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 배선영 (마지막 회)]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 6,34)

걱정이 많은 편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고려한다. 그렇게 해야만 대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떤 일을 앞두고 있을 때 그 일과 관련해서 안 좋은 일들을 상상하며 고통과 무서움,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그 일이 정말 닥친 것처럼 생생하게 와 닿고 걱정은 더 진해진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편집기자로 일을 하게 되었다. 편집국장님은 합격 소식을 알려주며 “좋아요?”라고 물었다. 내가 좋아하고 있는지 알쏭달쏭했다. ‘왜 날 뽑았지? 앞으로 어떻게 하지? 경험과 지식이 없는 분야인데,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좋다고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친밀한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리면서 나는 흥분돼 있었다. 좋았다.

다음날 행사 일로 만났을 때, 또 편집국장님은 “행복한 하루를 보냈어요?”라고 물었다. 취업 성공의 기쁨에 취해 행복한 하루를 보냈길 기대하셨던 모양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별로 행복한 하루를 보내지 못했다. 역시 앞으로 닥칠 일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느라 말이다.

ⓒ배선영

기쁘고 행복해도 온전히 그 기쁨과 행복을 만끽해본 적이 별로 없다. 마냥 기뻐하고 행복해하기에 세상은 너무 무섭고 끔찍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내 마음 안에 단단하게 들어차 있다.

걱정하느라 지쳐 있던 나에게, 걱정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길을 잃고 헤매게 한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다. 그는 내가 걱정을 하고 있을 때는 평소와 다르게 핵심을 보지 못하고 굉장히 아둔한 모습이라고 말해서 나를 충격에 빠트렸다. 그동안 나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면서까지 해왔던 일이 미리 예상하고 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지러운 미로 찾기 중간에 스스로를 놓아둔 것이었다. 걱정을 하는 것과 대비하고 예방하는 것은 다르다.

주말 아침에 산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산에 올랐을 때와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꽃이 피어 산은 무척 아름다웠다. 하지만 산에 오르면서도 걱정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언제 돈 모아서 독립하지? 한 달에 얼마씩 적금을 들면 몇 년이 걸릴까? 어제 산 물건은 너무 비싼데 괜히 샀나? 내일 기사 쓸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한데, 어쩌지? 일하려면 체력이 좋아야 하는데 한약이라도 먹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걱정들…….

산을 내려오면서 내가 올라왔던 길을 바라보니 영화 속 배경처럼 예쁜 꽃길이 보인다. 햇살 좋은 날, 살랑거리는 꽃들 사이를 걸으면서도 행복한 줄 몰랐다니 스스로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산은 너무도 예뻤지만 내 감정에 파묻혀 산과 꽃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곰곰이 돌이켜보니 불행한 일들은 전혀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아무리 미리 걱정하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들 막을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적도 별로 없었다. 불안에 떨었던 내가 무색할 정도로 아무 일 없이 잘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걱정하고 불안해하면서 괜히 힘을 뺄 이유가 없다.

얼마나 많은 행복과 기쁨의 순간들이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나를 그냥 스쳐지나갔을까. 좋을 때 좋다고 말하고, 기쁠 때 기뻐하며 그 순간에 충분히 머무는 것―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만끽하는 것이 아닐까.

비록 레알청춘일기를 더는 연재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함께할 수 있어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


 
배선영 (다리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신입 기자

이번 회로 배선영 님의 ‘레알청춘일기’ 연재를 마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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