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호흡처럼, 이 노래처럼] 이승환의 ‘물어본다’

강원도 원주에서 사는 나는 치악산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4월인데도 비 대신 눈이 내려 하얀 치악산이 거룩한 땅인 듯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치악산이 있어도 사실 올라가본 적은 없다. 모든 산이 치악산 줄기에 속하니, 여기서는 어느 산이나 이름이 하나인 것처럼 저 산은 무슨 산이냐고 물어보면 모두 치악산이라고들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묻는 것조차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치악산 아닌가” 하고 말한다. 그 누구도 “저 산은 무슨 산이냐”고 물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다른 이름이 있다 해도 모두 치악산 줄기에 속하니, 치악산이라고 부른다 해서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하루를 시작하며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주님과의 만남의 시간이다. 유리창으로 치악산이 반쯤 보이는 작은 경당에서 성서 묵상을 하고, 치악산이 한 켠으로 보이는 도로를 소형차로 달려 십대의 장애우들이 사는 ‘천사들의 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나는 매일 아침 미사에 참례한다.

이제 원주에 온지 한 달 남짓, 나는 그곳 아이들의 이름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관심은 그들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천사들의 집 성당에 들어설 때면 A는 성큼성큼 다가와 손을 내민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손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몇몇 아이들은 키가 나보다 훨씬 커서 내가 그들을 올려다보아야 한다. 아니, 그렇지 않다. 그들 거의 모두가 나보다 키가 크다.

미사 중, 주의 기도를 바칠 때면 사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을 꼭 잡아야만 하는 아이, 평화의 인사 때는 제단에 올라가서까지 사제와 악수를 해야 하는 아이, 걱정도 근심도 없이 현재의 상황 속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천사들이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도 다가가고 싶고 같이 있고 싶은, 그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친구가 있고, 언제나 외톨이인 친구들도 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외톨이인 자신이 불안할 수도 있을 텐데 그들은 외톨이여도 불편하지 않아 보인다.

나이나 몸집과 상관없이, 그들의 보통 지능은 5살 정도라고 한다. 그들 중엔 장애인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경증인 아이들도 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더 마음이 아프다. ‘쟤가 정말 장애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래도 잘하고 글도 잘 읽고 훤칠한 외모를 소유했지만, 일반 아이들 사이에서 공부를 하거나 생활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 해서라도 도와주어 장애를 극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요즘 같이 학교폭력 문제가 대두되고 왕따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세상에서 부족하게 보이는 자녀를 선뜻 일반 학교로 보낼 용기를 내기가 부모들에게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박홍기

어떤 아이들은 그가 아기였을 때 말을 안 듣는다고, 가족 중 누군가가 세탁기에 넣고 빨래하듯 돌려서, 키가 안 크고 장애인이 되었다는 아이도 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났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는 장애인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아이는 부모 모두가 장애인이라 장애인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 경우는 부모가 자식을 건사하지 못해 식사와 잠자리 모두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기에, 거의 강아지 밥 주듯이 밥과 반찬이 섞인 한 그릇 식사를 하는 것을 본 이웃들이 신고하거나,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해 직접 시설에 연락해 데려오게 된다고 한다.

가난이 가난을 대물림하는 것도 서러운데, 장애까지 대물림된다니. 부모가 장애인이면 그 자녀도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난 알 수가 없다. 그런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사실 그런 계통의 일을 하지 않다 보니 지식도 없다. 하지만 그런 사례들이 있다고 하니 서글프기만 하다.

복음에는 장애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행적들이 나온다. 그들의 외침에 응답하고 계신 예수님의 모습이 나온다. 그들에게 묻는 예수님의 질문은 ‘믿음’이다. 믿으면 구하는 바를 얻으리라고 하신다. 또한 그들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도 하신다.

이들을 위해 두 손을 모으면서, 이들과 나 자신 중에 먼저 천국을 맛보고 사는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이야말로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예수님 앞에 앉아 현재를 사는 이들이다. 과거에 매이지도 않고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힘들어할 줄도 모른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평화가 있으면 족하다. 그들은 ‘믿음’의 뜻도 깊이 있게 알지 못한다. 그들의 이해력이 아직 그런 단어를 알기엔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승환의 노래 중에 ‘물어본다’라는 노래가 있다. 문득 나도 물어보고 싶어진다. 이 아이들의 몸은 어른이 되어 가는데, 이 아이들을 아이라고 불러야 할까, 어른이라고 해야 할까? 이 아이가 꿈꾸는 것은 어른일까, 아이일까? 이 아이도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데, 자신의 가족과 집을 기억하고 있는데, 이 아이는 그동안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아이와 돌아갈 곳이 있는 아이는 받는 사랑과 꿈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 아이도 다른 아이와 자신을 비교할 텐데…….

숨지 마라, 아이야. 속상하다고 말하고, 떼라도 부려라. 네가 1부터 10까지 손가락으로 세지 못해도 괜찮다. 네가 국어책을 거꾸로 들어도 괜찮다. 하지만 잊지 말아라. 1부터 10까지를 오늘밤 다 잊어도, 내일 아침 다시 시작할 꿈은 포기하지 마라. 예수님은 걱정, 근심 없이 들의 꽃처럼 온전히 맡기고 매일을 사는 너에게, 하늘나라를 준비해놓고 기다리실 것이다.

너는 네 모습대로, 너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너대로 사랑스럽다. 아니, 너의 순수함이 이런저런 술수에 가득 찬 세상보다 너무나 깨끗하다. 너에게서 사람들은 배울 것이다. 행복이란 오늘 이 시간에 주어진다는 것을.

“어렸을 적 그리던 네 모습과
순수한 열정을 소망해오던 푸른 가슴의 그 꼬마 아이와
어른이 되어가는 사이 현실과 마주쳤을 때

도망치치 않으려 피해가지 않으려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오 그런 나이여 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부끄럽지 않도록 불행하지 않도록

푸른 가슴의 그 꼬마아이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니
어른이 되어 가는 사이 현실과 마주쳤을 때

도망치지 않으려 피해가지 않으려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그런 나이여 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김성민 수녀 (젤뜨루다)
살레시오회 수녀이며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기도하는 사람이다. 동화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이야기해주고 싶은 꿈이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