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연구소 공개대학 - 교회 설립부터 신유박해까지 2]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가 3월 13일부터 ‘한국 천주교회사 강의 I―교회 설립부터 신유박해까지’를 주제로 공개대학을 시작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6월 12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한국교회사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리는 공개대학의 강의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조선시대 사람들은 우주의 모습을 어떻게 그렸을까?

당시 사람들은 하늘은 갓처럼 둥글고, 땅은 바둑판처럼 네모라고 생각했다. 또 우주를 계란처럼 보고 가운데 노른자 부분에 네모 모양의 땅이 있다고 여겼다. 예수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한 디아즈(E. Diaz, 1574~1659)신부가 쓴 <천문략(天問略)>이 17세기 조선에 소개되기 전까지 말이다.

<천문략>은 중국을 통해 들어온 한역서학서 중의 하나로 서양의 천문역법이 담긴 천문서이다. 한역서학서는 선교사들이 가톨릭 신앙을 전하기에 앞서 서양의 과학과 문화를 중국에 소개하기 위해 한문으로 쓴 책으로 조선에 천주교회가 설립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양인성 한국교회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 3일 서울 중구 한국교회사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린 공개대학에서 <천문략>에 나오는 우주의 모습은 “지구를 중심으로 12개의 행성들이 양파 껍질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책은 천동설을 주장합니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12개의 별 중 마지막 둘레가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하늘이고 여기에 하느님이 있습니다. 이런 원리는 가톨릭 교리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 천동설의 우주관, 포르투갈인 벨로(Bartolomeu Velho)의 1568년 작품

천문학 이외에도 지리, 교리 등 다양한 분야의 한역서학서가 17세기 초 명나라에 갔던 사신들에 의해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천주교와 조선의 만남이 시작됐다. 양 연구원에 따르면 한역서학서는 복잡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위대함을 담고 있으며, 결국은 천주교 교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쓰인 책이다.

조선에 들어온 대표적인 한역서학서는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設)>, <치력연기(治曆緣起)> 등의 과학서와 세계 인문지리서인 <직방외기(職方外紀)>, 마테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天主實義)>, <교우론(交友論)> 등의 교리서가 있다.

양 연구원은 “선교사들 중에는 인문, 과학기술 등을 배운 고학력자이며 수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예수회 본원이 파견된 선교사들에게 소재지의 경도와 위도를 측정해 보라고 지시한 것은 선교사들의 천문지식 수준이 높았음을 보여준다.

한역서학서를 통해 세계지도와 지리서를 접한 조선의 학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중국은 세계의 일부일 뿐이고 다양한 나라들이 존재”하는 것과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이 중심일 수가 없으며, 자신이 있는 곳이 곧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더욱이 오랑캐와 중국 사람이 어찌 항상 정해져 있는 것이겠는가? …… 사는 곳에 따라 사람의 등급을 매기고, 오랑캐냐 중국 사람이냐에 따라 땅의 등급을 매겨서 가볍게 헐뜯고 흉볼 수 있겠는가?” 〔구식곡(瞿式穀), <직방외기소언>(職方外紀小言), 《직방외기》〕

18세기 중반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은 한역서학서를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고, 체계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양 연구원은 이익이 “서양의 역법이 정확하고 과학기술은 우수하다고 봤으며, 윤리적 규범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반면에 천주교 교리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이익은 천주가 유교의 상제(上帝, 하느님)와 같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천주를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불교와 다를 바 없다고 보았지요. 이익의 제자들은 천주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갈라집니다. 한쪽은 강하게 배척했고, 다른 한쪽의 일부는 조선 천주교회를 설립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과학기술서, 지리서 및 지도, 천주교 교리서 등의 한역서학서는 정조 때 ‘사서(邪書)’로 지목돼 도입이 금지될 때까지 약 2세기 동안 꾸준히 조선에 들어와서 천주교가 조선에 뿌리내리는 데에 배경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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