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사회와 생태적 기본 소득' 관련 포럼 열려
강수돌 교수 "중요한 것은 공감하고 색다른 사회를 만들려는 태도"

▲ 21일 오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생태적 기본소득 포럼이 열렸다. ⓒ문양효숙 기자

기본소득. 간단하게 노동의 유무나 소득 수준,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일정하게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기본소득 발상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버트런드 러셀, 에리히 프롬, 마틴 루터 킹 등이 이를 주장했으며, 보수적인 주류 경제학자가 주로 받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70여 명 중에서도 기본소득을 지지한 이들은 15명에 이른다.

미국 알래스카 주에서는 1980년대부터 석유 수출로 얻은 수익을 영구기금으로 조성, 주민에게 1인당 매년 약 3천 달러를 나눠주고 있다. 기본소득을 실시하기 전만 해도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빈곤인구가 가장 많았지만 지금은 그 차이가 현저히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빈부차이를 나타내는 지표인 지니계수가 미국에서 가장 낮다.

이란도 2010년부터 가구별로 월 45달러의 기본소득을 가구별로 지급하고, 브라질의 경우에 2004년 룰라 대통령이 기본소득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위스에서에서는 작년 10월 4일 12만 명 이상의 국민 서명을 받은 기본소득 지급 법안이 연방의회에 제출돼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헌법에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조항을 신설하고 정부가 성인 국민 모두에게 한 달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기본소득을 ‘성경에서 말하는 경제’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마태오 복음서의 포도밭 주인의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노동 시간과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준다. 이 비유에서 임금은 노동의 시간과도, 업적과도 무관하다. 시간제 임금노동에 익숙한 우리에게 낯선 이 비유를 시작하며 예수께서는 “하늘나라는 이와 같다”고 하신다.

강수돌 교수 "선별적 복지 서비스는 국민을 빌어먹는 존재로 만든다"
"기본소득 일부는 '생태세'로 마련하면..."

한국에서는 2009년 강남훈 교수, 곽노완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금민 전 사회당 대표 등을 주축으로 기본소득 운동의 국제조직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한국지부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대표 강남훈 한신대학교 교수)가 만들어지면서 논의가 본격화 됐다. 지난 2월 23일에는 노동, 생태, 청년, 빈민 등 다양한 분야의 단체들과 함께 폭넓은 사회운동으로 전개하기 위한 ‘기본소득 공동행동 준비위원회’가 발족됐다. 홍세화 <말과활> 발행인,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등도 뜻을 함께 했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시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 홀에서 ‘생태적 기본소득’을 주제로 한 포럼이 열렸다. 대화문화아카데미, 녹색전환연구소, 한신대학교 지역발전센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네 단체가 공동 주최한 이 포럼은 기본소득의 정의와 모델에 생태의 개념을 포함시킨다.

이 단체들은 작년 하반기부터 ‘기본소득의 현황과 쟁점’, ‘복지국가와 생태적 기본소득’을 주제로 두 차례 포럼을 개최한 데 이어, 올해에도 기본소득을 주제로 다양한 포럼을 기획했다. 이날 포럼은 주제는 ‘돌봄 사회와 생태적 기본소득’이었다. 고려대학교 경영학부 강수돌 교수와 한국노동연구원 윤자영 박사가 각각 ‘노동 패러다임 전환과 생태적 기본소득’, ‘돌봄 노동과 기본소득’을 주제로 발표했다.

