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위로의 노래 부르는 엄마 아빠, ‘복태와 한군’

남자는 무주에서 대안학교를 다녔다. 졸업하자마자 서울을 향했다. 서울엔 재미있는 게 더 많을 것 같았다. 무작정 음악을 하고 싶기도 했다. 여자는 스물여섯에 우연히 노래를 시작했다. 자신이 만든 소박한 노래가 다른 이를 위로할 수 있다는 게 기뻤다. 한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만난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빠졌고, 2011년 결혼했다. 당시 남자의 나이 21살, 여자의 나이 29살이었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노래를 부르는 듀오 ‘복태와 한군’의 박선영 · 한겨레 씨는 결혼 4년차 부부다. 3월 첫 주, 후쿠시마 3주기를 맞아 서울광장에서 열렸던 문화제에 이 듀오는 100일이 채 안 된 둘째 이음이를 가슴에 안고 무대에 올랐다. 한군은 “의미 있는 무대에, 이음이와 함께 서고 싶었다”고 말했다.

▲ 부부 듀오 ‘복태와 한군’(오른쪽부터, 박선영 · 한겨레 씨) ⓒ문양효숙 기자

요 근래 부부의 일상은 두 아이에게 온전히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첫째 지음이가 3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해 그나마 오전 시간을 조금 벌었지만, 여전히 두 시간 마다 한 번씩 일어나는 둘째와 밤 11시 넘어서까지 자기 싫어하는 첫째와 지내느라 가수면(假睡眠) 상태로 살고 있다. 음악을 하는 이들, 창작을 위한 시간이나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이 그립지는 않을까.

“아이를 낳으면서 ‘창작’에 대한 마음을 어느 정도 내려놨어요. 노래를 만들고 싶다거나 개인 시간을 갖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면 제 삶도 만족스럽지 않고 아이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잖아요. 지금은 이럴 때구나. 지금은 노래를 만들 수 없는 때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거죠.” (복태)

그대를 만나 나는 더 온전해졌다

무엇이든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을 좋아하는 복태가 여유로워지는 데에는 한군의 역할이 컸다. 여유로운 성격의 한군은 “시간은 낭비될 필요가 있어. 이 모든 시간이 다 너의 것인데 뭐가 그리 급해”라며 언제나 복태를 다독였다. 복태는 그런 한군을 ‘이상향을 현실로 만들어준 사람’이라 했다. 반대로 한군은 ‘지나치게 풀어진 사람’이었던 자신이 복태를 만나 체계와 균형을 잡게 됐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치관이 같은 토끼와 거북이’라며 웃었다.

복태는 한군을 처음 만났을 때 자신과 이렇게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신기한 게, 제가 그래도 8년을 더 살았잖아요. 친구건 동료건 주변 남자들 중 누구와도 소통이 안 되는 기분이었어요. 자연과 함께하는 소박한 삶을 지향하면서 같이 시골에 내려갈 수 있는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한군과는 가치관은 물론이거니와 ‘대화의 온도’가 정말 잘 맞았어요. ‘이 사람이구나’ 생각했죠.”

처음엔 나이 차이가 많이 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복태에게 한군은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었고, 한군에게도 사람을 만나는 데 나이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복태는 한군의 나이를 알고 고민했지만, ‘이렇게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결혼에는 양가의 반대가 심했다. 나이 차에 종교 갈등이 더해졌다. 복태의 부모님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한군의 부모님은 개신교 신자였다. 하물며 한군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갈등이 엄청났어요. 저는 사실 종교 때문에 그렇게 반대하실 줄은 몰랐거든요. 저희 부모님이 상당히 깨어 있는 분들이신데 종교 문제는 좀 달랐어요.” (복태)

어렵게 결혼 승낙을 받은 후에도 결혼에 이르는 길은 첩첩산중이었다. 결혼식 장소와 예식이 문제였다. 복태의 집안에서는 성당을, 한군의 집안에서는 교회를 고집했다. 심지어 개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두 가족을 중재한 건 한 사제였다. 복태의 부모님과 친분이 깊었던 이 신부는 “하느님 이름으로 싸울 일 없다”며, 자신이 집전할 테니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부부는 결혼식 1부는 개신교 예배로, 2부는 가톨릭 성찬 전례로 진행했다. 성당도 교회도 아닌 서울 성북구청을 예식장으로 고르고, 양쪽 신자 모두가 알만한 공통의 성가를 골랐다.

▲ “누군가를 위로하는 노래를 하고 싶다”는 복태와 한군 ⓒ문양효숙 기자

재능교환으로 준비한 특별한 결혼식, 그리고 소박한 삶

사실 이들의 결혼식이 특별했던 건 종교의 화합 때문만은 아니다. 인디 뮤지션으로 음악을 해 온 이들은 결혼에 필요한 자금이 넉넉지 않았다. 청첩장, 음향 장비, 웨딩 촬영 등에 친구들이 직접 팔을 걷어 붙였고, 최대한 소박한 결혼식을 준비했건만 그래도 돈이 부족했다. 고민하던 이들은 소셜펀딩 사이트에 자신들의 사연을 올리고 지원해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음반, 직접 만든 양갱, 한군의 우쿨렐레 무료 강습 등 자신의 재능으로 갚을 것을 약속했다. 일명 ‘은혜 갚을 결혼식’이었다. 모금액은 목표치보다 두 배 넘게 모였고, 이들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결혼식을 시끌벅적 즐겁게, 무사히 마쳤다.

