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금여기> 창립 5주년 기념 판화전 여는 이철수 화백

판화가 이철수를 만나기 위해 충북 제천으로 향하는 길은 봄이 온 듯도, 오지 않은 듯도 했다. 길 왼쪽으로는 갓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한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가 하면, 오른쪽으로는 어젯밤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은 하얀 설산이 낯선 겨울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골 작은 마을에 사는 이철수 화백은 이런 계절의 몸살을 함께 앓았나보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매일 세상에 보내는 ‘나뭇잎편지’에서 ‘세상처럼 지랄 맞은 날씨’ 때문에 꽃들이 몸살을 앓지는 않을까 염려하며, 꽃들에게는 “생애의 한 절정이니 아파도 견디면서 아름다우라”는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지금 붓을 들고 있는데 놓을 수가 없어서요. 잘 찾아 들어오세요.”

이철수 화백의 전화 안내로 구불거리는 마을길을 걸어 넓은 마당이 있는 그의 집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 이 화백은 화선지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원불교 100주년 기념 작품집 마감이 코앞이라 일에 쫓기고 있다 했다. 많은 것을 덜어내 평화로움마저 느껴지는 그의 작품들이나 여유로운 그의 언행으로 미루어 일상 또한 느리고 유유자적하리라 예상하는 이들도 많지만, 사실 이철수 화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실에 머물며 작품에 몰두하는 일벌레이기도 하다.

▲ 이철수 화백이 작업실에서 그림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평생을 그렇게 지내 하루 종일 계속되는 작업이 몸에 밴 그에게도 “초읽기에 몰려 있다”고 표현할 만큼 바쁜 이때에, 이철수 화백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창립 5주년 기념 판화전을 수락했다. <지금여기>가 ‘비슷한 곳 바라보며 걷는 길동무 같은 미디어’이기 때문이라 했다. <지금여기>가 시작할 당시 제호를 직접 새겨준 것도 그런 마음에서다. 이철수 화백은 언론으로서는 낯설었을지도 모를 <지금여기>라는 제호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대개 ‘나중, 저기’만 이야기하는 교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의미가 좋았어요. ‘지금여기’, 그 표현 뒤에 ‘나중저기’가 함께 느껴지기도 했고요.”

▲ 이철수 화백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제호
이철수 화백은 <지금여기> 제호 글씨체에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느낌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높고 낮은 것들이 조화롭게 어울리며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십자가 로고의 둥근 테두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에 나오는 빵을 의미한다. 빵을 나누는 십자가, 십자가로 나누어진 빵이다. 십자가 가운데의 삼각형은 예수의 벌거벗은 몸을 가렸던 누추한 천 조각이다.

“십자가에서 상처 입은 존재를 함축적으로 표현했어요. 달리 압축할 방법이 없었죠. 삼각형이니 어쩌면 삼위일체 같은 해석도 가능하겠고요. 또 하나는 거룩한 존재들의 복식을 연상할 때 무언가를 두르거나 걸치는 게 떠오르잖아요. 그런 의미도 생각했어요.”

오는 11일부터 14일까지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밥이 하늘입니다’와 같은 초기 작품부터 비교적 최근 작품인 ‘둥지’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그중에는 특히 8폭 병풍으로 제작한 14개의 연작(連作) ‘십자가의 길’이 눈길을 끈다. 2002년 원주교구 풍수원성당 언덕의 돌들에 새긴 이 작품은 사형선고를 받은 후 무덤에 묻히기까지 예수의 발자취를 이 화백 고유의 담백함으로 그려냈다. 그는 작업을 할 당시, 풍수원성당의 나이 지긋한 식복사 어르신을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한국적 정감이 더 많이 담긴, 마애불 같은 작품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너무 낯설어서 신자 분들이 거룩함을 느끼기에 어려움이 생기지 않을까 고민했지요. 당시 풍수원성당에 굉장히 신심이 깊은 식복사 어르신이 계셨는데요. 그분이 보시고 좋다고 느낄 만한 분위기로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이 작품에서 이철수 화백은 예수의 내면적인 상황을 재연하는 대상으로 풀 한 포기를 선택했다. 풀은 화폭 한 구석에서 예수를 계속 따라가며 예수가 고통스러울 때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예수가 쓰러질 때 함께 쓰러진다.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의미였다. 이 화백은 “결국 우리의 신앙이라는 게 예수 안에 완전히 들어가고자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 ‘십자가의 길’ 14개의 작품 중 7번 작품 ‘예수, 두 번째 넘어지시다’ (작품 제공 / 이철수)

하지만 이철수 화백은 자신의 그림이 보는 이들에게 다른 의미로 읽혀도 상관없다 했다. 누군가에게 정답을, 하나의 해석을, 주장을 던지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그저 가능하다면, 이철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로 읽히면 좋겠다는 게 그의 유일한 바람이다.

