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되는 밀양 어르신들... 12일 밀양으로 달려와 주시길

▲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가 3월 22일 저녁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에서 139번째 개최한 '송전탑 반대 촛불문화제' 모습. ⓒ윤성효

"연대는 심오하고 가장 매력적인 의식으로서 삶의 자리에서 역사를 만드는 하나의 길이 된다." – 교황 프란치스코, <복음의 기쁨> 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75세 윤여림 어르신이 오늘 몫의 3000배를 올리고 있을 것이다. 지난 주말, 윤 어르신이 대책위 사무실로 찾아와서 상경 계획을 밝혔을 때, 특유의 말간 웃음까지 머금으시며"'대책위가 좀 도와도고~" 하시는데, 가슴이 콱 막혀왔다.

'어르신, 참으세요. 어르신 마음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근데요, 74세 노인이 음독 자결을 해도 눈도 깜짝 않고 하던 공사 계속 하는 놈들 아닙니까? 저놈들 어르신이 6000배가 아니라 6만배를 해도 미동도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여론이 움직일까요? 이제, 기자들 밀양 문제에 관심도 없습니다. 몸도 성찮으신 어르신이 외롭게 절하시는 모습, 너무 처절합니다. 저놈들한테 그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우리 마음만 아플 뿐이에요.'

차마 어르신에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르신 면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어르신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고 계셨을 것이다. 내가 거절하니, 당신이 직접 기획사 찾아가 몸자보를 제작했다. 마지막 설득을 위해 댁을 찾아가 사모님과 함께 자리에 앉았을 때, 어르신은 "이거라도 안 하면 내가 병이 날 것 같다"고 하셨다. 달리 도리가 없었다.

윤 어르신의 마음이 지금 밀양 주민들의 마음이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이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만 같은 마음. 3000의 병력이 매일 노인들을 들어내고 고착 감금했지만, 주민들은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한국전력이 던진 '돈'이 사람들을 갈라세웠고, 분열의 공포가 주민들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한전은 "공사 끝날 때까지 합의 안 하면 당신 마을과 당신 앞으로 배정해 놓은 돈을 회수하겠다"는 노골적이고도 참담한 간계를 공문으로 띄웠다. 이 협박이 철옹성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지금 마지막까지 버티는 마을은 전체 30개 중에서 5개 마을, 개별보상금 수령을 거부하는 주민은 전체 3700여 명 중에 10% 남짓이다.

며칠 전에는 꿈을 꾸었다. 보라마을 어르신들이 보였는데, 그분들과 다른 마을 주민들은 아무 표정 없이 조용히 식사만 하고, 나와 젊은이들은 영문을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꿈이었다. 내 마음자리가 그렇고, 어르신들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4주 전, 산외면 보라마을 주민이 한전과 합의했다는 소식이 준 충격은 컸다. 라디오 뉴스를 듣고 움막 농성장을 나가 한 시간 동안 대성통곡을 한 할머니가 있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눈에 띄게 힘들어하기 시작했고, 말수가 줄어들었다. 한창 때는 4개 면에 걸쳐 있는 주민활동가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로 마을 소식과 정보를 공유했다.

소식을 알려주고 의견을 구하는 전화를 하루에 서너 통씩 받은 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전화가 뜸하다. 대신 각자의 내면들로 침잠해 간다. 마을에는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찬성파들이 씩씩하게 돌아다닌다. 남은 마을들도 위태롭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도울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다하겠습니다." 어르신들에게 던지는 대책위의 약속은 듣는 자리에서는 힘이 나겠지만, 홀로 남겨졌을 때 찾아드는 번민 앞에서는 깃이 젖은 햇닭처럼 초라해질 것이다.

한전 집계로는 열세 번째라는 이번 공사 재개. 그 이전 열두 번째까지 주민들은 헬기장으로 뛰어들어가 헬기에 몸을 묶거나, 맨땅에 드러누워 레미콘 차량을 막거나, 굴착기 바가지에 들어앉거나, 한전 지사 앞마당으로 쳐들아가 거기에 자리잡고 한 달을 버티면서 공사를 중단시켜왔다. 기자회견, 촛불집회, 토론회, 문화제, 단식 투쟁, 합치면 천 번을 너끈히 넘어갈 투쟁들을 거치며 주민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국가를 상대로는 못 이긴다.' 모두가 알고 있을 폭력국가 대한민국의 상식을 당사자인 주민들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이 이야기가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면서 주민들은 고통스러운 선택 앞에 마주 서 있다.

외롭고, 지치고, 힘들고...

