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보라마을 합의 이후 밀양을 가다]

지난 18일 한국전력공사는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 전체 가구가 송전탑 건설 보상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한전은 “진정성 있는 대화로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경과를 보고했지만, 합의 당사자가 다름 아닌 보라마을이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보라마을은 2012년 1월 주민 고(故) 이치우 씨가 분신해 숨지면서 밀양 송전탑 싸움의 상징이 된 마을이었다. 더욱이 지난 2월에도 한전의 합의 발표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할 정도로 완고한 태도를 보였다. 당시 한전은 이장의 권한을 위임받은 마을 대표 5명을 통해 39가구 중 30가구가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주민들은 해당 대표들이 위임을 받지 않았으며, 주민회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적인 행태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이후 한 달 사이 마을 대표가 교체되고, 송전탑 공사가 재개되면서 보라마을의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 밀양에서 송전탑이 지나는 4개 면 30개 마을 중 한전과 합의하지 않고 남아있는 곳은 상동면 고답, 고정, 모정, 여수마을과 부북면 평밭마을이다. 보라마을 합의 소식이 전해진 닷새 뒤인 지난 23일, 평밭마을을 찾아 주민들을 만났다.

▲ 평밭마을 입구에 걸린 현수막 ⓒ한수진 기자

보라마을 소식에 마음 아파
그래도 싸움은 계속된다

오후의 절반이 지날 무렵 도착한 평밭마을 입구에선 주민 서너 명이 마을로 들어가는 차량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다. 경찰이나 한전 직원이 마을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일종의 자체 검문소인 셈이다. 주민 배수철 씨는 “경찰이 사찰 신도라고 속여 마을에 들어가는 일이 있었다. 등산객들이 항의를 하지만 마을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길 한편에 세워진 컨테이너 박스와 나무에 매단 플래카드는 시골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평밭마을에는 밀양에 세워지는 송전탑 52기 중 7기가 세워질 예정이었다. 주민들은 현재 거주지에서 가까운 송전탑 127번과 128번, 129번의 건설을 저지하고 있다. 나머지 4기는 이미 공사를 마쳤다.

“송전탑을 다 세워도 하나를 연결하지 못하면 송전을 못합니다. 송전탑 하나라도 목숨을 바쳐서 지킬 겁니다.”

마을 상황을 설명하던 주민 이남우 씨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야기하는 중간 감정이 격해지는 듯 여러 번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의 마른 살갗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처음에는 개인의 자산가치가 몰락하고, 건강권이 침해되는 걸 막으려고 싸움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사회정의를 무시하는 한전의 공사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날 수 있습니까?”

검문소를 지나 자동차로 1분 남짓 산길을 달리자 ‘화악산 평밭마을’이라고 적힌 표지석이 보였다. 송전탑 129번 건설 부지는 마을 표지석에서 왼쪽으로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가파른 흙 언덕 위에 깔린 기다란 모포가 주민들이 세운 농성 천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아이고, 시골답게 살러 왔는데 도시의 시련을 겪게 만드네.” 앞장서서 걷던 배수철 씨가 언덕에 발을 디디며 푸념을 했다.

▲ 24일 오전, 송전탑 129번 부지에 파놓은 구덩이에서 주민 박후보 씨가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있다. ⓒ한수진 기자

▲ 송전탑 129번 농성 텐트 앞에서 바라본 풍경. 나무와 비닐로 덮은 구덩이에서 주민 박후보 씨가 밖으로 나오고 있다. ⓒ한수진 기자

스스로 판 ‘무덤’에 쇠사슬과 LPG 가스통 준비
“온몸에 묶고 저지할 것”

산 중턱에 있는 129번 송전탑 농성 천막에서는 밀양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화악산이 엄마의 두 팔로 평지를 껴안은 모양새다. 천막 바로 앞에는 지난해 9월 공사 재개 소식을 듣고 파둔 ‘무덤’으로 들어가는 구멍이 나 있었다. 구덩이는 두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을 만한 넓이를 1미터 깊이로 파고 나무로 엮은 지붕을 얹었다. 이날은 주민 한옥순 씨와 박후보 씨가 구덩이를 지키고 있었다. 구덩이로 들어가는 나무 사다리 옆으로 LPG 가스통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인자 경찰이든 한전 직원이든 쳐들어오면 이 가스통을 서로 몸에 묶고 저지할 거예요. 우리를 끌어내고 죽이려 해도, 우리가 살아있는 한 막을 거예요.”

한 씨가 천장에 걸린 쇠사슬을 목에 걸어 보이며 말했다. 구덩이 안에는 굵은 쇠사슬 10여 개가 천장에 묶여 있었다. 손이 닿는 거리에 쇠사슬을 이을 복대 여러 개가 있었고, 입구와 구석에는 LPG 가스통 3개가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한 씨는 주머니에서 유서도 꺼내 보였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마음에 1년 전 유서를 쓰고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했다. 보라마을 이야기를 묻자 한 씨는 “소식을 듣고 진짜 마음이 아팠다”는 말부터 꺼냈다.

“목숨을 걸고 막겠다고 하다가도 돈을 주면 사람 마음이 넘어가더라고요. 이 싸움이 안 될 거라는, 어차피 송전탑이 들어올 거라는 마음이 생긴 거겠죠. 그래도 나는 죽어도 돈은 받을 수 없어요. 무덤을 파고 가스통을 갖다 두면서 죽음도 초월하고 넘어섰어요. 옷을 벗고도 싸워봤기 때문에 더 이상 무서운 것도 없어요.”