▲ 강수돌 교수 ⓒ문양효숙 기자
강수돌 교수는 기본소득이 생태 문제와 연관되는 지점을 재원을 획득하는 원천과 사회구조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설명했다. 즉, 기본소득의 재원 중 일부를 ‘생태세’로 마련하고, 이를 통해 생태적 사회구조로 전환하는 방법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사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기본소득 논의의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다. 재원 마련의 핵심은 조세 제도 개혁이다. 즉,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를 합친 토지세와 핵 발전 전기나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재화 등 생태 파괴 요인에 부과하는 생태세를 기본소득 재원의 근간으로 하는 것이다. 생태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들은 국민과 기업에 세금을 거둬 다시 국민에게 돌려주는 이 설계가 조세저항을 줄이는 데다 쓸데없는 환경파괴와 에너지 소비를 줄여 녹색전환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발표에서 강수돌 교수는 기본소득제의 필요성으로 ‘복지국가의 한계’를 말했다. 복지국가를 지탱하는 원천인 고도의 생산성, 식민지 시대와 같은 수탈, 지속 가능성 등이 고갈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저항세력을 잘 돌봐주면서 고도의 무한성장을 지향하는 복지 사회의 속성상 수많은 외부 희생자를 전제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성장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강 교수는 “선별적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는 국민을 빌어먹는 존재로 만든다”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기본소득제가 노동하지 않는 베짱이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에 대해 “사람은 안정적인 소득을 받으면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본소득은 노동 패러다임의 전환을 바탕으로 한다. 임금 노동에만 가치를 두는 기존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돌봄 노동, 예술가의 작업, 시민단체 활동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노동에 가치를 두는 패러다임이다.

“학자든, 의사든, 요리사든 배관공이든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을 한다면 그 사회적 이름이 무엇이든 대접이 평등해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이의 노동은 누군가의 시선이나 관습에 규정받지 않고 자기 안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노동 패러다임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기계화, 부품화 되어 있다. 노동은 교환 가치가 아니라 사용가치 혹은 인간적인 가치의 차원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강 교수는 기본소득이 실업률 감소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008년 아프리카 남서부 나미비아의 작은 마을 오트지베로(OTJIVERO)에서 주민 930명에게 월 8유로(약 1만2천 원)를 아무 조건 없이 지급했더니, 실업률이 1년 새 15%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강 교수는 “양극화가 극심해진 사회에서 한쪽은 고강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다른 한 쪽은 매일 놀 것을 강요 받는다”며,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단순 소박한 삶으로의 전환 등이 기본소득 논의와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럼에 참석한 기본소득네트워크 금민 운영위원장 역시 생태적 모델의 기준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강조했다.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사람 가운데에는 기본소득이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내수로 소비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핵심은 소비의 확대가 아니라 소비사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윤자영 교수 "기본소득이 성 평등에 어떤 의미를 있는지 고민"
"기본소득, 가족을 정서적 공동체로 만드는데 도움 줘"

▲ 윤자영 박사 ⓒ문양효숙 기자
두 번째 발제에서 윤자영 박사는 돌봄 노동의 가치를 설명하면서 “기본소득이 정규직 풀타임 남성 임금 노동자를 온전한 시민으로 전제한 사회에 근본적인 도전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완고한 성별분업 규범으로 노동시장 진출이 제한되고 ‘사적 영역’에서 돌봄 노동을 도맡아 수행하면서도 남성의 소득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기본소득의 의미가 막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윤 박사는 돌봄 노동과 관련해 “기본소득이 성 평등에 어떤 의미를 있는지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돌봄 노동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고 사회를 재생산하기 위해 필수적이고 중요한 노동이지만, 노동의 가치가 저평가 되어 있고, 때로 사회적 약자가 떠안는 노동이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노동이 되기도 한다. 여성계는 기본소득제가 임금노동과 무급노동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여성이 수행하던 무급노동을 온전하게 인정하고 보상하는 성 평등적인 정책이 될 것이라며 지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을 주로 수행해온 여성이 거기에 머물도록 강제할 것이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윤 박사는 따라서 돌봄 노동이 “‘가능한 사회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탈가족화 방향과 ‘긍정적인 여성성에 집중하면서 다만 사회가 이 노동을 차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가족화 방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박사는 기본적으로 유급노동만이 좋은 노동으로 평가되는 시장노동체계에 문제를 제기하며, “기본소득으로 가족 간의 경제적 의존 관계가 약화되면 정서적 공동체로서의 가족 기능이 크게 향상 될 것”이라 전망했다.

이어진 토론 시간에 강수돌 교수는 “결국 문제는 삶의 질이 높아지고 행복해 지는 길을 찾는 것인데, 돈 많이 벌어 자녀를 교육시키고 아이를 더 높은 곳에 올리고자 하는 탐욕의 가치 지향이 모두를 몰아세우는 사회 구조와 맞물린 현재 시스템에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기본소득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런 정도는 논의하고 상상해 야 구조적 변화가 온다”며, “중요한 것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공감하고 색다른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가치 지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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