어느새 세상은 초여름 더위로 달아오르게 되어 있다. 변함없는 것은 사랑이고, 변함없는 것은 기억이다.

옛사랑, 그리워지고야 말 봄비 같은 옛사랑. 개역 성경엔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 하옵소서”(6절)라고 말하고 있다. ‘기억하다’라는 뜻의 ‘즈콜’은 사랑과 상처의 경험이 없는 아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낱말이다. 기억 가운데 긍휼과 인자(자비)의 기억은 평생토록 함께할 기억이다. 긍휼이라는 단어는 어머니의 아깃보 자궁을 뜻하는 ‘라함’이다. 사람이라면 어떤 죄인이라도 어머니의 말씀을 거역하거나 어머니의 사랑을 지워버리진 못할 것이다.

“한세상 살다보믄 상처도 꽃인기라. 이 앙다물고 견뎌내몬 다 지나가는기라. 세상일 어려븐 것이 니 꽃피게 하는기라. 그라모 니도 모르게 다아 나사서 더께져 아물어진 헌디가 보일기다. 마당가 매화꽃처럼 웃을 날이 있을기다.” (하순희, ‘어머니 설법’)

어머니, 성모님의 목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들려오누나. 감미로운 말씀이렷다. 상처도 꽃인기라. 어머니는 우리들의 첫 번 옛사랑이다.

행복하게 한세상 산다는 건 과연 어떤 뜻일까? 하느님 나라에서 음식을 먹는 일이 가장 행복한 한세상일 것이다. “하느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루카 14,15).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실 것이다”(루카 22,30).

가난한 백성은 음식상 잔칫상이 곧 천국의 모습이다. 당신과 함께 음식을 나누던 때를 생각하면 그 순간이 가슴 뻐근하게 그리워져 눈물까지 고여 온다. 밥상 공동체, 제사 공동체, 미사 공동체, 예배 공동체……. 교회는 천국을 이 땅에 보여주는 영화의 예고편 같은 것. 부활 축일의 어느 꽃다운 날, 우리는 음식을 먹고 나누며 사랑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 친구나 가족, 우리가 함께 만나 먹고 마시는 자리…… 그곳이 천국이다.

사랑의 기억 말고 우리가 또 기억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지상에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곧 “죽음을 기억하라!”는 경구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창세 3,19). 이 말씀을 한번이라도 마음에서 떼어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신만을 바라보는 이 몸, 당신으로 돌아갈 이 흙, 우주의 한 몸이 될 이 작은 목숨. 우리는 주님의 자녀로 살다가 주님 곁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주님만을 바라며 살자. 다른 마음 품지 않으며 오직 한 마음으로.
 

 
 

임의진
시인. 남녘교회 담임 목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위원이다. 펴낸 책으로 <참꽃 피는 마을>, <예수 동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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