이런 삶의 방식은 결혼 후에도 이어졌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을 지향했던 부부가 실천한 것 중 하나는 ‘재능교환’이었다.

“예전에 에코파티메아리라는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거기서 만든 물건을 선물 받았어요. 다음 공연에서는 공정무역 홍차를 받았죠. 의도하지 않았는데 화폐교환이 아니라 물물교환이 된 셈이에요. 아, 이런 삶이 가능할 수 있겠구나 막연하게 생각했죠.” (복태)

한군을 만나 듀오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하게 된 후에도 목수에게 축가를 불러준 뒤 원목 침대 프레임을 선물 받기도 하고, 한군이 우쿨렐레를 가르쳐준 이들에게 수화를 배우기도 했다. 첫째 지음이는 두 돌이 될 때까지 기저귀를 산 적도 없다. 지인들에게 공지를 띄워 ‘기저귀 릴레이’를 했다. 인덕(人德)을 중요시 여기는 부부의 주변에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부부는 “소비를 재촉하는 도시 시스템 안에서 그걸 외면하고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자급자족인 것 같다”고 말했다.

“복태 씨 재주가 많으신 것 같아요. 요리도 잘 하시고, 양갱, 잼도 만드시고 옷도 만드시고.”
“예전엔 어른들이 재주 많으면 밥 굶는다고 하도 그러셔서 압박을 받았어요. 관심사가 너무 많은 게 아닌가 하고. 그런데 저희 삶의 방식으로 가져오니 저는 정말 자급자족하는 삶에 최적화된 사람이란 걸 깨달았어요. 아, 나는 자본과 산업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이구나 하고.” (복태)
“사회에서는 전문가가 되라고, 한 우물 파라고 하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저는 전문성이라는 게 오히려 인간성을 잃게 하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똑똑한 연구원이라고 해봐요. 그것밖엔 모르고 빨래도, 밥도 혼자 힘으로 못한다면 그건 오히려 다른 의미에서는 바보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싶어요.” (복태)
“진짜 훌륭한 인간이란 건, 의식주를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밥도 할 줄 알고, 설거지랑 빨래도 할 줄 알고, 집도 좀 고칠 수 있고. 인간으로 정말 필요한 기술이죠. 자기 삶을 알뜰하게 꾸려가는 게 ‘인간성’인 것 같아요.” (한군)

복태는 결혼 후 한군의 ‘인간성’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졌다. 아이를 대하는 한군의 태도 때문이다. 한군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행복해 했다. 무엇보다 아이와 소통할 줄 알고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파악했다.

“‘대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지음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나이가 어리니까 나보다 부족한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나오자마자 우린 친구였죠. 다만 보살핌이 필요하니까 안전하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줄 뿐이에요. 그리고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죠.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과하게 개입하려 하지 말고, 아이가 뭘 원하는지, 아이의 특성이 뭔지 잘 파악해야 해요. 아이의 욕구를 미리 알고 채워주면 떼를 부리지 않아요.” (한군)

24살 젊은 아빠는 “육아는 기다림의 연속”이라며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가 끊임없이 성찰할 수밖에 없으니 결국 부모가 자라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복태와 한군의 공연 모습 (사진 제공 / 복태와 한군)

음악, 삶의 일부

고요한 숲속의 새소리 같은 노래를 부르는 복태와 한군에게 ‘당신들에게 음악은 무엇인가?’ 물었다. 한군은 주저하지 않고 바로 “삶의 일부분”이라 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듣고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게 생활이었어요. 매끼 밥 먹는 것처럼요. 의식주음(衣食住音)이죠. 공연을 하지 않아도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는 게 일상이에요.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어떤 음악을 들을까 고르고, 지음이랑 같이 춤을 추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죠.” (한군)
“저는 음악을 너무나 좋아해서 이 길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위로받은 걸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죠. 그런데 지금은 참 고마운 존재죠. 내가 노래를 부르며 먹고 살 수 있다는 것도, 사람들이 불러주는 것도 감사해요.” (복태)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 했다. 다만 위로하겠다는 의욕이 가득 담긴 노래가 아닌 그저 스스로가 위로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다 했다.

“더 이상 연애 이야기를 못 쓰겠어요. 저희의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노래는 결국 우리 이야기, 우리 삶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 순간 할 이야기가 없고 노래로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노래를 안 할 지도 몰라요.” (복태)

꾸밈없이 자신들의 삶과 마음을 담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삶의 방식대로 살기 위해 조만간 제주도로 내려갈 계획이다.

“저희 집에 놀러온 지인들이 ‘너희 집에서 머물면서 잘 쉬고 위로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다들 직장에 다니거나 바쁘게 사는 친구들이죠. 일단 그냥 내려가긴 하지만 우리 둘이 아이를 키우면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요. 제주도에 가서 행복하게 살면서 저희를 찾아오는 분들에게 그 행복을 나눠드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꿈은 있어요.” (복태)

‘복태’라는 독특한 이름은 지인이 우연히 지어줬다. 왠지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알 수 없는 시골 초등학생의 이름 같은, 나쁜 짓을 할 수 없는 이름 같아서 마음에 든다 했다. 이름에는 그렇게 되고 싶다는 본인의 소망과 그렇게 되라고 불러주는 이들의 응원이 함께 담긴다. 시골 아이의 맑고 착한 기운이 담긴 복태와 한군의 노래가, 오늘 행복을 잃은 도시의 누군가에게 위로와 쉼을 전할 듯하다.


▲ 복태와 한군의 곡 ‘흙의 왈츠’ (동영상 제공 / 복태와 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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