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 한상봉]

오는 8월 교황 방문이 결정되면서 한국 천주교회는 교황의 방한 일정과 행사 내용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오는 24일부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열리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도 이 사안을 중요하게 다룰 예정이다.

정부와의 교섭도 한창인데, 교황 방한 결정 이후 천주교 측과 정부 측에서는 각각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와 지원위원회가 꾸려졌으며,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해 주교회의와 준비위 측 관계자들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면담하고 내용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도 최근 5년 동안 정부와 천주교계가 이처럼 긴밀하게 협조관계를 유지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그동안 박근혜 정부와 천주교 사제들 사이에 시국미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충돌과 갈등, 비난과 저항의 분위기를 잠재울 만하다.

교황 방한 일정과 관련해 정부 측과 천주교 측 사이에 의견이 조율되지 못한 사항 중 하나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장소다. 천주교 측에서는 ‘광화문’을 고집하고 있는데, 정부 측에서는 교통 혼잡과 교황 경호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며 경기 성남시에 있는 서울공항을 제안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 측 관계자에 따르면, 천주교 측에서 광화문을 계속 요구하면 정부로서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만큼 정부 측에선 이번 교황 방한이 말 많은 천주교회를 정부 측으로 견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는 듯하다.

광화문 일대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이 있으며, 일제하에는 조선총독부, 현재는 청와대가 인근에 자리 잡고, 서울시청 역시 이 근처에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권력구조의 심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광화문은 권력에 저항하는 민의가 가장 많이 반영된 곳이기도 하다. 2008년 광우병 파동이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였던 곳도 광화문과 서울시청 일대였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광화문 앞에 컨테이너 박스로 벽을 세우고 시위 군중을 막아서, 당시 시민들은 이를 두고 ‘명박산성’이라고 불렀다. 즉, 광화문은 권력의 중심부이면서 동시에 권력에 저항하는 민주화의 광장이다.

▲ 지난해 12월 28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로 ‘민주주의’라는 글자를 만들고 있다. ⓒ한상봉 기자

사대문 밖에서 죽은 순교자들, 광화문에서 시복식...정치적 의미도 있어 
순교자들은 국가권력에 의한 죽음.. 억압받는 양심의 자유 상징

이곳에서 시복식을 여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번 교황 방한은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일어나 비추어라”(60,1)라는 주제로 이루어지는데, 이 장소 이름이 ‘빛이 되라’는 광화문(光化門)이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지난 2월 7일 시복을 결정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는 한국 교회 초기 순교자들이다. 이들은 조선왕조에 의해 가혹한 고문과 처형을 감내하면서 신앙을 증거했다.

양심의 자유에 버금가는 신앙의 자유를 위한 죽음이라는 뜻에서 이들의 죽음은 현대사회의 중요한 가치인 ‘민주주의’의 요청과 다르지 않다. 당시 순교자들은 절두산과 새남터 등 사대문 밖에서 ‘혹세무민하는 죄인’으로 처형되었다. 이들이 광화문에서 ‘복자’(福者)로 선언된다면, 이는 단순한 종교행사를 넘어서 정치적인 신원(伸寃)의 의미를 지닌다. 그들이 원통하고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벗어버리고 오히려 ‘복된 사람’이 되었음을 국민들 앞에서 선포하는 것이다.

천주교 행사를 광화문 일대에서 대규모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타 종단에서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동안 어떤 종단도 광화문에서 종교행사를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종교다원사회에서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동학을 제외하고 근현대사에서 천주교만큼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순교자들을 양산한 종단이 없었다는 점에서, 국가권력이 보상의 의미에서라도 광화문을 천주교 순교자들에게 잠시 내어주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적 차원에서 순교 원혼들을 위로하고 보듬어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점에서 한국 천주교회는 이번 광화문 시복식 이전에 해결해야 할 선결 과제가 있다. 첫째는 이번에 시복되는 순교자들의 죽음을 단지 ‘종교적 죽음’에 한정시킨다면 국민적 공감을 얻어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의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억누른 정권에 의한 희생자였다.

