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용산참사에 붙이는 글

 


오랫동안 공들여 만든 가치와 기준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있다. 용산 참사 - 그 비명에 가슴이 멘다. 그런데도 그 철거민들을 테러리스트로 모는 야만적인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그 참사가 있던 현장에서, 그 다음날. 사람 사는 사회의 기본이 뭉게지고 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안전조치 이후 진압을 해야 한다는 경찰 규정도, 불법시위가 불법진압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도 통하지 않는다. 그 어떤 권력도 부당한 철거에 항의하던 사람을 죽일 권리가 없다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철거민에 대한 경찰의 공격을 규제하는 온갖 인권규정과 국제기준을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자명한 이치 아닌가.

그런데,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아무도 처벌되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다. 고귀한 주권자의 주검 앞에서도 참회하지 않는다. 비참한 주검을 가족의 동의 없이 부검하여 훼손한 이후에도 눈물은 부하와 조직에게만 흘린다. 한번 정치권력을 잡으면 이렇게 야비하게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말인가. 하루 밤에 폭군 정치로 회귀했단 말인가.

지난 반세기 동안 주권자인 시민을 존중하는 정치권력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무릅쓰고 노력해왔다. 막무가내로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를 시민의 통제를 받는 국가, 민주적인 국가로 바꾸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그런데 10년 민주화 이후 정권이 바뀌자마자, 아침에 일어나기가 두려울 정도의 일이 계속 일어나다가 마침내 무고한 생사람들을 화형시키는 만행이 일어났다. 그것도 잘못된 정책에 살길이 막혀 절규하는 사람들을.

이제 비평만 하고 앉아 있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권력이 태동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권력기관을 소수 특권층, 부유층, 친위대로 채우고, 자유와 인권을 주창하는 시민을 폭도로 매도하고, 급격히 삶의 위기로 내몰리는 서민과 상관없는 삽질 경제를 고집하고, 이제 살 곳 없는 사람들을 살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테러리스트로 몰고 있다.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서 북한과 이룩한 평화적 합의도 일거에 무너질 기세다.

거기에 자신의 소득만 높아지면 된다고 믿는 인구의 약 30%와 족벌 언론이 눈귀를 막고 정치권력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너무나 위험하다. 구 독일에서 히틀러 나치의 등장이나 구 일본제국에서 군국주의 파시스트들의 등장과 궤적을 같이할 위험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비판세력에 대한 극도의 적대감, 언론 장악과 여론 조작, 반대자에 대한 ‘빨갱이’ 사냥, 인권과 자유에 대한 경멸, 수단을 가리지 않는 권력행사, 권력 견제의 실종, 취약집단 희생양 만들기, 특권층의 맹목적 권력 지지 - 위험할 정도로 비슷해지고 있다.

하루 속히 교정되어야 한다. 그 힘은 무엇보다도 슬퍼하고 애통해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우리는 폭력의 희생에 대해서 슬퍼할 수 있어야 하며 슬퍼할 수 있는 공간과 자유를 획득해야 하며 슬픔을 공유함으로서 아픈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슬픔은 궁극적으로 슬픔을 짓밟은 권력을 교정할 것이다. 막 나가는 국가권력을 교정하는 힘 역시 슬픔과 애도의 능력을 지닌 시민들에게 나올 것이다. 이제 그 힘은 용산참사 현장에서 그리고 각각의 광장에서 표현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대훈/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 평화학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