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친환경 쌀 약정운동

우리의 주식이자 ‘밥이 보약’임을 상기시킬 한 그릇의 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먹기 위한 조용한 운동이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천주교 인천교구본부(본부장 김종성 신부, 이하 인천우리농)는 쌀 생산의 안정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1년 먹을 쌀을 미리 계약해 정기적으로 대먹는 ‘쌀 약정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시작된 이 운동으로 최근까지 190명(기본 1인당 80㎏), 신청량으로는 16톤(5400만원 상당)의 쌀 소비량을 확보했다. 인천우리농은 이를 10㎏단위로 월 1회 정해진 날(매월 5일, 20일 중) 공급하며 쌀값 3만원에 택배비 3천을 더한 3만3000원꼴로 판매한다. 참고로 친환경쌀의 일반 소비자가는 10kg 36,000원정도다.

전체대금은 선불 일시납이 기본이지만 소비자의 편의를 고려해 최대 3회 분납이 허용된다. 쌀 약정운동은 정해진 때 없이 연중 전개되며 개인, 단체(기업, 기관) 등 쌀을 소비하는 경우면 누구나 고객이다.

고객의 식탁에 오르는 쌀은 친환경 우렁이농법으로 생산돼 공급 직전 도정, 맛과 신선도를 최대한 살리게 된다. 생산자는 인천교구 강화지역 우리농 생산자위원회다. 현재 우리농에 참여하는 생명농업 농가는 6가구로 약 14만㎡의 논에서 연간 70톤(80㎏ 900가마) 정도의 친환경 쌀을 생산한다. 내년부터는 4가구가 동참할 예정이어서 이를 고려하면 경작지는 20만㎡에 이를 전망이다.

인천우리농 양정호 사무국장은 “유기농, 무농약 등의 친환경 쌀 생산량은 늘고 있지만 소비는 오히려 계속 줄어드는 추세”라며 “믿을 만한 먹거리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농민들 역시 생명농업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지만 쌀을 대신할 먹거리가 넘쳐나고 식생활 문화가 변화하며 절대적인 소비량이 생산량을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 국장은 “쌀 약정운동은 안정적인 소비처를 미리 확보함으로써 일차적으로 농민들의 생활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나아가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생명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의 생산 의욕을 북돋음으로써 생명농업 기반을 확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비기반이 불안하면 농민들의 생계는 물론 어렵게 쌓은 생명농업 기반이 덩달아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60톤이 생산된 지난해의 경우 25톤을 유통시키고 10톤은 학교급식 납품으로 해소했지만 나머지는 해결이 어려웠다. 애써 거둔 쌀이 임자를 못 찾는 가운데 하는 수 없이 일반 쌀로 일부 소화하고도 남은 20톤 가량이 생산자들의 골치를 무척 아프게 했다.

선수금제에 따른 소비자 부담이 다소 있을 수 있지만 쌀 약정은 빚을 내 농사짓는 농촌 현실과 판로를 늘 걱정해야 하는 농민에게는 큰 힘이 된다. 무엇보다 쌀 약정운동을 통해 농산물의 지역적 순환이 가능할 뿐 아니라 농민의 금융비용 감소, 직거래를 통한 유통구조 개선, 적정 상품가격 유지 등 체감적인 도농상생구조가 만들어지는 장점이 있다.

이번 약정운동을 위해 인천우리농과 강화 생산자들은 생산량 전량(70톤)을 수매키로 했으며 소모와 관련해 모든 어려움을 공동 분담키로 결의하기도 했다. 일반 쌀보다 약간 비싸지만 수매가 그대로 내놓고 있어 사실상 인천우리농의 유통에 해당하는 수익은 없다.

인천우리농은 이 운동을 확산하기 위해 시내 본당을 돌며 친환경 먹거리와 생명농업에 대한 강론을 이어가고 있다. 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참여를 호소하는 공문을 보내거나 주보를 통해 알리는 작업도 병행한다. 본당신부가 주보를 보고 강론에서 이 운동을 홍보하며 본인이 우선 신청하는 모범을 보인 경우도 있다. 사목위원회 안에 환경분과가 있거나 우리농판매장이 있는 경우는 신자들에게 맨투맨으로 약정운동 참여를 권고하고 있다.

여월동 성당의 경우 월 200㎏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주일미사 후 친환경 쌀로 밥을 지어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에게 점심을 판매하고 있다. 본당차원에서 약정자를 모집, 일괄공급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여월동처럼 본당 차원에서 대량 소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우리농은 내년부터 소비량이 많은 단체에 대한 약정에 집중할 방침이다. 사실 인천교구에는 가톨릭신학교와 박문초․중․고교, 대건고교와 같은 큰 교육시설과 본당별 유치원 및 어린이집, 성모자애병원과 성가병원 등 의료기관 등 굵직한 소비처가 산재해 있다. 이들의 규모와 상징적 의미는 쌀 약정운동에 일대 바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아직 전략적 시장접근이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들 소비처가 먼저 문을 열고 약정운동에 참여할 열의를 갖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물론 타 교구에 비해 뒤늦게 쌀 약정운동이 시작됐고 초기라는 점에서도 한계가 있다.

생산자위원회 이근창 위원장은 “쌀이 갖는 의미가 크기도 하지만 농가소득이나 경작비중도 매우 크다.”며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에서 유통, 소비하는 원칙이 자리잡아가는 추세에서 안동, 광주 등을 시작으로 쌀 약정은 전국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근창 위원장은 또한 “쌀 약정운동을 통해 신선한 최고 품질을 쌀을 적절한 가격에 집에서 편하게 공급받을 수 있어 소비자로서도 유리하고 생산자도 큰 힘을 받을 수 있다.”며 “개인 소비자들의 참여와 함께 학교나 유치원 등 소비단위가 큰 기관의 동참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천우리농 김종성 본부장 신부는 “가톨릭 농민회원과 우리농 생산자위원들은 농업, 농민의 상황이 악화 일로에 있던 1991년 생명공동체운동의 전환과 실천을 통해 생명농업(친환경농업) 쌀 생산을 위해 주력했다.”며 “그럼에도 쌀 개방과 쌀 소비의 위축 속에 어렵게 생산한 생명농업 쌀이 판로를 찾지 못해 창고에 그대로 쌓여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김 신부는 “ 생명의 터전을 지키며 신앙실천으로 생산한 생명농업 쌀이 도시에 사는 신자들의 노력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며 “쌀 약정운동에 참여하는 소비자는 곧 우리 쌀 지킴이가 되는 것이자 이들을 통해 도시와 농촌이 만나고 그 사이에서 희망이 싹튼다.”고 덧붙였다.

/지영일 200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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