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벌금에 저항하라 - 2] 벌금과 손해배상 청구, 양심을 옭아매는 밧줄

<기획 ‘강정, 벌금에 저항하라’ 순서>

1. ‘벌금형’, 정부 비판세력에 대한 사법적 통제
2. 벌금폭탄 맞은 강정마을 풍경은?

3. 여옥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 인터뷰

지난 3월 29일 오후, 주말을 맞아 한적해진 을지로 빌딩 숲 사이에서 호프집 한 곳이 들썩였다. 아직 해가 남아있는데도 입구엔 자리를 잡지 못해 서성이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런데 여느 맛집 앞에 늘어선 사람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손님이 알아서 테이블을 펴 자리를 마련하고, 주문이 늦어도 불편한 기색이 없다. 구석에 마련된 간이 주방에선 서울에서 보기 힘든 옥돔이 구워지고, 제주도산 돼지고기 수육이 접시에 담겼다. 주문받은 음식을 나르는 손들은 급한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 바쁘기만 하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낯선 풍경은 제주도 남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반나절 동안 열린 일일주점에서 벌어들인 수익금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막으려다 기소된 강정마을 주민과 지킴이들의 법률기금으로 사용된다.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중국어 강사로 일하는 박경림 씨는 이날 자원활동가로 참여해 오후 내내 서빙을 담당했다. “강정 삼촌들이 벌금 때문에 갖는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서였다. 박 씨가 작년 여름 처음 강정마을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길에서 만나 흔쾌히 마을을 안내해줬던 주민은 “경찰의 기소와 벌금 때문에 주민들의 심신이 너무 지쳐 있다”고 이야기했다. 며칠 전 재판을 받고 왔다는 주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박 씨는 주민들이 선고받은 벌금이 단순히 ‘돈’이 아니라 사람의 양심을 구속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박 씨는 주문 받으랴, 음식을 나르랴 테이블 사이를 운동장 뛰듯 다니며 정신이 없었지만 주문이 밀릴수록 신이 났다. 강정마을에 더 자주 가지 못하고, 많은 일을 할 수 없어 아쉬웠던 그가 이날 하루 만큼은 온전히 강정마을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삼촌들과 지킴이들이 벌금에 부담을 안 느끼실 정도로 모금이 많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 강정마을 주민과 지킴이들이 제주 해군기지 공사장 입구에서 손을 맞잡고 서 있다. ⓒ한수진 기자

실제 강정마을 주민들이 벌금으로 인해 느끼는 부담은 벌금의 액수 그 이상이다. 고권일 강정마을 부회장은 “몸으로 때울 수 있는 건 그다지 두렵지 않지만, 법률적 불이익 뒤에 따르는 사회적 불이익이 너무 커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은 비닐하우스 설비 등을 갖추기 위해 빚을 안고 있다. 그런데 벌금이나 집행유예 등 처벌을 받으면 은행에서 융자를 받기가 어렵다. 벌금 수백만 원 때문에 수천만 원, 심지어 1억 원이 넘는 농업자금을 상환해야 할 상황에 놓이는 거다. 해군기지 건설 반대 활동으로 벌금형과 징역형 처벌을 받은 주민은 70여 명이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주민의 수도 20여 명에 이른다.

시공업체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주민들의 삶을 더 옭아맨다. 가압류로 인해 은행 계좌가 묶이면, 시기별로 지출해야 하는 농약비용이나 인건비를 댈 수 없어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1년을 바라보는 농사까지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 부회장은 “밀양처럼 엄혹한 세월을 보내는 분들도 계시는데, 우리만 도와달라고 하기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강정을 비롯해 밀양, 쌍용자동차 등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결국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누리면서 살고 계신 분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주시면 저희도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버티겠다.” 고 부회장은 당부와 스스로의 다짐을 한 문장에 담아 이야기했다.

▲ 지킴이가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 나무토막을 옮겨두고 있다. ⓒ한수진 기자

‘강정의 딸’이라고 불리는 주민 김미량 씨 삼남매가 내야 할 벌금은 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 지난 7년간 연행과 재판을 수도 없이 반복하다 보니, 그동안 낸 벌금이 얼마고 남은 벌금은 얼마인지 제대로 세어 볼 생각도 못했다. 경찰의 불심검문에 항의하다가 연행, 용역회사 직원에게 폭행을 당하다가 연행, 공사장 정문을 가로막고 앉아 있다가 연행. 심지어 하지도 않은 음주운전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자꾸 쌓이는 출석요구서 때문에 김 씨는 더 이상 마음이 가는 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 한 때 누구보다 앞장서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에 참여한 그였지만, 요즘에는 미사가 열리는 천막 가장자리나 공사장 정문 앞에 연좌하는 신부님들 옆에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다. 이렇게만 해도 경찰은 업무방해혐의로 출석요구서를 보내온다.

김 씨의 활동 반경도 위축되었지만, 벌금과 재판으로 위압감을 느낀 마을 어르신들은 현장에 거의 나오지 못하고 있다. 평생 경찰서를 가까이 두지 않았던 주민들이 경찰서와 법원을 오가는 건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더욱이 4.3의 상처를 66년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김 씨는 “총만 안 들었지 살인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강정마을과 연대하는 지킴이들도 다르지 않다. 강정마을에서 활동하는 김학구 씨는 지난달 26일 해군기지 건설 시공업체인 우창해사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장을 받았다. 업체는 김 씨를 비롯한 강정마을 주민과 지킴이 6명에게 1억 1백만 원을 배상하라고 청구했다. 이들이 공사를 방해해 손해를 봤다는 이유다.

소장에서 업체는 잠정적으로 집계한 손해액은 훨씬 많으나, 우선 그 중 일부만 청구하고 이후 확장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김 씨는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김 씨는 공사장 정문 앞에서 공사차량의 통행을 막거나 통나무나 의자를 세워둔 행위 때문에 공무집행방해와 업무방해 혐의로 2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기도와 침묵시위를 하는 수도자들을 강제로 이동시키는 경찰 ⓒ정현진 기자

그럼에도 김 씨는 지난 7일 문정현 신부와 김성환 신부가 경찰에 연행되자 두 사람이 유치된 경찰서 앞을 꼬박 지켰다. 김 씨는 “강정마을에서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다기보다, 문 신부님과 지킴이들이 있어서 선뜻 떠나지 못한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월 서울에서 하던 플로리스트 일을 중단하고 강정마을로 내려와 강정 평화상단 협동조합에서 상근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일은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강정에 있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거든요.” 김 씨가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지킴이는 “20대의 어린 친구들이 전과자가 되고, 재판을 갈 때마다 법정구속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마을을 나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벌금과 손해배상청구에 맞선 지킴이들의 투쟁을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싸움”으로 비유했다. 강정마을 주민과 지킴이들은 해군기지라는 콘크리트 더미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양심을 옭아매려는 부당한 판결의 폭력에도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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