그렇다면 이들의 ‘순교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양심의 자유를 위해 한국 교회가 ‘목숨 걸고’ 헌신하는 것이다. 실제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이 땅에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미사를 봉헌해 왔으며, 촛불을 든 시민들과 함께 시청광장에서 시국미사를 봉헌하고, 최근에는 국가권력에 의한 대선 개입을 규탄하며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미사를 전국에서 봉헌하고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종북사제’라는 말까지 듣고, 정부의 엄포를 참아냈다. 그러니 ‘기도로 순교정신을 계승한다’는 말을 가장 웅변적으로 드러낸 것은 우리 시대에 시국미사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제들의 저항을 천주교 전체가 동의하고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사퇴’ 요구가 터져 나왔을 때, 가장 먼저 ‘사제들의 정치 개입 금지’를 들고 나온 것도 한국 천주교회의 심장인 서울대교구 교구장이었다. 주교회의도 일치된 목소리로 사제들의 노력을 성원하지 못했으며, 몇몇 주교들은 지역에서 숙원사업을 이루기 위해 정부 측과 물밑 작업에 한창이었다. 이는 순교자들의 순교정신을 주교들이 배신하는 것이다. 교회 확장과 부동산 확대를 위해 순교정신은 접어두고, 이번 교황 방한조차 자칫 ‘천주교 홍보’를 위한 거대한 이벤트로 기획한다면, 그런 천주교회는 광화문에서 순교자를 복권시킬 자격이 없다.

▲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천주교 인물이 7명에 불과하지만, 이는 천주교회의 친일 행적이 개별 인사의 행위보다는 교단 차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상봉 기자
둘째, 초기 교회의 순교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위해 목숨을 내어맡겼고, 그 결과 국가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한국 교회는 그들이 ‘복자’로 승인받고, 이윽고 ‘성인’으로 추대되기를 열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일제강점기에 한국 천주교회는 스스로 신앙을 배신했을 뿐 아니라, 친일 행위에 가담한 전력을 지니고 있다.

교회의 친일행적 충분히 반성해야
광화문 시복식 정당성 얻어


당시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합법적 행위로 파악하고,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을 단죄했다. 또한 일본 제국주의가 침략전쟁을 벌이면서 식민지 조선에 강요했던 각종 정책에 협조했다. 한국사학자 조광교수는 "당시 천주교회는 일제가 요구한 신사참배에 맞설 그리스도교적 용덕(fortitude)도 없었다"고 말했다. 조광 교수에 따르면, 태평양전쟁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던 조선 출신 징용자가 일본 나가노 탄광의 벽에 ‘십자가’와 ‘천주(天主)’라는 글씨를 써놓고 절규할 때, 일본과 조선의 성당에서는 황군의 무운장구를 비는 미사가 거행되고 있었다. 수녀를 꿈꾸던 대구 지역의 어느 처녀가 전쟁터의 성노예로 전락했지만, 교회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0년 12월 3일자로 발표한 과거사 반성 문건 ‘쇄신과 화해’라는 문서를 통해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를 참회하면서도 일제 식민지 시절 교회의 친일 행적에 대해선 한 마디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 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 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광화문을 고집하는 것은 ‘몰염치’하다. 교회가 순교자의 죽음을 정말 깊이 묵상하고, 민족 앞에서 떳떳한 걸음으로 ‘민족의 빛’이 되려면, 스스로 청산해야 할 과거를 솔직히 드러내어 씻어버려야 한다. 또한 아직도 이 땅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들과 더불어 동고동락할 의지를 밝힌 뒤라야 ‘일어나 빛을 비출 수 있다’.

며칠 후면 주교회의 정기총회가 열리고, 교황 방한과 관련해 여러 가지 논의가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교황 방한을 계기로 한국 교회가 쇄신의 의지를 분명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극히 실무적인’ 논의만 하게 된다면, 한국 교회에 미래가 없고, 교황 방한이 오히려 한국 교회의 ‘교만’을 불러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장이 크게 서면 온갖 잡상인들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교황 방한이 상업주의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정치권력이 교회를 저당 잡는 계기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기는 주교회의가 되기를 바란다.

일제강점기 천주교회의 친일행각에 대해서는 한국사학자인 조광교수가 <지금여기>에 기고한 다음글을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편집자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15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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