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주민과 신자 함께하는 다사리 협동조합, 된장 · 고추장 만들기 한창

▲ 해방촌성당에서 다사리 협동조합 조합원들이 따뜻한 엿기름 물에 고춧가루를 풀어 고추장을 만들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메주가루가 더 많이 들어가서 덜 빨갛다.”
“그럼 고춧가루를 더 넣어야지.”
“얼마만큼 넣어야 하지?”
“적당량이지, 적당량.”

지난 20일 오후, 서울 해방촌성당 지하에 삼삼오오 모여 고추장을 만드는 이들은 지난 2월 23일 창립한 다사리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다. 나이가 지긋한 조합원들은 익숙한 듯 장맛을 보며 ‘적당량’과 ‘눈짐작’으로 일관하지만, 젊은 조합원들은 계량기와 레시피의 필요성을 말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엿기름 삭힌 물에 찹쌀가루를 풀어 달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본당 주임사제인 이영우 신부와 조합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고춧가루를 푼다.

한편, 성당 마당 한쪽에는 커다란 장독들이 햇빛을 받으며 줄지어 서 있다. 장독 안에 있는 것은 2월에 조합원들이 함께 담근 간장이다. 천일염으로 짠맛을 낸 물에 우리 콩으로 만든 메주, 숯과 고추 등을 함께 넣어 두었다. 장의 맛에는 담그는 시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다사리 협동조합도 가장 맛이 좋다는 ‘정월장’을 담갔다. 4월초, 담근 지 100일이 지나는 날 즈음에 메주를 건져 간장은 간장대로, 메주는 된장으로 숙성시킬 계획이다. 그렇게 1년쯤 지나면 그제야 맛 좋은 간장과 된장이 된다. 젊은 조합원들도 우리 음식에 시간과 정성이 많이 필요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직접 겪어본 장 담그기는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지난 2월 다사리 협동조합에서 담근 간장이 익어가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시작은 ‘본당 식구들끼리 장을 함께 담가 먹자’는 주임신부의 제안이었다. 이영우 신부는 “안 좋은 첨가물을 많이 넣어 대기업에서 만들어 파는 된장, 고추장 말고 우리가 만들어 먹자”고 했다.

“우리 본당에 어르신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게는 기술이 있으니까요. 저도 옛날에 시골에서 장 담그는 걸 보면서 컸거든요. 어르신들은 장독대를 소중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장을 담그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직접 만드는 과정을 보고 신뢰할 수 있는 먹거리도 좋지만, 함께 만들면서 사람들이 모일 수도 있잖아요.”

누가 만들지, 판로는 어떻게 개척할지 등 여러 가지 고민을 신자들과 나누던 중 협동조합 이야기가 나왔다. 한 해 행사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에 도움이 되는 구조를 고민했다. 수익금을 의미 있게 쓰자는 데에도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 과정을 통해 다사리 협동조합이 시작됐다. 23명의 조합원 중 해방촌성당 신자는 이영우 신부를 포함해 16명, 지역 주민은 7명이다. 출자금은 한 구좌에 20만원, 조합원들은 한 구좌에서 다섯 구좌까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출자했다.

다사리 협동조합 남기문 이사장은 “처음에는 협동조합을 낯설어하는 본당 신자 분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노동조합을 떠올리면서 이념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분도 있었고, 긍정적이지 않은 분들이 더 많았어요.”

하지만, 뜻에 동의한 몇몇 신자들과 협동조합이 첫 발걸음을 떼고, 텃밭이었던 성당 한쪽 구석에 장독대가 들어서자 처음에 경계했던 본당의 어르신들도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본당 어르신들은 햇빛을 어느 쪽으로 받게 해야 한다, 몇 월에 담그는 게 좋다 등 장독대를 보면서 한 마디씩 거들었다. 서울 한복판에서는 보기 어려운 정겨운 광경이었다.

“분위기가 좋아지는 걸 조합원들 모두가 체감하고 있는 것 같다”는 남 이사장은 “자본주의 사회구조에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다면, 마을 단위에서 최적화된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에서 경제가 순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 이사장은 협동조합의 앞날을 4~5년 긴 호흡으로 전망하면서 “결국 협동조합의 자양분은 마을 네트워크”라고 강조했다.

▲ 해방촌성당 주임 이영우 신부가 장독을 열어 간장을 살펴보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이영우 신부도 협동조합이 성당의 울타리를 넘어 마을에 뿌리내리기를 원했다. 성당이 모태가 됐지만, 뿌리를 잘 내려 지역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젊은 부부를 대상으로 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할 수도 있겠죠. 관심 있는 청년들이 모인다면 도시에서 어르신들과 젊은이가 함께하는 공간도 될 수 있을 것이고요. 잘되면 학교 급식업체나 구청 등에 납품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작지만 어르신들에게 일자리와 수익을 나눌 수도 있을 듯해요.”

고추장은 맛이 깃든 두세 달 뒤쯤, 장은 1년 뒤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다. 고추장 만드는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맛있는 비율을 맞추기도 어려웠지만, 고춧가루 덩어리가 남지 않게끔 끝까지 풀어줘야 하기 때문에 팔다리가 꽤 고단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세 항아리의 고추장을 가득 채워 넣은 조합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25년간 해방촌에 살았다는 한 젊은 조합원이 웃으며 말했다.

“혼자 했으면 힘들고 엄두도 안 났을 것 같아요. 집집마다 혼자 만들다 실패한 집이 많거든요. 하지만 같이 하니까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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