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사주는 네 개의 기둥이란 의미로 생년, 월, 일, 시를 가리킵니다. 사주를 간지(干支)로 나타내면 여덟 개의 글자가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간지는, 천간과 지지(地支) 혹은 십이지(十二支)의 합성어로서 십간십이지라고도 부르지요.

천간은 육십갑자를 따질 때 앞 단위를 이루는 열 개의 요소라서 십간이며, 임의의 뭔가를 설명할 때 자주 쓰는 글자들인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가 그것입니다.

십이지로 더 잘 불리는 지지는 열두 동물을 가리키지요. 한자시간에 무턱대고 외웠던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 뜻을 돌이켜 보면 자(子)는 쥐띠, 축(丑)은 소띠, 인(寅)은 호랑이띠, 묘(卯)는 토끼띠, 진(辰)은 용띠, 사(巳)는 뱀띠, 오(午)는 말띠, 미(未)는 양띠, 신(申)은 원숭이띠, 유(酉)는 닭띠, 술(戌)은 개띠, 해(亥)는 돼지띠입니다.

사주를 통해 얻게 된 여덟 글자(팔자)를 풀이하여 한 사람의 운명을 전망합니다. 그래서 사주팔자로 점친다고 하는 것이지요. 고해소에 있다 보면 가끔씩 점 봤다고 고백하시는 분들이 찾아옵니다. 경우에 따라서 저는 얼마나 자주 반복하시는지를 조심스레 여쭤봅니다.

그런데 최근에 공동체에서 형제들과 모여 대화를 하던 중 새삼 깨달은 것은 단순히 길거리를 지나다가 사주카페 같은 곳에서 재미삼아 운세를 본 것인지, 아예 무속인을 찾아가 앞날에 대해 알아본 것인지도 구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완벽한 사주가 없는 것처럼 완벽한 사람은 없어

철학을 전공한 덕에 역학을 배울 수 있었고, (그 짧은 지식을 바탕으로 대학생 시절 한 때) 여름철 어느 해변에서 사주카페를 운영하여 용돈을 마련하고는 했다는 한 형제가 공동체에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 형제는, 유구한 동양사상의 하나로 역학이라는 학문에서 다루는 것인 만큼, 사주를 학문과는 무관한 무속이 다루는 예측 행위(종종 쌀이나 붓 등 다양한 도구를 사용합니다.)와 같이 보면 안 된다는 견해를 밝혔고, 제게는 그것이 제법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이런 말은 자주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주는 통계다". 오랜 세월동안 우주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기록해 본 것이고, 우주 만물의 일부인 사람도 그런 거대한 우주의 법칙 안에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학을 하시는 분들이 말하듯, 완벽한 사주는 없다고 합니다. 완벽한 사주는 여덟 개의 자가 아니라 열개의 자를 가진 경우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모두 여덟 개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완벽한 사주가 없는 것처럼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리 통계라고는 하지만, 여덟 개의 글자를 놓고 해석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가 있는 셈입니다. 해석도 숱한 임상경험을 가진 사람이 제대로 하는 것이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요. 그래서 사주를 본다 한들, 결국 운명은 사람이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철학을 전공한 그 형제의 결론적 견해였습니다. 그는 지금도 역학책은 가지고 있으나 하는 방법은 거의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 <사울과 마녀>, 마티아스 스톰

앞날에 내가 바라는 일이 어찌될지에 대해 궁금해 한 사람들은 이 땅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이도 그것이 궁금해서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의 행적은 하느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우리 내면에 대해 성찰하게 이끌어 줍니다. 그런 인물이 구약의 사울입니다.

다윗에 앞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사울은 하느님께서 성별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뽑아주신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하느님의 예언자 사무엘이 죽고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움을 할 때, 주님께서 그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자 '혼백을 불러올리는 여자'를 찾았습니다(1사무 28). 이 여자가 역학을 알고 있었을 리는 만무합니다.

성경을 읽어보시면 죽은 사무엘의 영혼을 불러올립니다. 사무엘은 죽었는데도 자기를 부른다고 짜증을 냅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 사무엘의 입을 통해 사울이 들어야 했던 것은 결국, 하느님께서 그의 곁을 이미 떠나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경우에 하느님의 침묵은, 하느님께서 그의 곁에 안 계심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사울은 나라 안에서 영매와 점쟁이들을 몰아냈었던 인물임에도 하느님의 침묵을 못 견디고 이렇게 하느님과 자신마저도 속입니다. 그가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해 제대로 돌이켜보았다면, 이때 필요한 것이 점쟁이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와 자비를 청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해석에 휘둘리지 말고 재미로 즐기길

그러니 믿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앞날의 일이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일이 궁금하니 자꾸 하느님 외에 다른 곳에 한 눈을 팔게 됩니다. 나의 일이 중요하지 않다가 아니라 그 일이 하느님과 함께, 결국에는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일이 되기를 간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문화체험의 일환으로 사주팔자 토정비결 이런 것을 보신다면야 정말 재미있게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해석의 말에 휘둘리신다면 오히려 고해소에 와서 고백하실 것은 바로 그것이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 신뢰를 두지 못하고 있음이 이런 마음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철학을 공부했다던 그 형제도 과거에 누군가가 자신의 사주를 봐줬다고 하더군요. 먹고 자는 데는 걱정이 없는 사람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 순간 주변에 있던 형제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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