평밭마을 주민들은 지난해 5월과 10월에 있었던 공사 재개 시도를 끝내 막아냈다. 마을 어르신들은 경찰에 떠밀려 땅바닥에 쓰러지고 실신을 거듭하면서도, 상의를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막아서면서까지 송전탑이 들어설 땅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사람이 있어야 법이 있지, 사람도 없는 법이 무슨 소용 있나.” 박후보 씨가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을 기억을 이야기하며 말했다.

농성 천막을 내려와 배수철 씨의 1톤 트럭을 타고 평밭마을의 또 다른 농성장이 있는 127번 송전탑 부지로 향했다. 배 씨는 보라마을의 합의 사실이 “이해가 안 가고, 믿기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전부 합의가 된 것 같지는 않다”고도 말했다. 트럭은 꼬불꼬불 산비탈 옆 128번 송전탑 부지를 지났다. 포클레인 한 대가 바퀴에 녹이 슨 채로 방치돼 있었다. 지난해 공사 재개를 위해 한전이 가져왔다가 두고 간 것이었다. 덕분에 포클레인은 송전탑 128번 부지에서 표지판 구실을 하고 있었다.

▲ 127번 송전탑 농성장 입구 페트병 화분에 진달래와 생강나무가 꽂혀있다. ⓒ한수진 기자

“경찰이 우리 동동이보다 못해요”

127번 송전탑 농성장 입구에선 분홍 진달래와 노란 생강나무가 담긴 페트병 화병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겨울의 기운을 몰아내고 있었다. 얼마 전 주민들을 찾아온 젊은이들이 만들어 둔 것이란다. 127번 농성장은 언론 보도사진에 많이 등장해 유명해진 손 할머니와 주민 3명, 연대하러 찾아온 젊은이 2명이 지키고 있었다. 바닥에 신문지를 펴고 차린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손 할머니는 마음속에 담아 뒀던 이야기를 꺼냈다.

“내 마음은 하나거든. 여기 누워있으면 밤에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려요. 내 마음은 이렇게 답답한데. 부엉이야, 너는 좋겠다. 내가 바보가 아니면 글을 써서 네 입에 물려줄 텐데. 그러면 네가 청와대까지 훨훨 날아가서 바닥에 떨쳐 놓고, 누군가는 그걸 안 펴보겠나. 마음은 훤한데 표현을 못하니 나는 답답해 죽겠다.”

손 할머니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농성장 문 앞을 지키던 개 ‘동동이’가 짖었다. 주민 한 사람이 밖을 살피고 돌아왔다. 낯선 사람이 올 때만 짖는 동동이가 갑자기 왜 짖은 건지 이야기가 오고갔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손 할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경찰은 우리 동동이보다 못해요. 동동이는 한번 왔던 사람한테는 다시 안 짖어요. 우리 10명보다도 나아요. 동동이가 없으면 우리가 밤에 잠도 못자고 다 나가있어야 해.”

산에는 어스름이 빨리 찾아왔다. 꼬리를 흔드는 동동이를 뒤로 하고 129번 농성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물을 길어다 쓰는 127번 농성장에 손 하나라도 덜기 위해서였다. 휴대폰 조명을 켜고 다시 오른 129번 농성장에선 어르신들이 한창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평온한 분위기도 잠시, 전화를 받은 한 주민이 밖에서 들려온 소식을 전했다. 경찰이 새벽에 농성장을 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취재 카메라로 사진을 꼭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행히 평밭마을은 조용한 아침을 맞았다. 하지만 언제라도 갑자기 깨질 불안정한 고요일 뿐이었다. 주민 장재분 씨는 최근 마을 분위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최악”이라고 답했다.

“보라마을에서 벌어진 일이 며칠 전에 우리 마을에서도 일어날 뻔했어요. 주민 한 명이 데모 못 나오는 집에 가서 합의서에 도장을 받고 있더라고요. 우리가 찾아가서 서류 뭉치를 뺏으려니까 몸싸움이 벌어지고 난리가 났었어요. 보라마을도 물밑 작업하는 걸 모르다가 순식간에 다 넘어갔거든요. 사실 그 사람도 피해자죠. 원인은 한전이 제공한 거고. 어쩌다 이래됐는지, 진짜 가슴이 아프네요.”

▲ “교황님이 기도는 해주실 거야.” 컨테이너 식당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평밭마을 주민 사라 할머니 ⓒ한수진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 밀양 방문해주길

컨테이너 식당 앞에선 아침 식사를 마친 사라 할머니가 햇볕을 쬐고 있었다. 30년 전 건강을 회복하러 평밭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는 사라 할머니는 도시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더 많은 사랑을 느끼게 해줬던 시골 생활을 옛날이야기 하듯 풀어냈다. 매일 1시간을 걸어 성당에 다녀오곤 했는데, 오솔길에서 할머니의 마음을 붙잡았던 예쁜 나무와 꽃들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한창 옛 이야기를 하던 사라 할머니는 꼭 하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다고 두 손으로 기자의 팔을 붙잡았다.

“25년 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오셨을 때, 그분이 차에서 내려서 엎드리고 땅에 입을 맞추셨어.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오시면 그렇게 하시겠지. 그런데 교황님이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하고 음성 꽃동네만 가신다니, 여기는 어떻게 오실는지 아쉬워. 거기서도 초대하니 안 가실 수가 없겠지만, 밀양을 찾아달라고 말한 교우들도 많이 있었겠지? 만약에 밀양에 안 오시더라도 그분은 기도를 해주실 거야. 깊이 나오는 마음으로 해주실 것 같아.”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어르신들 머리 위로 송전탑 공사 자재를 나르는 헬기 소리가 요란하게 지나갔다.

▲ 24일 오전 9시경, 송전탑 129번 농성 천막 위로 송전탑 건설 자재를 매달은 헬리콥터가 굉음을 내며 지나가고 있다. ⓒ한수진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