그렇게 해서라도 밀양 송전탑을 세워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데, 노인들 하나 제대로 '단도리' 못하고 공권력과 공기업이 질질 끌려다니는 이 사태야말로 비정상 중의 비정상이었을 것이다. 고리의 노후원전을 계속 연장가동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리지역을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지역으로 등극시킬 원전 증설 계획은 중단없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UAE를 시작으로 잇따를 원전 수출 계획까지 수십 조 원이 움직이는 대박의 시나리오가 있었을 것이다.

▲ '밀양의 봄' 희망콘서트 포스터. ⓒ밀양대책위

이 원대한 포부가 고작 송전탑 50기를 꽂지 못해서, 한 줌 노인들을 제압하지 못해서 좌초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사업자 한전의 환경영향평가법 위반도, 수십 개 마을들이 보상 문제로 갈라져 싸우고, 쑥대밭이 되어도, 두 노인이 분신과 음독으로 세상을 버려도 저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밀양 송전탑 싸움은 지금 가장 힘든 고비를 지나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공사 부지를 점거하고 움막을 지어 놓은, 그러니까 주민들이 최후의 거점으로 여기고 있는 4개 농성장에는 4월 14일 이후 철거하겠다는 한전의 계고장이 날아들었고, 경찰과 한전 직원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주민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다. 작전 계획을 짜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밀양의 현장으로 다시 한 번 걸음해 달라는 것이다. 더 좌절하지 않도록, 혹여나 발생할 수도 있을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도록, 밀양 주민들의 손을 잡아달라는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어르신들을 대신한 우리들의 항의, 우리들의 연대, 우리들의 감시, 그리고 그 힘에 바탕한 '대화와 중재' 뿐인 것이다.

또 하나, 어르신들이 스스로를 향해 던지는 질문들에 응답해 달라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질문이란 이런 것이리라. '되지도 않을 싸움,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그들이 생애 처음으로 종주먹을 쥐고, 어깨띠를 두르고 "물러가라!"고 외치고, "백지화하라!"고 부르짖었을 때, 경찰에 팔목이 비틀린 채 들려나오고, 서울 국회로 한전 본사 앞으로 원정을 다니고, 전국에서 찾아드는 손님들을 먹이고 재웠던 지난 몇 년 동안의 풍찬노숙은 다 부질없는 것이었을까? 어차피 안 될 일, 헛고생으로 끝나고 남은 뒷 설거지를 남은 생애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인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을 물을 때가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 당신은 무엇을 하였던가? 밀양의 어르신들이 자결하고, 들려 나오고, 분열의 고통을 뒤집어쓰고, 돈 몇백 만 원으로 잔인하게도 '전향'을 강요당할 때, 그들의 고통을 깔고 앉아 누리던 휘황찬란한 전기문명의 수혜자, 당신은 무얼했던가? 이 질문 앞에 마주 서는 날이 올 것이다.

밀양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마지막 불씨를 지키기 위해 어르신들은 한전이 빨간 줄을 묶어 놓은 공사 부지 안 농성장으로 모여든다. 어르신들은 지금껏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고, 지금도 그 몫을 다하고 있다. 그들 어르신들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투쟁, '국가에 맞선 노인'들로서 지난 10년간 정의로웠으며, 떳떳했다. 어르신들은 지금도 10년 전과 다름없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시늉만 말고, 마음을 다해 들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 지난 1월 26일 밀양 영남루 맞은편 둔치에서 열린 '2차 밀양 희망버스' 마지막 행사를 마친 뒤, 문규현 신부가 밀양 송전탑 반대 주인인 강순자(84. 단장면) 할머니를 부둥켜 안으면서 "꼭 이깁니다. 힘 냅시다"고 말하며 인사하고 있다. ⓒ윤성효

다시 손을 잡아주십시오

이번 주 토요일, 4월 12일에는 이 어르신들을 위로하는 문화제가 열린다. 송경동 시인이 앞장을 서고, 한국대중음악상 3관왕에 빛나는 음악의 구도자 윤영배, 그리고 '안치환과 자유'가 기다리고 있다. 밀양할매합창단이 또 한 번 목소리를 가다듬고 있다.

일주일 전, 보라마을 이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울에서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내가 이장님을 생각하며 쓴 신문칼럼을 어느 기자가 알려주었던 모양이다. 이장님은 말씀 끝에 또 "미안하다"며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아, 이 "미안하다"는 말을 당신은 남은 생애 내내 얼마나 하셔야 할까. 도대체, 누가 미안해야 하는가? 한전, 경찰, 청와대, 산업부, 당신들은 미안하지 않은가? 이장님의 전화를 받으며 나는 또 눈물이 났다. 아무 때라도, 자리만 주어진다면, 문을 걸어 잠그고 펑펑 울고 싶은 사람들이 지금 밀양에는 너무 많다.

여러분, 밀양의 손을 잡아주시오!

덧붙이는 글 | 이계삼 기자는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입니다.

<기사 제휴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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