“들의 풀꽃도 오해받으면서 살아요. 그렇게 순정한 존재도 오해받으며 사는 데, 인간이 만든 무엇인가가 그보다 나을 리 없죠. 그러니 잘못 읽히는 것도 당연해요. 다만 제 작품이 ‘내 안에도 있었는데, 당신 안에도 있었구나’ 하고 발견하는 매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늘 있어요. 제가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걸 가져다 준 게 아니니까요. 다 사람들 안에 있는 거예요.”

그의 작품에는 자연과 세상에서 건져 올린 깨달음 한 조각과 세상을 향한 깊은 연민이 함께 담겨 있다. 30여 년 가까이 밭을 일구고 느리고 평화로운 자연과 호흡하면서 노동, 정치, 경제와 같은 사회 각 분야에 깊은 관심을 두기란 어쩌면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철수 화백은 오히려 농촌에 살면서 ‘한 세계’를 온몸으로 느낀다고 말한다.

“물론 눈앞에서 구조적으로 억울하고 슬픈 일들이 벌어지면 더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는 있을 듯해요. 그런데 결국 ‘한 세계’잖아요. 나이 들면서 진리라고 느껴요. 멀리 있거나 보이지 않는 일들도 안타깝게 느껴지죠. 세상에 벌어지는 어떤 일도 남의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농사짓고 살면 오히려 더 잘 알 수 있어요.”

‘나와 다르지 않은 세상’을 향한 애정은 언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외출했다 집에 들어온 이철수 화백의 아내는 그가 ‘뉴스 중독’이라 했다. 작업에 떠밀려 뉴스를 찾아볼 시간이 없을 때에는 아내가 본 것을 알려주거나 스크랩을 해주기도 한다고. 그는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언론을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다. “보수에 쓰레기만 있는 게 아니고 진보에 보석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창립 5주년 기념 판화 전시회를 준비 중인 이철수 화백 ⓒ문양효숙 기자

초기부터 <지금여기>를 애정을 갖고 지켜봐온 그에게 <지금여기>의 언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철수 화백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언어를 언급했다.

“그분의 언어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요. 참 좋았어요. 세속적인 언어와 아주 깊은 영성적 언어를 동시에 쓰시잖아요. 영성적 언어로 세상 이야기를 잘 풀어내시고요. <지금여기>가 교황님의 발언과 목소리에 잘 귀를 기울이면 좋겠어요. 넘치지 않지만 완강하게, 해야 할 이야기를 다 하고 계시니까요. 화이부동(和而不同). 세상 속에 있지만 물들지 않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가장 갈급한 게 그것 아닌가요?”

영적 깊이가 있는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그런 언어로 세상을 이야기하기를 바란다는 기대다. 이 화백은 현대사회에는 영성적 언어를 쓰는 사람을 신뢰하기 어려운 듯 바라보는 시각과 사회과학적 언어로 현실을 이야기하는 건 거룩한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는 듯 바라보는 시각이 대립하고 있지만, 실은 그 둘이 ‘수레를 굴리는 두 개의 바퀴’라고 강조했다.

“번뇌와 고민으로 가득한 현실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되어야 하고, 저 또한 그편에 서고 싶어요.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한쪽 바퀴가 작은 수레처럼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할 것 같아요. 앞으로 나가야 하니까 두 바퀴를 고른 크기로 굴릴 수 있어야겠지요.”

지난 5년간 <지금여기>를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본 이철수 화백은 “<지금여기>가 밥상을 차리는 마음을 지닌 언론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너무 배가 고프면 허기를 면할 밥상을 급하게 차려야겠죠.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어떻게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릴까를 고민하면 좋겠어요. 누군가에게 맛있는 밥을 잘 먹이고 싶으면 밥상에 이 반찬을 놔 보기도 하고 저 반찬을 놔 보기도 하고, 시원한 게 필요한 계절엔 시원한 음식을, 온기가 필요할 땐 따뜻한 음식을 차리잖아요. 시대가 추우니 사람들은 따뜻한 걸 기다릴 거예요. 그런데 따뜻한 음식에도 다양한 맛이 있잖아요. 그런 거죠. 거룩한 이야기를 고루하고 비현실적이지 않게, 매력적이고 실감 있게 말할 줄 아는 그런 언론이 되었으면 해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